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했다'는 부분은 아프지 않은데 '우리가 안 변했다'는 조직 내의 소리가 더 아팠다."
홍콩 특파원 3년 생활을 마치고 최근 돌아온 이광회 <조선일보> 기자가 내부 시스템 변화를 촉구하는 글을 노보에 기고했다. 이 기자는 지난 2001년 6월 13일 홍콩 특파원으로 부임, 현지 근무를 마치고 지난 1일 본사 편집국에 복귀했다.
그는 23일자 <조선노보>를 통해 귀임 20여일간 급변한 국내환경에 꽤 당황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업계 독자감소와 광고매출 하락, 스포츠지 경영악화 등에 대해서는 "시대 변화이고 우리만 겪는 문제도 아니다"며 다소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 속 조선일보의 포지셔닝(정립) 문제 역시 "참여정부의 '조·중·동'이 겪는 공통문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는 "'3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우리 모습이 진정으로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러 면에서 회사가 꽤 많이 바뀌어져 있기를 은근히 기대했고 무임승차 좀 하고 싶었다"며 "'세상이 변했다'는 부분은 아프지 않은데 '우리가 안 변했다'는 조직 내 소리가 더 아팠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안티조선 하나도 안 무섭다... 외부 적보다 내부 적이 더 무섭다"
그는 "'우리가 안 변했다'는 부분에 대해 동감한다"고 전제한 뒤 "우리가 1등을 계속 유지해야 하겠기에 고민할 수밖에 없는 우리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또 "좋은 신문 제작을 위한 상하간, 국간 의사소통이나 미래를 준비하는 회사시스템 면에서도 3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부변화 모색을 위한 회사 요구에 처음에는 열심히 답하다가 나중에 외면했던 경험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실천과 행동이 없는 공허함의 반복이 가져다준 자포자기"로 표현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그는 외부 공세보다 내부 단속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홍콩에서조차 노사모, 안티조선들과 '홀로' 싸우곤 했다는 그는 "안티조선은 하나도 안 무섭다, 그러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조직 시스템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열정과 사명감에 불타는 우수한 인력을 신문업계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시스템과 효율성으로 업그레이드한다면 진짜 1등 신문이 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주문이다.
그는 하루 15가지 이상 신문이 쏟아지는 홍콩을 예로 들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노력과 실천이 신문위기 극복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료신문 <메트로>가 아시아 최초로 홍콩에 진출했지만 힘을 못쓰고, 기존 유력지나 정론지, 색깔 있는 신문 등이 부수에 관계없이 짭짤하게 돈을 벌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지난달 말부터 미래형 시스템을 위한 조직개편을 전사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노조 등 내부에서는 "내부 구성원들의 의식과 자세,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동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면서 사내 의사소통 활성화를 계속 지적해왔다.
다음은 이광회 기자의 기고 전문.
내부 시스템 변화가 필요한 때
선후배, 동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노조로부터 '홍콩 특파원 생활 3년의 무엇인가'를 써달라는 막연한 요청을 받고 왜 이리 머리가 복잡해집니까? 즐겁고 좋은 얘기를 쓰고 싶은데 그리 쓰면 노보(勞報) 지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은 왜 일까요? 지레짐작이겠지만 그만큼 사내 분위기가 경직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임한 지 20여일. 꽤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분초(分秒)를 다투고 급변하는 정보통신(IT)사회를 아날로그 시대의 기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것은 제 능력의 한계라고치자구요. 우리 사회에 빠르게 등장한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 그것을 정제하고 새 사회적 의제(agenda)를 설정해 나가야 할 조선일보의 포지셔닝(定位) 문제를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집니다. 하지만 이것도 별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참여정부'의 조·중·동이 겪는 공통 문제이니까요.
지난 20여일. 그간 이곳 저곳서 속앓이 목소리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3년만에 모처럼 만나 인간적인 얘기를 할만도 한데 간단한 수(手)인사 후 곧바로 이어지는 얘기들은 대충 이렇더군요. '세상이 변했다' '신문업계 독자가 감소한다' '(우리는 그래도 낫지만) 광고매출도 준다더라' '스포츠지(紙)는 망할 판이다…'. 이 정도 역시 괜찮습니다. 시대의 변화이고, 우리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지요.
제가 진정으로 안타깝게 느꼈던 점은 '3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솔직히 귀국 전 여러 면에서 회사가 꽤 많이 바뀌어져 있기를 은근히 기대했었습니다. 솔직한 속내를 나타낸다면 무임승차 좀 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변했다'는 부분은 아프지 않은데 '우리가 안 변했다' 하는 조직 내의 소리가 더 아팠던 것은 이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안 변했다'는 부분에 대해 저도 일정 부분 동감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1등을 계속 유지해야 하겠기에 고민할 수밖에 없는 100% 우리만의 문제입니다.
'느리다' '안 변했다'는 것과 관련, 정문에서 로비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편집국의 위치나 배치, 그리고 제 부서 자리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좋은 신문 제작을 위한 상하간, 국간 의사소통이나 미래를 준비하는 회사시스템 면에서도 3년 전이나 지금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란 여러가지이겠지요. 사람과 조직관리, 미래에 대한 비전, 각국(局)의 일하는 문화 조성…. (윗분들께서는 '밑에서 얘기가 올라오지 않는데 어떻게?' 하는 불만을 갖고 계신 것 같고, 아래에서는 '(위에서) 잘 들어주지 않는데?' 하는 고전적인(?) 상호불만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지난 3년 특파원 재임 경험 중 고백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회사 안에서 변화를 위한 '○○태스크포스팀' 이 몇 차례 만들어진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답했지요. 그러나 어느 때부터 그 같은 요청을 받으면 "또 개선안?"하며 외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실천과 행동이 없는 공허함의 반복이 가져 다 준 자포자기였다고 합리화해 봅니다만, 제 스스로 생각해도 그런 제가 싫더군요.
모두 어려움이 많지요. 겨누는(?) 세력들이 많아 꽤 지치셨을 줄 압니다. 저 역시 홍콩에서 '노사모' '앤티 조선'들과 '홀로' 싸우곤 했지요. 저는 앤티 조선은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습니다. 홍콩에서 투쟁(?)할 때도 수없이 다잡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조직 시스템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본사를 출입하는 모 미디어 주간지 기자 분이 '조직문화, 시스템, 미래 사업 경쟁을 위한 준비 등등에서 조선일보가 타 경쟁지들보다 앞선다고 할 수 없는데 기자들의 열정만은 최고'라는 취지의 글을 읽어봤습니다.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기자들의 열정' 만큼은 저 역시 100% 필자 주장에 동감합니다.
제가 홍콩에서 느낀 점이 이 부분이었어요. '열정과 사명감에 불타는 우수한 현 인력에 신문업계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시스템과 효율성으로 업그레이드한다면 진짜 1등 신문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기분 전환 좀 할까요. 우리가 조선일보를 생각하는 것 보다 바깥에서 우리를 더 높이 평가하는 때가 많아요.
홍콩 봉황(鳳凰)TV는 매일 아시아 주요 신문을 분석하면서 한국에서는 단 한 곳 '조선일보'만을 내 보이고 '밑줄 쫙' 그어가며 해설합니다. 최근 북한 용천 폭발 사고 때 단둥(丹東)에서 만난 모 국제통신사 중국인 여기자는 '한국의 TV방송보도는 못 믿지만, 조선일보는 믿는다'며 저를 졸졸 따라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홍콩 도서관에 비치된 한국신문은 역시 '조선일보' 단 한 곳입니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 케이스들입니다.
신문의 위기 문제도 그렇습니다. 홍콩은 신문왕국(王國)입니다. 하루에 15가지 이상이나 되는 신문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무가지 '메트로'가 아시아시장에 제일 먼저 진출한 곳 역시 홍콩입니다. 하지만 무가지 '메트로'는 힘을 못쓰고, 기존 유력지들이 힘을 쓰고 있지요. 유력지(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明報), 정론지(信報), 색깔있는 신문(대중지 頻果일보, 친중국계 문회보)등은 부수에 관계없이 짭짤하게 돈을 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노력과 실천입니다. 특파원 시절 홍콩을 들르신 한 퇴직 노선배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당신들이 만드는 것이야! 당신들이 잘 만들면 1등 되는 것이고, 못 만들면 떨어지는 것이지!"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만드는 것인지, 우리 모두 지금 고민하고 있지요. 이제는 실천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광회·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