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보십시오.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간 한 청년의 피가 과연 누구를 위해 헛되이 사라져가고 있는지를. 당신이 이 영화를 지금 보지 않는다면 조만간 곧 제2의 마이클 무어를 꿈꾸는 열혈 영화청년의 손에 또다른 진실이 불타는 '섭씨 9/11'이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19일 오후 7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강당에서 열린 영화 <화씨 9/11> 시사회. 사회를 맡은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이 영화평론가 심영섭씨의 영화평을 읽자 강당에 모인 700여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박 대변인은 이어 "이라크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을 보낸다고 결의했던 그 국회에서, 그 전쟁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확인하는 영화시사회를 열게 됐다"며 시사회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날 2회에 걸쳐 열린 <화씨 9/11> 국회시사회는 '진실이 불타는 온도'라는 뜻의 영화제목에 걸맞게 뜨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의원회관 강당은 좌석이 440석이었는데 무대 앞 바닥이나 계단까지 관객들이 들어차는 바람에 강당 입구에서 선 채로 영화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실내는 후덥지근했다.
여야 의원들 "이라크전은 추악한 전쟁, 우리는 진실을 알 권리 있다"
박 대변인의 설명대로 이 영화는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다. 올해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최근 미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반부시' 영화의 선두격이다.
영화는 부시 대통령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워낙 노골적인 비판이라 대선 전 영화상영을 두고 미국 내에서는 관련 배급사나 영화사에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부시 미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영화를 시작한 뒤, "(부시 대통령에게) 한번 속지, 두 번 속냐"는 말로 '부시 낙선'을 다짐하며 영화를 맺는다.
시사회에 온 관객들은 우스꽝스러운 부시 대통령의 모습에 폭소를 터트렸다. 영화 중간중간 피가 낭자한 이라크 사람들의 무수한 시신, 불에 탄 채 두 동강난 미군의 시신 등이 보여지는데, 부모들은 자녀의 눈을 잠시 가리기도 했다.
이날 시사회에는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모임별로 참석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막 퇴근한 듯 넥타이 차림의 직장인과 아기를 안은 주부들도 있었다. "젊은 분들은 노약자를 위해서 자리를 양보해주세요, 당원들이 먼저 양보해주세요"라는 안내방송이 계속됐다.
이 자리에는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의원 등 민주노동당 의원들뿐 아니라 손봉숙 의원(민주당), 안영근, 정청래, 임종인, 이은영, 송영길 의원(열린우리당), 이재오, 고진화 의원(한나라당) 등도 참석했다.
시사회 행사 공동주최자인 파병반대국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눈에 띄었다. 안영근 의원은 이번 파병재검토결의안에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강당 입구에 놓인 파병반대국민행동 모금함에 10만원을 넣었다.
영화를 본 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라크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확실히 알 것 같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파병반대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영 의원은 "너무 쇼킹하다, 전쟁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잘 묘사되어 있으니 온 국민이 다 보셨으면 한다"며 "우리는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임종인 의원 역시 "(이라크 침공은) 미국이 전세계를 속인 전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며 "8월달에 다시 본회의를 열어 파병재검토 결의를 해야하는데 이 영화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은 "이라크 침공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준다"며 "상업영화라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시청 앞에서 같이 관람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회찬 의원은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영화평을 대신했다. 영화배우 문소리씨는 "이렇게 통쾌한 영화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제작한 시사회 포스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열받아도 우리는 시사회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시사회 초청장을 보냈다. 누구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영화를 봐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노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