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YMCA 건전 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여름방학을 맞아 청소년을 위한 좋은 비디오 30편'을 선정하였다고 지난 18일 발표했다. 그 중 우리나라 영화로 눈에 띄는 것이 <아홉 살 인생>이다.
<아홉 살 인생>에 나오는 '여민이, 우림이, 기종이, 금복이'는 모두 아홉 살이다. 집안이 가난하거나 살림살이가 넉넉한 것에 관계없이, 부모가 있든 없든 똑같이 아홉 살이다.
그런데 여민이는 정말, 아홉 살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의젓하고 속이 꽉 차 있다. 내 어릴 적 아홉 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3년 전이 아홉 살이던 12살 큰 아이는 또 어떤 모습이었지? 그리고 1년 후면 아홉 살이 되는 둘째 아이는 어떤 모습을 지닐까? 아마도 여민이 처럼 눈을 다친 어머니의 색안경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거나 똥 푸는 인부 보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으니까.
정말, <아홉 살 인생>의 영화에 나오던 70년대에는 집집마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곳도 많았고 우스개로 말하는 푸세식의 재래식 화장실이 흔했다. 또 지금은 흔하게 보고 가질 수 있지만 그때는 고급스런 필기도구와 책상, 이불이 참 귀했다.
여민이네 집의 살림살이가 드러나는 낡은 앉은뱅이 책상과 이브자리가 내 눈에는 친숙했지만 영화를 함께 보던 두 아이는 그것을 낯설어 하고 신기해했다. 아마도 세대차이(?)란 이런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3학년인 여민이는 5학년 선배 '검은 제비'와 어마어마한 덩치의 '고릴라'와의 싸움에서 이긴다. 그렇다고 골목대장이라 하여 허세도 부리지 않는다. 가난한 부모님에게는 착한 아들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의리 있는 멋진 친구다.
하지만 서울에서 전학온 새침떼기 우림이와 여민이에게는 묘한 설레임이 생기고 친구들과는 갈등이 생긴다. 여민이와 우림이 사이에 맴도는 분홍빛 감정을 재미있게 보면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와 함께 빙그레 웃었다.
이 둘의 풋사랑이 그려지는 동안에 오금복의 배역이 시선을 끌었고 무척 돋보였다. 금복이는 조금은 못생기고 깡충한 단발머리에 내 어릴적 모습을 많이 닮았다. 도시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만 자란 두 아이가 깔끔하고 도시적인 우림이 보다는 금복이 편을 들면서 처음 느꼈던 세대차이(?)가 조금씩 사라졌다.
이윽고 우림이가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고 우림이는 여민이에게 편지를 보낸다. 내용은 여민이에게 첫번째가 되고 싶지만 어머니가 첫번째이기 때문에 기꺼이 두번째의 소중한 사람으로 머무르겠다는 것. 이 편지는 그동안 별것도 아닌 일에 까탈을 부렸던 우림이의 얄미운 짓도 곱게 보아넘기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나간 아홉 살도 인생으로서 거듭나는가 보다.
영화 <아홉 살 인생>을 보기 전에 '아홉살 인생 (지은이 : 위기철, 출판사 : 청년사)'의 책을 먼저 읽어서인지 원작과 다른 줄거리와 분위기를 살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를테면 원작 소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던 금복이 배역의 캐릭터가 두드러진 점과 아홉 살의 풋풋한 사랑이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소리없이 쌓이는 눈처럼 가슴에 남았다.
105분 동안의 영화 <아홉살 인생>은 건전 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에서 밝힌 것처럼 문화 감수성 계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상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여름방학을 시작한 자녀를 학원과 학습지로만 내몰 것이 아니라 함께 <아홉 살 인생>을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함께 보다보면 세대차이가 줄어들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