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 어머니의 마음으로 대통령을 뵙고 싶습니다. 테러를 걱정하지만 파병하지 않는 것이 테러방지 아닙니까? 평화재건이 목적이라면 노동자들을 보내야하는 거 아닙니까? 3일에 출병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더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그 전에 꼭 만나서 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8월 1일 오후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가 병실을 찾은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과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이라크 추가파병 철회를 눈물로 호소했다.
파병철회 무기한 단식을 진행하다 면목동 녹색병원에 입원한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는 급격한 혈당 저하로 포도당 주사를 맞았지만, 병원 측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미음은 입에 대지 않았다. 김 대표가 입원한 병실에는 병원장이 직접 '면회사절'이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이병완 홍보수석을 만나 "대통령을 만나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60여명의 의원들이 (파병재검토 뜻을) 함께 하고 있는데 재논의하자"고 말했다. 이어 오후 2시 30분에는 신기남 의장을 만나 "우리 당의 단식도 중요하지만 여당이 힘을 좀 써달라"며 "신 의장께서도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병완 홍보수석은 "걱정하시는 뜻을 꼭 전달하겠으니 빨리 쾌유하시라"고 답했고 신기남 의장도 연신 "충분히 의사표시를 하셨으니 저희에게 논의를 맡기고 건강회복에 전념해달라"고 말했다.
이날 김혜경 대표는 짧은 대화도 힘겨운 듯 가쁘게 숨을 쉬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고, 기자들이 질문을 할 때는 눈을 감고 있었다. 대화 도중 답답한 듯 손으로 가슴을 누르기도 했고 가끔씩 눈물을 흘려 옆에서 간병하던 심상정 의원이 이를 닦아주었다.
김 대표는 이에 앞서 오전 11시께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우리 아들들이 떠나기 전에 대통령을 다시 만나서 마지막으로 (파병철회를) 호소하고 싶다"며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이 모두 할만큼 했고, 저도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났지만 '벽'만을 느꼈다"며 국민들에게 "직접 나서서 자이툰 부대의 출발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여야 정치인들, 특히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후배, 동료'들에게도 "마지막 희망을 거두지 않게 해달라"며 파병철회운동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다.
"민주화 운동 함께 하던 의원들, 희망을 거두지않게 해달라"
김 대표가 단식을 시작한 지는 벌써 10일째. 7일째였던 지난 7월 29일 저녁까지만 해도 생기를 띄고 농성일정을 소화했지만, 그날 밤 고열에 시달리면서 눈에 띄게 기력이 떨어졌다. 30일 오후 의사는 입원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밝혔고 검사 후에는 "안정이 필요하니 당장 입원하라"고 권했다.
신장식 비서실장은 "김혜경 대표가 원래 고혈압이어서 단식 중에도 약을 먹었는데, 오히려 혈압이 너무 내려갔다, 혈당도 떨어지고 간수치는 높아진데다 담이 결려 호흡과 대화가 고통스러울 정도"라고 전했다.
김 대표가 입원한 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7월 31일부터 전원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서울시지부장, 경기도지부장, 인천시지부장 등 수도권의 시도지부장도 이에 동참했다. 이미 이영희, 최규엽, 김미희 최고위원은 김 대표와 같이 10일째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 마련된 농성장에는 민주노총, 파병반대국민행동, 한총련, 이주노동자협의회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계가 합류해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장기 단식자만 60여명에 달할 정도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2일 오후 3시 파병반대국민행동과 함께 자이툰부대를 방문하는 '가자! 자이툰부대로, 타자 평화의 버스를' 행사를 열고, 오는 3일부터 매일 청와대 앞 항의집회를 연다. 이어 7일과 15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파병철회 대규모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국회 내에서 파병중단 및 재검토 여론을 모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정미 최고위원은 "파병재검토를 위해서는 국회가 임시회를 재소집해야 하는데, 국회가 휴가 중이고 뜻을 모았던 의원들도 대부분 외유 중"이라며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1일 릴레이 농성을 진행하는 가운데 농성장 지지방문을 조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또한 이후 추가파병이 강행될 경우 '자이툰부대 철군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은 지난 임시회에서도 '서희제마부대 철군결의안'을 제출한 바 있다.
다음은 김혜경 대표의 병상 기자회견문.
단식 열흘째를 맞아 국민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말씀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존경하는 당원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기자여러분. 제가 이라크에 우리 젊은이들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 단식이라는 다소 힘겨운 방식으로 국민여러분들에게 전쟁과 파병의 부당성을 호소하기 시작한지 열흘째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옛 버릇 못 버리고 또다시 "투쟁"만 일삼는구나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비아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내 진출했고 10명의 국회의원이 있느니만큼 다른 방식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국민 여러분들의 많은 조언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정말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10명씩이나 있다는 말씀도 사실이지만, 299명 중 10명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라크 파병철회를 위해 우리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은 모두 할만큼 했습니다. 국회농성, 거리집회 참여, 재검토 결의안 상정, 거리 선전전, 정부 주요인사들에 대한 설득작업, 각종 토론회에 참여하는 것까지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돌아온 것은 보수정치인들의 무시와 냉소였습니다. 소수정당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에서 어떤 발언권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재검토결의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알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상상한 것 보다 더 심각하게 보수정치인들이 국회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났습니다.
간절하게 호소했습니다. 추가파병 결정을 철회하자고, 아니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여야 의원들 60명이 함께 한 재검토 결의안이 국민들 앞에 토론되고 논의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임시국회를 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지도부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이미 결정 난 것이니 강행해야 한다. 파병철회는 테러에 대한 굴복이다." 매일 서로 싸우는 사람들이 이 문제 대해서는 어쩜 그렇게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는지 답답했습니다.
제가 그들을 만나고 깨달은 것은 거대하고 참담한 '벽'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밀어도 움직이지 않는 차가운 벽이었습니다. 그 벽에 대고 호소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국민여러분들께 직접 호소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이 잘못된 결정을 바꾸고 변화시켜내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민주노동당 5만여 당원들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3천여 당원들이 지금 릴레이 단식에 함께 하고 있으며 전국곳곳에서 폭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의 부당성을 국민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힘은 참으로 작고 부족합니다.
국민여러분들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화시켜낼 수 없습니다. 눈물로 호소합니다.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국민여러분들께 자이툰 부대의 출발을 막아주십시오.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에 경고를 보내주십시오. 민주노동당이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막아내고자 합니다. 힘을 모아주십시오.
대통령에게 촉구합니다. 파병강행을 중지해 주십시오. 아니 경고합니다.
대통령의 파병결정은 몇 달뒤면 후회할 결정이고 몇 년뒤엔 온국민의 비난을 받을 결정이며 이후 수천년동안 역사책에 우리민족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아니 김선일씨에 이어 우리 젊은이가 한명이라도 더 희생되는 날이 오면 이 정권이 직면할 위기는 상상하는 것 이상이 될 것입니다.
며칠 뒤면 자이툰 부대가 전쟁터로 출병하게 됩니다. 그전에 만납시다. 만나서 다시한번 대통령에게 간절하게 호소하고 토론하고 싶습니다. 정식으로 대통령 면담을 제안합니다. 자이툰 부대 출병이전에 만나 이 문제에 대해 호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어제 테러에 대비해 국민들에게 교육과 홍보를 잘 해달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테러로 인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위험에 빠질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강행하시는 것은 잘못입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테러에 대한 가장 올바른 대비는 명분도 이익도 없는 이번 파병결정을 철회하는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여야 정치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이번 재검토 결의안에 함께 해준 다른 당의 의원들에게 경의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제 며칠 뒤면 우리 젊은이들이 저 죽음의 땅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십시오. 한때 저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후배들, 동료들 지금 국회에 많이 계십니다. 어려운 줄 알지만 다시한번 여러분들의 양심과 진심에 호소합니다. 함께 나섭시다. 제가 여러분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거두지 않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저의 단식투쟁은 정치적 계산을 두지않았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이라크 파병반대투쟁은 당리당략이 아닌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진심의 호소"일 뿐입니다.
사실, 여론으로부터 냉소를 당할 각오도 이미 했습니다. 당 지지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이 부정적 인식을 넓히기 위해 민주노동당의 진심을 호도하리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첫 원내진출을 이룬 진보정당이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자기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시작한 것입니다.
몸이 아파 더 결연하게 당원들과 국민들앞에 나서지 못해 미안할 뿐입니다. 당 지도부 모두가 단식농성에 돌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제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을 제가 제대로 책임지지 못해 최고위원 동지들에게까지, 많은 당원동지들에게까지 부담지우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당원동지들에게 정말 고맙고도 죄송합니다.
2004. 8. 1 아침에
민주노동당 대표 김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