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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은 사회 격리에서 사회 복귀로 그 목적을 바꾸어야 한다.
정신병원은 사회 격리에서 사회 복귀로 그 목적을 바꾸어야 한다. ⓒ 국가인권위
"10년 전에 이곳에 와서 그동안 한번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습니다."

언뜻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어느 수용자가 처지를 하소연하는 소리로 들리는 이 말은 부산의 A정신병원에 수용중인 환자들의 이야기다.

지난 2월 27일 아침 부산광역시. 목적지인 정신병원에 가기까지 몇 대의 택시를 놓쳐야 했다.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택시 운전사들은 모두 외면했다. 겨우 잡아 탄 택시는 부산시 변두리 동네로 들어서더니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갔다.

택시는 거의 산꼭대기에 다다라서야 멈췄다. 그제야 택시들이 왜 이곳으로 오는 것을 싫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개의 정신병원이 그렇듯 A정신병원 역시 사회와 격리된 곳에 자리잡아 돌아나가는 택시는 손님을 태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A정신병원은 1983년에 정신요양원으로 시작했다. 정신병원으로 변경된 뒤 현재는 300병상 규모의 시설을 갖춘 부산 지역에서도 꽤 알려진 곳이다.

“이거 조사하면 퇴원할 수 있나요?”

조사를 나갔던 당시엔 299명의 환자가 수용돼 있었다. 멀리 바다가 보였고, 부산시의 올망졸망한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임시 조사실은 본관 건물 한 켠에 마련됐다.

이번 조사는 퇴원했다가 재입원한 환자들이 실제로 퇴원한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해에 퇴원했다가 재입원 처리된 환자 10명을 무작위 추출했다. 이 가운데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환자를 제외한 5명의 환자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초반에 환자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국가인권위를 소개하고 조사의 목적과 신상에 불이익이 없음을 거듭 약속하자 그제서야 한 두 마디씩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정신병원 관련 진정을 접수할 당시 진정인이 제출한 사진. 양 손목이 묶인 환자가 침상에 누워 있다.
정신병원 관련 진정을 접수할 당시 진정인이 제출한 사진. 양 손목이 묶인 환자가 침상에 누워 있다. ⓒ 국가인권위
올해 53세의 여성인 강 아무개씨. 그는 1992년 3월 27일부터 이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강씨는 그동안 한 차례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했다. 12년여의 세월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처음 수용된 날짜와 수용 당시 이곳이 요양원이었던 사실만은 또렷이 기억했다.

강씨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환자들도 상황은 대동소이했다. 49세 여성인 임 아무개씨 역시 요양원 시절부터 수용돼 있었다고 했다. 37세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이 아무개씨도 역시 1993년 12월 27일 수용돼 현재까지 한 차례의 외출도 없었고, 퇴원 사실도 없다고 했다.

이 아무개(68)씨와 정 아무개(38)씨 역시 2000년에 입원해 한 차례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했다. 환자 5명 중 입원 일수가 가장 짧은 환자가 무려 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바깥 세상을 구경해보지 못한 셈이었다.

“이거 조사하면 퇴원할 수 있나요?”
“언제 나갈 수 있나요?”

낯선 이방인에 대한 불안감이 가실 무렵, 환자들은 하나씩 자신들의 소박한, 그러나 중요한 희망 사항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들의 절박한 하소연은 15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사설 감방에 구금되었던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퇴원 명령 사실도 알지 못한 환자

정신보건법 제24조 제4항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의 장은 보호자가 입원 동의서를 제출한 경우 매 6월마다 시ㆍ도지사에게 계속 입원 치료에 대한 심사를 청구하여야 하고 심사 결과에 따라 퇴원 명령을 받은 때에는 즉시 퇴원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병원은 법에 규정된 것과 다르게 운영되었다.

조사과정에서 병원측은 조사를 벌였던 다섯 명의 환자들이 모두 2003년에 실제로 퇴원 및 재입원한 사실이 없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강씨와 이씨에 대해서 이미 지난해 3월 정신보건심판위원회가 퇴원 명령을 내리고 병원 측에 퇴원시킬 것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강씨와 이씨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조사 당일까지 계속 정신병원에 입원돼 있었다. 그럼에도 병원 측은 이 두 사람이 정신보건심판위원회의 퇴원 명령에 따라 퇴원한 후 재입원한 것으로 처리했다. 서류 상으로만 본다면 아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 병원은 퇴원하지도 않은 환자를 마치 퇴원 후 재입원한 것처럼 처리해야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만약 환자가 퇴원한 후 재입원한 것이라면, 재입원 후 6개월 내에는 정신보건심판위원회의 계속 입원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병원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병원 입원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는 비단 이 병원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A정신병원의 조사를 끝내고 약 1개월 후 부산지역의 B정신병원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입·퇴원 서류가 없자 이 병원은 환자의 보호자가 서명하도록 된 입원동의서에 조사 당일 병원 직원이 환자 보호자를 대신하여 서명, 무인까지 해 제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국가인권위는 이 정신병원들의 불법행위 사실을 확인하고, 정신보건법 위반과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 침해와 제10조 ‘행복추구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해당 병원장들을 검찰총장에게 고발조치했다.

겨우 자기 이름만 쓸 수 있는 수용자들

이번 조사에서 보았듯 정신보건시설에 수용된 정신질환자는 폐쇄된 공간에서 신체의 제약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치료나 처우 과정에서 인권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영리를 추구하는 일부 병원들의 경영 방식은 정신질환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장기 입원한 정신질환자들은 더욱 더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중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된 수용자도 10년 이상 한 차례의 외출, 외박 기회도 없이 한 수용시설에 갇혀 지내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구금 시설의 수용자들은 사법부의 법적 심리와 판결을 거쳐 형을 확정받는 절차가 보장돼 있다.

모범적으로 수형 생활을 할 경우 가출소와 가석방의 기회도 폭넓게 열려 있다. 또한 최소한 자신의 형기가 언제 종료되는지, 그래서 사회에 언제쯤 나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래서 교도소 창문 크기만한 희망이라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만난 정신병원 환자들은 몇 년이고 기약 없이 갇혀 있어, 교도소 수용자들만큼의 희망이나 사회적 배려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위에서 10년 이상 수용되었다고 진술한 3명은 모두 겨우 자신의 이름만을 쓸 수 있을 뿐이어서 필자가 조사서류를 대필하였으나, 2000년에 입원 중인 환자는 그래도 아직 자필로 조사 서류를 작성할 수 있었다. 앞의 세 사람이 10년 이상의 장기 입원으로 인해 치료는커녕 오히려 글 쓰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과연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지난 해 이맘때 필자는 노르웨이의 한 국립정신병원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의 현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정신병원이라면 으레 연상되는 환자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한 높은 담도, 군대 내무반 같은 침실도 없었다.

지역사회와 격리된 곳도 아니었고 아예 쇠창살이나 강제 감금을 할 어떤 시설도 없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40여 평 규모의 전원 주택 같은 2층 건물 몇 개가 정신병원의 전부였다.

그 곳에서 새삼 확인한 사실은 정신병원의 치료 목적이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에 있다는 분명한 지향과 환자의 자발적인 협조가 치료 과정의 필수적 요소로 정착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환자의 자발적 협조 속에 이루어지는 치료 과정과 환자의 적극적인 사회복귀를 돕는 프로그램 운영은 앞으로 우리 나라의 정신질환자 의료 제도가 나아갈 한 방향을 암시하고 있는 듯했다.

현재 정신의학계에서는 우리 나라에 정신장애자와 알코올 환자를 제외한 정신병 환자만 약 50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단순히 그 숫자만 봐도 이제 정신질환자들의 인권문제는 극소수의 개인이나 불운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정신질환자들을 무조건 시민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별도의 시설에 장기간 격리해 온 오래된 관행에 심각한 인권 침해를 낳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문제에 대해 분명한 사회적 자각과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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