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대의 안병직 교수는 지난 15일 중앙일보에 “친일청산, ‘마녀사냥’돼선 안돼”라는 제목으로 친일청산에 대한 비판적 시론을 쓴 바 있다. 그의 글에 반론을 제기한다.

우선 제목부터 틀렸다. 안교수는 친일청산을 ‘마녀사냥’에 비유하고 있다. 너무한 것 아닌가. 역사를 공부한 학자로서 친일청산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금은 아실만한 분이 친일청산을 마녀사냥에 비유하시다니...중세의 마녀사냥이 뭔지 모르시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무슨 ‘정치적 저의’가 있든가?

그는 우선 “특정인물, 특정언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있어, 일제 과거청산 문제가 다시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친일청산은 우리 국민의 오래된 염원이라 할 수 있다. 해방후, 식민지 시절의 친일부역행위자 처단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자들은 다시금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하시던 분들은 자손까지도 사회의 하류계층으로 전락하는 기막힌 역사가 연출되었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우리 국민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다.

작년 12월에 국회에서 전액삭감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기금 5억원을 네티즌을 포함한 국민이 불과 11일만에 모아준 것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친일청산 문제를 누가 정치적 논란거리로 제조하고 있는가? 바로 그가 기고한 중앙일보와 친일신문으로 알려진 조선, 동아일보다. 안교수는 슬쩍 그들의 주장을 옮기며 마치 우리 사회에 친일청산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있는 양 말하고 있다.

그는 일제 과거청산에 대해 몇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다며 “진정한 의미의 과거청산은 불행한 역사의 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다음이 이상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친일파 규명작업을 일제 과거청산 작업의 전부인양 여기는 듯하다”

친일파 청산은 과거청산의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을 놔두고 다른 것을 먼저 얘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또 설사 친일진상 규명작업이 과거청산 작업의 전부라고 해도 크게 틀린 것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비아냥거림으로써 주장하려는 것이 무언가. 과거청산에 있어서 친일진상규명보다 더 중요한데도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

그 다음 이어지는 그의 글을 보자. “친일세력의 행적을 규명하고 심판함으로써 식민시대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간단하고 편리한 과거청산 방식일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친일세력의 행적을 규명하는 것이 간단하다? 안교수는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과거 사실을 규명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려있지 않은 단순한 문제에 대한 규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진실규명이다. 더구나 그 후손들이 아직도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런 작업이 간단하다? 그리고 편리한 과거청산 방식이다?

그도 사학자인 이상 분명 과거의 반민족행위를 수십년이 지난 뒤에야, 그것도 그들의 후손들이 국가통치의 핵심적 위치에서 많은 증거들을 인멸하고 난 뒤에야 규명해내는 작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리 설정된 글의 목적을 위해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소양에 해당하는 것조차 내팽개치고 있다.

그의 그 다음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친일진상 규명작업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란다. 친일진상 규명작업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아하, 그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구토가 나려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학자로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싶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 이유가 “30년 넘게 지속된 일제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친일세력에만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안교수는 지금 그럴듯한 학자의 단어를 써가며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일제식민통치와 친일진상규명을 교묘히 동의어화하여 어물쩍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친일진상 규명은 별개의 문제다.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책임은 역사책에 나와있는 그대로다. 그러나 친일진상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그러기에 이렇게 국회까지 나서서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일제 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친일세력에게만 한정한다? 친일세력이란 일제 식민통치가 시작되고 나서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무리를 말한다. 누가 일제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친일세력에게 지운다고 했는가?

이건 야바위다. 안교수, 자신의 지위를 너무 과신한 나머지 너무 우쭐해있는 것 아닌가? 독자들이 그런 정도도 판독못하리라 생각하시는가? 이런 허무맹랑한 글을 가지고 반론을 쓰려고 시간낭비하는 것이 참으로 내자신 한심스러워 보이지만 어쩌겠는가, 내친 걸음인데. 다음의 그의 글을 계속 보자. 점입가경이다.

“친일행적을 은폐하거나 호도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고 비난받아야 할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옳으신 말씀. 거기서 그쳤더라면 참으로 좋을뻔했다.

그런데 그는 “그러나 대량학살, 인종차별, 고문, 인권유린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반인륜적 행위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이라는 특수한 가치에 반하는 부역행위를 과거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충분히 명분 있는 일인지 한번쯤 재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쓰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안교수 말대로 “대량학살, 인종차별, 고문, 인권유린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과거청산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시효를 두지 않고 처벌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대량학살, 인종차별, 고문, 인권유린 등의 반인륜적 행위가 이민족을 대상으로해서 저질러졌을 때만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족에 대해 그런 반인륜적인 행위가 자행되었을 때도 과거청산은 되어야 한다.

그러면 동족간의 대량학살, 고문, 인권유린 행위는 과거청산의 명분이 있고, 식민지 시절 동족을 배반하여 그들을 고문하고, 인권유린하고 대량으로 사지로 몰아넣은 부역행위는 과거청산 대상으로서의 명분이 없다는 말이 되나?

가슴이 답답하다. 이 글이 정말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가 쓴 글이란 말인가. 제 나라의 불행한 시절에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부역행위가 ‘특수한 가치’인 ‘조국과 민족’에 반하는 부역행위이므로 과거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말이 역사학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정말 큰 일 낼 사람이다.

“친일행적을 폭로함으로써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얻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행적을 조사하고 규명하는 노력은 안교수에 의해 ‘폭로’ 수준으로 비하되고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얻으려 하거나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정도의 수준낮은 행위로 절하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도덕적.정치적 명분만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역사적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행위를 재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과거청산의 명분과 당위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현재의 정치적 필요성에서 접근할 경우 과거청산작업은 일방적이고 흑백 논리적인 심판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라든가 “역사적 현실이나 행위의 복합적 측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는 안 될 것이며 현재의 행동규범을 잣대로 역사적 행위를 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극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을 바탕으로 역사적 행위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 '죽은 자'에 대한 마녀사냥이 돼서는 더더구나 안 될 것이다.”라고 한 단락을 온통 걱정과, 사실왜곡으로 채우고 있으며 친일진상 규명 노력에 대해 계속 깎아내리고 있다.

특히나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을 바탕으로 역사적 행위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라는 부분은 악의적 사실왜곡이다. 법안을 보면 모든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규정해놓고 있다.

그런데도 안교수는 무엇이 그렇게도 걱정스러운지 걱정이 지나쳐 도를 넘고 있다. 아예 작심하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친일진상 규명이 ‘죽은자’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폭언에 어찌 대항할 수 있겠는가. 그저 한발 물러설 수 밖에.

도대체 우리의 불행한 식민지 시절에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무리들에 대해서 물리적 단죄도 아니고 역사적 심판을 하자는데 반대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언가? 거기에 무슨 ‘정치적 저의’가 있는가? 이건 친일진상규명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들 그리고 그에 동의를 하는 많은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래, 거기엔 ‘정치적 저의’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안교수가 지적했듯이 특정인물과 특정언론이 그 법안에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특정인물과 특정언론의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한 자나 집단이 그 법안에 의한 조사대상에 포함된다고 그 법안 자체를 ‘정치적 저의’가 있다고 매도하는 것은 그 또한 ‘정치적 저의’가 있는 것이며 그 ‘정치적 저의’는 더욱 불순한 ‘정치적 저의’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친일청산 자체를 반대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주장하라.

“외국의 과거청산 사례가 주는 교훈은 과거청산이란 성찰과 관용을 통한 미래지향적인 노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허설수로 들으면 공자님 말씀처럼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틀렸다고 본다. 외국 어느 나라에서 반민족행위자에게 성찰과 관용을 베풀었는가? 성찰은 있으되 관용은 행위에 대한 조사가 철저히 진행되고 난 연후에 당사자들의 참회를 전제로 베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지금 국회에 제출되어있는 법안의 제목은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친일진상규명법)이다. 해방후 60년이나 지난 연후에 이제서야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관용을 어떻게 베푼다는 말인가? 그런 소리를 하려면 친일진상규명법 통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나서 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안교수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그저 그럴듯한 단어들만 나열하면 문장이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안교수는 이제 “즉 과거청산은 불행한 과거 경험의 당사자뿐 아니라 한 사회전체가 자기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딪치고 성찰해야 할 문제로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받고, 시시비비와 논란의 대상이 된다면 갈등과 혼란, 분열과 반목만 초래할 뿐 진정한 반성과 성찰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로 그의 글을 마친다.

그는 끝까지 말장난을 하고 있다. “갈등과 혼란, 분열과 반목” 어디서 많이 듣던 상투어다. 소위 거대신문이 요즘 용트림을 하며 내뱉는 말들이다. 그는 깊은 ‘성찰’없이 그저 거대신문의 나팔수가 되어 분열의 언어를 되뇌고 있다.

과연 이 사회에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누구인지에 대한 안목도 없다면 교수직을 던지든지 그것도 싫다면 그저 조용히 사는 것이 그나마 남아있는 명예에 먹칠하지 않고 사는 길이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는 안교수의 글을 읽으며 그의 이런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혼란케 할 것인지, 비뚤어진 역사관이나 사회관을 가진 지식인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오도할 것인지, .지식인의 사회적 폐해를 실감하고 있다.

시론을 쓰려면 문장 하나 하나 진실에 기초한 단단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안교수의 시론은 문장 하나 하나가 엉성하기 그지없다. 앞뒤 논리도 안 맞고, 역사학자로서의 예리한 판단도 엿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안교수에게 충고한다. 글을, 그것도 중앙일간지의 시론같은 큰 글을 쓰려면 쓰기 전에 우선 사실부터 파악하기 바란다. 비뚤어진 역사관으로 감정과 목적을 앞세우지 말고. 이글은 순전히 목적에 맞춰서 철저히 ‘정치적 저의’를 갖고 쓴 글이다. 학자로서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나는 안교수에게 지금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의 홈페이지(www.minjok.or.kr)로 들어가 친일진상규명법이 얼마나 오랜 세월 어렵사리 진행되오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길 권한다. 관심을 서양사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굴절된 현대사에도 좀 기울이길 바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