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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오기 전에는 큰 것에서 자잘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 두렵고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미국에 딱히 돌봐 줄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본인이 다닐 학교(international office)에 전화나 편지를 사전에 해서 한국유학생 회장이라든가 아니면 한국 유학생을 연결해 줄 것을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에 간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한국에서 두 명의 여학생이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먼저 와 있던 유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새로 오는 유학생들을 공항에서 픽업하고 어느 정도 정착할 때까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는 유학생 사회에서 일종의 의무나 마찬가지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한국 유학생 총회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나, 마음이 약해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이일을 계속 떠맡게 된다. 그래서 유학생 모임이 있었을 때 회의를 한 결과 순번을 정하고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새로 오는 유학생들을 돕자고 합의를 보았다.

제비뽑기를 했는데 첫 번째가 나였다. 따라서 두 명의 여학생은 내가 맡은 첫 번째 손님이 된 셈이었다. 사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다는 것이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누구를 자상하게 돌봐주고 한없이 시간을 내주고 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

그런 가운데, 초반에는 서로 도움을 받고서도 오히려 도움을 준 사람에게 서운해하고 심한 경우에는 반목하는 상황까지 가는 경우가 있다. 유학생 사회라는 것이 미국의 어디에 있든 상당히 좁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계인지라 한국에서보다 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공항으로 마중 나가기로 되어 있는 날이 왔다.

두 명의 유학생 마중 나가던 날

두 명의 유학생을 마중 나가려면 나 혼자 나가서는 될 것 같지 않았다. 한 사람 앞에 커다란 짐이 적어도 몇 개는 될 듯싶어서 다른 두 명의 유학생에게 부탁해서 같이 나갔다. 1월초의 겨울밤은 제법 추웠고 공항으로 가는 거리의 조명은 어두웠다. 왜 미국의 밤거리는 이렇게 어두울까 하는 것이 늘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였다.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게 도착했다. 두 젊은 친구 중에 한 친구는 장거리 여행으로 인해 얼굴까지 하얗게 질려 보였다. 그 친구가 바로 개성 넘치는 K였다. 옛날 사냥꾼들이나 썼을까 싶은 둥그런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의 무게 때문에 그녀는 더 지쳐 보였다.

황당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수인사를 마치고 난후 수하물 코너(baggage claims)로 갔다. 비행기에서 내린 손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들의 물건을 찾아서 내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픽업하러 같이 나갔던 S가 K의 가방을 무우빙 벨트(moving belt) 에서 내리려는 순간 짧고 나지막한 비명소리를 터뜨렸다.

세로 가로 체크무늬로 된 그 가방은 17년 전 내가 제주도로 신혼여행 갈 때 들고 갔던 가방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이 가방에 문제의 원인이 담겨 있었다. 손잡이까지 김치 국물이 스며 나와서 질척거리고 있었다.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다. 순발력 있던 S는 화장실로 뛰어 가더니 손 닦아내는 커다란 두루마리 타월 휴지를 통째로 들고 와서는 손잡이며 가방 전체를 뒤덮어서 로비 밖으로 끌어냈다.

가장 당혹스러워 해야할 K는 얼굴에 아무런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워서 내가 한 소리를 했다.

"어떻게 된 거야?. 가방 안에 김치를 넣어 가지고 왔어?"

내 말은 아랑곳없이 K는 왜 이렇게 다들 호들갑을 떨고 야단인가 하는 표정이였다.

"항아리에다 김치를 넣어야지 맛있다고 해서 김장김치를 항아리에다 넣었는데 그것이 깨졌나 봐요. 달라스까지 국제선을 타고 올 때는 기내로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요. 달라스에서 여기까지 국내선을 타고 올 때는 모든 짐을 화물로 부치라고 하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됐어요."

맙소사. 항아리에다 김장김치를 담아 가지고 미국까지 날아오다니. K는 질척거리는 가방과 로비 전체를 요동치는 시큼한 김치냄새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는 마음에도 두지 않는 표정이었다. 오로지 '깨진 김치 항아리 때문에 그 맛있는 김치를 못 먹게 되면 어떻게 하나'하는 아쉬움이 얼굴에 잔뜩 배어 있었다.

냄새가 진동하는 체크무늬 가방을 누구 차에 실을까 순간 주저하는데 S가 포기하듯이 본인 차 트렁크를 열었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차에 늘 갖고 다니던 햇빛 가리개를 얼른 그녀의 트렁크 바닥에 깔아 주었다. S와는 내일 일찍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K와 P를 태우고 우리 집으로 왔다. 공항에서 내가 살던 집까지는 약 40분정도의 거리였다. 새벽 1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장거리 여행 끝에는 칼칼한 김치찌개가 좋을 것 같아서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두부를 설렁설렁 썰어 넣어서 미리 끊여 놓고 공항에 나갔다. K는 집에 들어와서 김치찌개를 먹으면서도 그 사냥꾼 모자는 벗지 않고 계속 쓰고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니까 샤워는 간단히 하고 피곤할 테니 얼른 자라고 하고 나는 아이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왔다.

두 친구들의 잠자리는 거실에 봐 두었다. 30-40분 정도가 지났을까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화장실 전부가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화장실 입구 카펫트까지 젖고 있었다. 미국의 화장실은 욕조 안에만 하수구 처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던 K는 샤워 커튼을 치지 않은 상태에서 신나게 바가지로 물을 퍼부으면서 샤워를 했나보다.

95년도에 교사연수 프로그램으로 캐나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가이드가 이런 저런 재미있는 경험담을 많이 들려주곤 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중의 하나가 한국에서 효도 관광 패키지로 오는 나이 드신 분들이 가장 실수를 많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욕실 사용이라는 것이었다.

욕조 밖에도 하수구가 있는 한국의 욕실 문화에 익숙한 분들이 무심히 욕조의 물이 넘치도록 물을 받아 가지고 목욕을 하다가 욕실의 물이 넘쳐서 호텔 복도까지 물바다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말을 들었을 때는 모두가 한바탕 웃었고, 혀를 몇번 끌끌 차면서 왜 사전 교육을 시키지 않느냐면서 책임소재를 따지기도 했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많아졌고 문화의 이해에 대한 생각들이 열려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겠지 싶었는데, K는 공항에서부터 우리의 기를 '팍팍' 죽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K의 말이 더 걸작이었다.

"아니, 왜 미국의 아파트는 이렇게 불편한 거예요?”

며칠이 지나서 학교 캠퍼스에서 우연히 K를 만났는데 환하게 웃으면서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사냥꾼 털모자에 인도풍의 요란한 긴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K는 반 학기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국적 불명의 옷차림과 행동을 하고 다니더니, 어느 날 주(State)를 바꿔서 학교를 옮겨(transfer)버렸다.

어디에 가든 굳세어라 K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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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음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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