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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안치환
가수 안치환 ⓒ 노순택
먼저, 음반 1/3에 해당하는 5곡이 미국을 비판하는 노래다. 이는 우리 운동이 반미운동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으며, 시대정신이 민주주의 쟁취의 차원을 넘어서 민족자주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번 안치환의 새 앨범은 참다운 노래를 고민해 온 고통의 산물이며, 걸작이다.

그는 미선이와 효순이의 열다섯 희망을 짓밟아버린 피를 부르는 오만한 양키들에게 떠나라고 외치고(피묻은 운동화), 악의 제국 아메리카에게 성난 목소리로 Fucking을 퍼부으며(America), 살찐 USA의 전쟁을 멈추라고 촉구한다(Stop the war).

또한 이라크로 파병되는 우리 군대가 그저 미군의 총알받이일 뿐임을 안타까워하고(총알받이), 미 대사관 앞에 우리 국민들을 줄 세우는 미국이 싫다(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고 고백한다. 미국에 대한 분노가 생생히 담겨있는 그의 노래들은 한없이 거칠어 흡사 반미 집회에 와 있는 듯한 질감으로 와 닿는다.

그의 록은 펄떡이는 시대의 요구를 담으며 생생하게 살아나 시대적 요구를 감동적으로 형상화한다. 이것은 참다운 예술이 시대의 요구에 정확히 조응할 때 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그의 반미노래들은 최근의 반미열풍에 일시적으로 영합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01년 7집 앨범을 낸 이후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중음악계의 선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나이, 그는 이제 민중음악계의 최선두에서 활동하는 맏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왔다.

이번 앨범에서 드러난 그의 결론은 시대의 외침을 정확히 담고 노래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타협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로 앨범 속지를 기록하였고, 이전의 앨범과는 달리 방송용 노래를 한 곡도 넣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주었다.

<내가 만일>이 히트한 이후 방송용 곡들을 한 두 곡씩 넣어왔던 이전 앨범들과는 달리 이번 앨범은 사실 방송 심의에 통과하기 어려운 곡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위치를 다시 민중가수로서 분명히 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기도 하다. 이는 대중가수로서도 일정한 지명도를 갖고 있는 그로서는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닐 터다.

가수 안치환
가수 안치환 ⓒ 노순택
민중가수와 대중가수의 경계를 오가는 그의 활동에 대해 강한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잦아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안치환과 자유의 8집을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단지 시대의 요구를 적확하게 담아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안치환다운 음악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으며 싱어송라이터로서 안치환의 능력과 밴드 '자유'의 호흡이 잘 어우러어졌다.

새 앨범에서는 부당한 시대를 향해 토해내는 사자후같은 그의 외침을 들으며 통쾌한 감동을 만끽함과 동시에 안치환 특유의 나지막하고 깊이있는 목소리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사실, 거칠고 날선 분노의 목소리는 다른 민중가수들도 가지고 있어 그 차별을 드러내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의 노래 <오늘도 미국대사관 앞엔>에서 보여주는 안치환의 담담한 분노의 고백은 반미가요의 한 절정을 이룬다.

또한 우리의 이기주의를 고발하는 노래 <개새끼들> 역시 특별히 귀기울여할 곡으로서 <자유> 이후 안치환의 보컬이 가진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가장 안치환다운 곡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 앨범을 더욱 풍요로운 것은 작사를 맡은 시인 정지원과 안치환의 행복한 결합이다. 이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이미 성공적인 만남을 선보인 바 있는 이 두 예술가는 이번 앨범에서는 3곡의 합작품을 내보인다.

"무명실 같은 달빛마저 떠나간 저문 강가에서 차르륵 차르륵 풀벌레로 울다 당신 생각에 더듬이가 부러져 그만 물속으로 들어가버린 내 마음이 빛이 닿은 물의 눈동자처럼 당신 속에 퍼질 때 새삼 타는 듯 그리워지겠지요(물 속 반딧불이 정원)"와 같은 섬세한 노랫말은 최근 우리 대중가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서정이다.

가수 안치환과 자유
가수 안치환과 자유 ⓒ 노순택
정지원의 시어들을 길어 올려 노랫말로 바꾸어 낸 안치환의 감각은 류시화의 시에 기초한 그의 또 다른 걸작 <소금인형>에 견줄 만하다. 또한 밴드 '자유'의 연주도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게 안치환의 목소리를 티나지 않게 살리며 서로 상생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아쉬운 점은 밴드 '자유'의 코러스가 다소 생동감이 없는 점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앨범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안치환의 5집 이후 아쉬웠던 6집과 7집의 긴 시간을 거친 후 음악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더욱 단단해진 새 앨범이 안치환 음악의 새로운 전기를 열어가는 신호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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