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최고위원들이 20일 오전 11시를 시작으로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이라크 추가파병철회를 위한 무기한 철야농성에 나섰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이미 지난 6월 김선일씨 피랍소식이 알려지면서 파병반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국회 본관 안에서 농성을 벌였지만 거리에서 농성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원과 최고위원, 당직자, 일반 당원 등 50여명이 참석한 농성장에는 당 깃발을 단 텐트 두 채가 설치되고 바닥에 은박 매트리스가 깔렸다.
이날 농성은 지난 중앙위원회의 '강도높은 파병반대투쟁' 결의에 따른 것. 지난 16일 열린 중앙위원들은 결의문을 통해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정권퇴진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중앙위원들은 결의문에 "의원직을 걸고"라는 문구를 넣자는 의견도 진지하게 검토했다.
비난여론, 의정활동 등 부담 속 "그래도 진보정당의 갈 길 간다"
민주노동당 의원단이나 최고위원들은 현장 운동가 출신인만큼 농성에는 워낙 이골이 났지만, 원내 정당이 무기한 철야농성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지 않다. 자칫 원내정치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여론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용진 대변인은 "농성을 시작하면 '민주노동당 옛 버릇 못 버렸다'는 욕을 먹을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임시국회는 일단 끝났지만, 의원들이 농성에 참여하며 의정활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을 더해준다. 민주노동당은 전날 '진보국감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부 공청회를 시작으로 국정감사 준비에 들어갔다. 또한 당장 카드특감 청문회 추진활동도 눈앞에 두고 있다. 심상정 의원수석부대표는 이날 브리핑자료를 내고 "한나라당과도 청문회 필요성에 대해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날(20일) 기자회견에서 '파병철회' 어깨띠를 맨 천영세 의원단 대표는 "이라크 파병 철회 없이 어떠한 개혁과 민주화도 있을 수 없다"며 "최우선적인 당면현안으로 이라크 파병철회를 이뤄내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조용하고 낮은 말투의 천 대표는 이날 보기 드물게 목소리를 높여 다음과 같이 국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광화문 이 자리에 다시 섰습니다. 최고위원들은 당사에 있어야 하고 의원들은 의정활동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각 사업장에서 차별철폐를 외치고 농민들은 쌀을 지키기 위해 총력항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고하게 죽어가는 이라크 민중들을 위해, 국민들이 함께 하리라는 믿음으로 이 곳을 지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남의 민족의 피눈물로 얻은 국익은 국익이 아닙니다. 함께 동참해주십시오!"
천 대표는 "의원들이 늘 거리에만 나가면 제도정당이 아니지만, 의정활동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는 절박한 민생과제가 있는 곳에 의원들이 함께 해야 한다"며 농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당직자는 "이번 농성이 질 수도 있는 싸움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진보정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일단 민주노동당은 의원단회의나 최고위원회의 등 주요 회의를 농성장에서 진행하되, 낮 동안에는 의원들이 돌아가며 농성에 참여해 의정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농성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낮 12시께 같은 장소에서 당 결의대회를 가졌다. 김혜경 대표는 집회에서 "농성장은 파병철회 투쟁의 자리일 뿐 아니라 노동자, 노점상, 농민 등 민중 생존권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또한 황종열 목사는 "진보적 종교인들이 이 제국주의 전쟁을 막지 않는다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종교인들의 동참을 호소한 뒤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예수다, 여러분이 바로 예수"라는 말로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민주노동당은 결의대회를 마친 뒤 시내 선전전에 나섰다. 오후 3시에는 각계 인사들과 농성장에서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고, 오후 7시에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뒤 최고위원단과 의원단회의를 열고 취침에 들어간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후 각 사회단체에 연대를 요청하고, 오는 25일 당대회에 당원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등 농성의 폭과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농성 기간동안 지하철 투어, 차량 스티커 나누어주기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민들의 관심을 모은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