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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근래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때문에 몹시 소란스러운 것 한 가지만을 보더라도, 역사는 과거의 정체된 유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역사는 얼마든지 현실적 역학관계 변화에 의해 재조명 내지 재창조되기도 한다. "역사의 정치학" 견지에 따르면 연구자의 정치적 태도와 견해가 심지어 고고학마저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저자 휘틀럼(영국 세필드 대학 성서연구과 교수)은 이 책을 통하여, 그 간의 고대 이스라엘 연구가 얼마나 편파적으로 진행되어 왔는지를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그가 보기엔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는 오리엔탈리즘을 내면화하고 있는 서구 유럽의 학자들에 의해 철저히 허구적으로 창조되고 날조되어 왔다.

이들의 연구는 팔레스타인 역사를 소품쯤으로 취급하면서 성서연구의 담론에 갇힌 채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스라엘 역사 서술에 집중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까닭에 고고학적 발굴작업을 통하여 어떤 유물이 발견되어도 그것을 성서의 기록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해석하려는 오류를 너무 자주 범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흔히 거대한 제국을 연상시키는 다윗과 솔로몬 왕국은 지금까지 전문적인 고고학자들에 의해 출토되고 확인된 고고학적 흔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있다고 해봐야 최근 텔단이라는 곳에서 "다윗의 집"을 언급한 돌기둥 일부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이것만을 가지고는 다윗제국을 증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함에도 이 돌기둥 조각 하나는 다윗 왕에 대한 성서의 기록들이 온당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휘틀럼은 이러한 편향된 주장들을 일축하고 이 돌기둥이 B.C. 9세기나 8세기에 유다 왕국이 존재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일지라도 유다 왕국의 범위 구성이나 다윗 치하의 왕정이 최고 수준의 ‘제국’을 표상한다는 믿음 중 어느 것도 확증해 주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소위 "다윗과 솔로몬 왕국"이란, 근대 국가 이스라엘을 철기 시대로 역투사시킨 신기루에 지나지 않으며 역사의 완전한 왜곡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러면서 그는 유다나 이스라엘 왕국조차 광범위한 팔레스타인의 역사에서 유일한 요소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에는 막대한 연구 기금이 투여되어 왔다. 이는 비단 서구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진리 추구를 위한 가상한 노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 휘틀럼의 분석이다. 그는 복음적이고 보수적인 그리스도교가 고대 이스라엘의 물증을 찾는 작업에서 정치적·종교적 시온주의와 암암리에 동맹을 맺어 왔음을 여러 정황과 근거를 가지고 본문 곳곳에서 줄기차게 폭로한다.

그리스도교와 유다교, 유럽국가와 근대 이스라엘이 나름의 이해관계에 의해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에서 동맹을 맺어왔다는 이야기다.

저자의 논지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 연구는 겉으로는 이스라엘의 출현과 기원에 대한 주장인 것 같지만 근대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합리화하고 확고히 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었으며 유럽 문명의 뿌리를 탐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엄연히 존재하는 팔레스타인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편파적이고 파열된 역사 연구가 진행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워낙 문제제기가 발본적이고 치밀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대 이스라엘 연구에서 막강한 학문적 지배력을 구가하고 있던 학자들은 휘틀럼의 비판 앞에 견뎌내지 못하고 맥없이 주저 앉는 형세다. 알트, 노트, 올브라이트, 브라이트은 물론이고, 진보적 학자들로서 한국의 민중 신학자들에게 각광 받아왔던 갓월드나 멘델홀까지도 휘틀럼의 칼질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오늘날 성서역사학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밀러와 헤이스, 고고학자인 핑컬스타인(2002년 번역 출간된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의 저자)마저도 팔레스타인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성서 담론 중심의 역사 서술을 하였다는 휘틀럼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근 문학연구와 고고학적 자료를 결합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족장시대, 출애굽시대, 가나안 정복시대는 역사적 ‘사실’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B.C. 19세기부터 B.C. 13세기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의 시간은 아직 복원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 휘틀럼은 답답해 한다. 그는 80년대 이후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다루는 책들이 점점 얇아지거나 서문이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현상은 이 지역 역사를 재현하는데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성서연구 담론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그 지위를 굳히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역사가 정당하게 복원되기에는 그만큼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오랜 관행에 묶인 성서담론에 기초한 역사는 팔레스타인을 대상화시켜 그들은 부도덕하고, 국민의식이 없으며, 뒤떨어진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뿌리 깊은 편견을 심어 놓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대체한 것은 역사의 진보라고 오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기에 저자 휘틀럼은 과거의 구성은 역사적·사회적 정체성의 규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종의 투쟁이라고 본다. 그는 이 투쟁이 이제 막 시작되었고, 이 책은 팔레스타인 역사라는 프로젝트가 성서연구의 담론에 의해서 어떻게 방해받아 왔는지에 대한 논평이라고 밝히고 있다.

휘틀럼은 이 책을 쓰는데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이론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럼에도 학문적인 엄밀함을 유지하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기존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에 대한 심도 깊은 비판을 가한 것은 그의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의 말마따나 이 책은 팔레스타인 역사를 쓰기 위한 긴 서설에 지나지 않으나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중요한 방향타를 날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한 것이라고 본다.

다만 아쉬운 점을 들라면 그가 팔레스타인 출신이나 고고학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역사를 반드시 팔레스타인인 자신이 쓸 필요는 없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유럽인으로서 갖게 되는 저자의 태생적인 한계를 간과할 수 없고 고고학자가 아니라는 점은 앞으로의 역사서술에 있어서 항상 2차 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게 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키스 W.휘틀럼 지음, 김문호 옮김, 이산(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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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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