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칼텍스 정유가 파업중인 노조원의 해고시한을 다음달 2일로 못박고 있는 가운데, 노조가 이에 맞서 집결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30일 LG정유 여수공장 앞에서 직권중재 철폐를 위한 대규모 규탄집회를 갖고 정부에 '직권중재 철폐'와 '자율교섭'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이날 '전국노동자 대회'에는 김정곤 LG정유 노조위원장 등 산개투쟁을 벌이고 있는 LG정유 조합원 700여명을 포함, 경찰 추산 5000여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참석했다. 산개 투쟁 중인 LG정유 노조가 집결투쟁을 전개한 것은 지난 21일 서울에서 개최된 민주노총 총력투쟁 이후 처음이다.
이날 집회에는 이라크 파병 중단을 외치며 단식 10일째를 맞는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함께 참석해 "직권중재 제도는 노사 자율교섭을 가로막는 악법"이라며 "노동탄압 중단"을 주장했다.
"직권중재, 노무현 대통령도 과거에 폐기 주장"
이수호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직권중재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제도"이라며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사문화 된지 오래고, 자율교섭을 막는다는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시절 폐기를 주장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600여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 오염을 유발시켜 온 기업에 매출액의 0.01% 정도를 지역 발전기금으로 출연하라는 요구 무엇 하나 잘못된 주장이 있느냐"며 "노조가 요구한 것이 임금이었느냐. 왜 직권중재를 끼워 넣어 노사 자율교섭을 어렵게 하느냐"며 직권중재 제도를 강력하게 성토했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은 "주 5일제 근무는 기본적으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신을 담고 있는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며 "자본가들은 주 5일제를 오히려 노동탄압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집회에서 직권중재는 정당한 노동 3권의 하나인 단체 행동권을 박탈하는 악법중의 악법이라며, 사측은 이를 핑계삼아 처음부터 교섭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 "거짓 보고 가만있지 않겠다" | | | |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경찰의 거짓 보고에 발끈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이날 집회연설에서 "오는 길에 경찰에 LG정유에 경찰력이 투입돼 있느냐고 확인한 결과, '안됐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그런데 웬 닭장차가 이렇게 많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지난 19일부터 경찰병력을 공장 안에 상주시킨 데 이어, 이날 노조원들의 공장 진입을 막기 위해 30개 중대를 배치해 경비에 나섰다. 경찰은 수송버스를 동원해 정문을 겹겹이 가로막은 데 이어, 소방호스 등을 동원 경비를 강화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 의원은 "거짓 보고한 경찰에게 공식적으로 경고한다"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일삼는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엄포했다. | | | | | |
또 직권중재를 이유로 노조의 정당한 요구마저 불법파업으로 몰아, 공권력 투입과 해고·손해배상 소송이라는 악순환만을 야기한다며 즉각 철폐를 주장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분규를 겪고 있는 LG정유는 이날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공장 안 건물 옥상에는 관리자 100여명이 일손을 놓고 집회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한편 파업중인 노조원의 가족 150여명도 이날 집회에 집단적으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수배자 신분으로 명동성당 농성을 진행중이었던 김정곤 LG정유 노조위원장도 노조원 700여명과 함께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명동성당에서 나와, 이제 당당하게 산개투쟁을 접고 진격투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해 노조의 투쟁방식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공식 선언했다.
LG정유 노조 변화 주목... 8월 2일 분수령 맞을 듯
김 위원장은 "회사는 관리자와 비정규직을 동원해 무리하게 공장을 가동하다 몇 번 폭발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 보다시피 공장은 정상 가동되고 있지 않고 있다"며 "정권과 자본은 직권중재와 공권력 투입으로 노조에 굴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노조 간부를 몇 명 구속한다고 해서 이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파업이 더욱 확대되지 않도록 회사측은 오늘 시점으로 조속히 교섭석상에 응하라"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석한 5000여명의 노동자들은 이어 오후 5시 50분경부터 로프를 이용해 공장 진입을 시도하는 등 한때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참석자들은 미리 준비한 로프를 담장에 걸어 당기는 방식으로 담장 50여m를 뜯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형 소방호스를 동원한 경찰의 강력한 저지로 공장 진입은 무산됐다.
한편 회사는 이날 호소문을 통해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지역발전기금 출연은 임금인상을 위한 포장용 문구"라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고자 대화보다는 힘을 앞세운 파업을 택했다"고 주장했다.
| | "공세적 대응... 민-형사 문제 선결돼야" | | | [인터뷰] 김정곤 LG정유 노조 위원장 | | | | - 산개투쟁을 접고 '진격투쟁'이라는 표현으로 전술을 전환한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현장 진입 투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조합원들끼리 상황도 공유하고 의지를 다지자는 측면이다. 산개투쟁은 수세적 방식이어서 앞으로는 공세적 방식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 그러면 이후 현장 진입을 위한 일종의 거점농성 형태가 될 것인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산개투쟁이 될 수도 있고 집결투쟁이 될 수도 있다."
- 오늘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은 몇 명쯤 되나. 회사측에서는 29일 파업참가 조합원중 복귀자가 175명으로 발표했다. 노조도 이를 인정하는가.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조합원은 700여명이다. 조합원은 어제까지 120여명이 복귀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국의 저유소에 근무하는 조합원이 50여명쯤 되고 나머지는 여수 본공장 조합원들이다. 그러나 운전부서는 거의 이탈이 미미하다."
- 직권중재 결정으로 현행법상 노조가 요구하는 자율교섭 가능성은 차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투쟁 방향을 잡을 것인가.
"파업 대오를 끝까지 유지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자율교섭이다. 아울러 조합원의 민·형사상의 문제도 선결돼야 한다."
- 사측과 대화의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현실적으로 민·형사상의 문제가 더 크게 와 있지 않나.
"민·형사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사측이 직권중재 결정서 하나로 교섭이 다 끝났다고 하는데 대해서는 결코 굴복할 수는 없다." | | | | | |
| | | "LG칼텍스정유, 막대한 이윤 해외 유출" | | | | 김정곤 LG정유 노조위원장은 이날 "LG칼텍스 정유는 미국 셰브론텍사코가 대주주로 매년 막대한 이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일자리 창출은 미국 석유 자본이 가져가는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내는 투쟁이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집회에서 "사실상 LG정유의 주인인 셰브론텍사코는 미국내 2대 석유메이저이다"며 "전체 매출액의 1.3%에 불과한 임금을 지급하면서 해년마다 엄청난 이익을 챙겨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LG칼텍스정유(당시 호남정유)는 럭키와 미국 칼텍스의 합작을 통해 1967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회사다. 주식은 칼텍스(Caltex)가 40%, 셰브론텍사코(ChevronTexaco) 10%, (주)LG가 50% 정도.
"5년간 3000억원 가까운 돈 유출... 비정규직만 늘어"
칼텍스는 세계 4대 석유메이저인 세브론텍사코의 자회사. 셰브론텍사코는 다국적 석유판매회사인 칼텍스(Caltex Petroleum Corporation)를 통해 1967년 LG와의 50:50 합작으로 국내 석유시장에 참여해 왔다. LG칼텍스 정유의 제1대 주주는 셰브론텍사코인 셈.
ChevronTexaco는 전세계 180개국 이상의 나라에 진출해 있으며, 전 세계 22개 정유공장에 하루 270만 배럴의 원유정제능력과 2만5000개의 주유소를 보유하고 있다.
권희중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글에서 "셰브론텍사코는 이라크전 이전에 이라크에서 석유를 수입했던 회사중의 하나다"며 "현 백악관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 회사의 이사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권 연구원은 아울러 "이 회사는 이라크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뉴욕시민들의 반전시위에서 '우리는 텍사코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권 연구원은 "LG칼텍스 정유의 지난 5년간(1999∼2003) 당기순이익은 1조 2400억원으로 연평균 2500억원에 달한다"며 "주주들은 이중 5880억원, 연평균 1176억원을 배당금으로 가져갔다"고 밝혔다. 또 "2002년, 2003년에 각각 3800억원과 39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며 "2003년 한해에만 자본금의 98%인 2550억원을 배당했다"고 말했다.
권 연구원은 "LG칼텍스 정유는 외국인 투자기업이어서 외국인 주주에 대한 이익배당은 전액 해외송금이 가능하다"며 "5년간 3000억원 가까운 금액이 초국적 자본인 셰브론텍사코에 유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권 연구원은 특히 "지난 5년간 LG칼텍스 정유의 매출은 약 7조 5000억원에서 11조 7000억원으로 55%가 증가했지만, 생산직 노동자수는 1074명에서 1076명으로 단 2명이 증가했다"며 "대신 비정규직은 2000년 82명에서 2003년 294명으로 증가하고, 외주용역비도 1999년 367억원에서 2003년 492억원으로 34%가 늘었다"고 주장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