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에어 납치사건>(북하우스)은 추리는 물론이고 SF와 환타지 요소까지 가미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의 영국은 사람들이 문학과 예술에 열광하는 공간이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해가며 역사를 수정하려는 자들과 이들의 책동을 방어하려는 시간경비대 간의 대결이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악당 하데스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마틴 처즐윗>의 원본을 훔친 후 등장인물을 작품에서 끌어내 살해한다. 이후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고, 이에 주인공 서즈데이는 그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악당과의 대결구도 속으로 들어선다.
소설 속 주인공을 납치하여 암살한다는 설정이 이채롭다. 게다가 문학의 파급력이 사회 전체를 장악해 문학이 범행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이를 막기 위해 특수경찰이라 할 수 있는 '특수작전망'에 문학전담반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등 작품 전반에 기발한 설정들이 넘쳐 난다. 이것은 작가 특유의 장난기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 이에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사건들이 작품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기분이 영화를 보고 극장문을 나서는 느낌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추리소설로 <단테클럽>(황금가지)이 있다. 현 '미국단테협회'의 전신인 '단테클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추리소설 특유의 흥미진진함은 물론이고 당시의 미국의 시대상과 문단의 현실을 엿보는 재미도 전해준다.
단테의 <신곡> 번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유분방한 문인들과 이를 배척하는 문학보수주의자들 간의 분쟁을 통해, 당시의 문인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되었고 미국 문학계는 어떤 양상으로 치닫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나다니엘 호손, 허먼 멜빌 등 실존했던 문학의 거장들이 작품에 투입되면서 현장감이 극대화되고 있고, 그 밖의 다양한 고증들이 작품에 무게를 실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요소들이 허구와 실제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독자는 등장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긴장의 끈을 단단히 붙잡기 시작한다.
보스턴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엽기적 연쇄살인사건이 단테의 <신곡>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단테클럽이 분열의 조짐을 맞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가 궁금한 독자들은 이 책을 한 번 펼쳐보도록 하자.
<방각본 살인 사건>(황금가지)은 국내의 대표적 역사 추리 소설이다. 18세기 말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방각 소설(장사를 목적으로 상점에서 판각한 소설)이 유포되면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독특하게도 이 소설은,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중반부에서 드러내고 있지만, 사건과 연루된 이면의 정황들이 공간을 확장시키며 긴장감의 감퇴를 차단해준다. 무공과 지력을 겸비한 등장인물들은 마치 무협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도 하는데, 일반적인 무협소설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은 현실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작품의 실제성을 증폭시킨다.
또한 당시의 실학계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등 당대를 풍미했던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켜 상상의 실제화를 성공적으로 완성시키기도 한다. 90여 편에 달하는 참고문헌의 수를 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증의 양이 방대해 그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볼거리이다. 속도감 있는 문체와 소재의 독창성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나가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최근 독서계를 강타하고 있는 <다빈치 코드>(베텔스만)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은 로마 가톨릭을 포함한 현 기독교와 은밀히 교세를 이어가고 있는 밀교 간의 대립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성배의 향방을 두고 수천 년째 패권다툼을 하고 있는 양 파(派) 간의 진검승부가 서서히 시작된다.
루브르 박물관장 소니에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종교기호학자와 암호해독요원 등을 투입시켜 치밀한 골격을 직조해낸다. 지금까지도 상당 부분이 베일에 둘러싸여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작품의 신비구조의 요체가 되며, 기독교의 계파들을 통합하며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하게 된 '오푸스 데이'와 긴긴 기다림 끝에 이제는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시온 수도회' 간의 대립이 작품의 스케일 확장을 완성한다.
등장인물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지만 공간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쉴 새 없이 공개되는 숨겨진 음모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서사구조는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며 책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숨겨진 다빈치의 코드와 현란한 기호학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 최초의 추리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만큼 에드거 앨런 포는 추리소설에 관한 한 세기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모르그 가의 살인> 이외에도 포는 일련의 추리소설들을 발표해 주목 받은 바 있고, <검은 고양이>는 공포소설의 상징적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폐가에서 벌어지는 공포특급 <어셔 가의 몰락>은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기도 했다. <우울과 몽상>(하늘연못)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전집이다. 60여 편의 저작들을 환상, 풍자, 추리, 공포 이렇게 네 개의 장르로 나눠 묶었다. 앞서 언급했던 포의 대표작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 밖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장르별로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것은 포의 문학세계 전반을 읽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포는 과학적인 사고 전개를 중시했으며, 환상과 몽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들면서도 끊임없이 정신 상태와 심리의 변화를 논증하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저 유명한 시인 보들레르조차도 포의 작품들 앞에서 소설 창작을 포기한 채 번역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들레르마저 고개 숙이게 했던 포의 문학들을 오랜만에 한 번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납량의 사전적 의미는 '더울 때 바람 같은 것을 쐬어 서늘함을 맛보는 일'이다. 서늘함을 극대화시키기에는 단연 공포물이 최고일 것이다. 예기치 못한 공포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이어 잠시나마 더위를 가시게 해준다. 한여름의 불볕더위를 식히기 위해 공포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공중파 방송이 발맞춰 프로그램을 편성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더불어 여름이면 추리소설도 다른 계절에 비해 더욱 각광을 받는다.
추리소설은 공포감과 다소간 관련이 있긴 해도,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공포감 조장을 근원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왜 여름이 되면 추리소설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추리소설이 가지고 있는 시선의 흡입력 때문일 것이다.
본격적인 한기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추리소설은 특유의 흥미진진함으로 독자를 작품 속으로 몰입시킨다. 그렇게 사건의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더위를 잊은 채 이야기 속에 몰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드디어 더위가 상한가를 치기 시작하고 있다. 좋은 추리소설을 만나는 것은 여름이 아니더라도 기쁘기 한량없는 일이지만, 이 무더운 계절이 분위기를 달궈 주고 있기도 하니, 한 번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추리소설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도록 하자.
더구나 소개된 책들은 여느 문학 작품들의 문학성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니 '소양 쌓기'와 '더위 식히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