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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은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고 김지태씨의 유족들과 면담을 갖고 조사했다. 유족들의 증언을 듣던 장향숙 의원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입장이 실린 신문기사를 읽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은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고 김지태씨의 유족들과 면담을 갖고 조사했다. 유족들의 증언을 듣던 장향숙 의원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입장이 실린 신문기사를 읽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조성래 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 단장은 5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정수장학회가 조사 방법이나 절차에 대해 협의를 요구해 오면 응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표가 지난 3일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이번 기회에 조사 받아, 검증 받을 용의가 있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표명한 데 대한 화답인 셈이다.

조 단장은 이날 국회에서 정수장학회의 최초 설립자인 고 김지태씨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사단의 본래 취지는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부산일보·MBC에 대한 소유권을 유족에게 귀속시켜, 유족의 의사대로 공기로서 사회적 사명을 다하게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 쟁점화 되는 것을 경계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단장은 그러나 "사실이 명백한데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며 "명확한 설명이 없이 재산의 헌납이 정당했다고 하는 것은 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재산 환원 절차를 밟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박 대표 측에서) 협의를 요청해오면 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사단원인 장향숙 의원도 "우리 자신의 역사를 바로세우지 않고 덮어놓은 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가는 것은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것"이라며 "박근혜 대표가 떳떳하게 검증 받겠다고 자신했으니, 우리가 조사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지난 4일 "(정수장학회) 형성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쪽(열린우리당)에서 조사한다고 하니까 확실하게 검증하라"고 말해 정면돌파 의지를 거듭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대표는 일부 언론에서 박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물러날 의향이 있는 것처럼 발언한 것으로 보도한데 대해 5일 "사퇴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 것은 내가 앞으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박 대표의 말씀은 일단 현재로서는 사퇴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부연했다.

박근혜 대표 "정수장학회 검증해라... 그러나 이사장 사퇴는 말한 적 없다"

한편 조성래 단장은 김지태씨 유족과의 면담 직후 브리핑을 통해 "군사정권 하에서 부인과 7명의 직원이 구속되는 등 심리적 압박 속에서 군 기무사 법무관실에서 재산양도각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 어떻게 정당한 헌납이냐"며 "강요된 상황에서 공포에 질린 나머지 양도증서에 날인한 것을 정수장학회 측이 정당한 헌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라고 주장했다.

또 조 단장은 이규택 한나라당 의원 등이 제기한 김지태씨의 친일 의혹에 대해 "근거없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수장학회 관련 유족의 주장을 폄하 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김지태씨의 셋째 아들인 영주씨도 "무슨 의도를 가지고 (아버지가) 친일을 했다는 뜬금없는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비열하다"고 분노했다.

첫째 아들인 영구씨는 "정수장학회는 장학 사업을 하는 곳"이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또 한 번도 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말해, 재산 귀속 이후 사회에 환원할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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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성래 단장이 전한 김지태씨 유족들의 진술 요지이다.

"부산일보 주식, MBC 주식, 부일장학회를 국가에 헌납했다고 하는 부분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군사정권에 의해 강취된 것이다. 김지태 회장이 1961년 당시 회사 설립 관계로 일본에 출장 중이었는데 군사 정부에서 사전에 계획적으로 그의 부인을 구속했다. 다이아몬드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관세법 위반을 적용한 것이다. 김지태 회장에 대해서는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죽은 이의 이름을 도용해서 등기를 넘겼다고 해서 사문서 위조 협의를 적용했다.

김지태 회장은 처음에 귀국할 생각이 없었는데, 부인과 직원이 인질처럼 돼있는 상황에서 결국 귀국을 결행했고, 귀국한 그날, 62년 4월경 바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연행이 됐다. 야간 열차로 부산으로 호송이 돼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에 구속이 됐다. 그 뒤 한달 반 동안 재산 헌납에 대한 강요를 받으면서 버티다가, 부인과 부하직원 7명이 구속된 상황에서 도저히 재산 양도를 동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고 판단, 큰아들에게 도장과 인주를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큰아들이 김 회장의 도장과 인주를 군기무사 법무관실로 가져갔고, 미리 작성된 권리양도증서에 당시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도장을 찍었다. 그 당시 김지태씨는 사문서 위조, 관세법 위반으로 7년형을 받은 상황이었지만 증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풀려나게 된다.

그 후 김지태 회장은 70년도 군사정부 아래서 재산 반환을 요청하는 청원을 냈고, 63년도에 서민호 등 의원들이 그 문제와 관련 정부를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을 벌였다. 99년에 이르도록 많은 국회의원들이 부당성을 지적했고, 유족들이 재산 환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이렇게 사실이 명백한데도 재산헌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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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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