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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동안 자동차 정비 아르바이트를 잠시 쉬고 태안 집에 내려와 있던 대학생 생질에게서 지난 3일 오전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왠지 들뜬 음성이었다.
이 달 21일∼24일 가족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하기 위해 여행사에 맡겨놓은 여권 중에서 자신의 여권을 급히 찾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생질이 이번 중국 여행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며 여권을 찾는 얘기부터 해서 나는 잠시 난감하고 우두망찰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기분 좋은 일이었다. 녀석이 취직을 하게 돼서 곧 일본 연수를 가게 된다는 얘기였고, 그 일본 연수 때문에 가족여행에 참가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당초 가족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던 사촌 형수님 한 분마저 사촌 형님 건강 문제로 빠진 일도 있고 해서 더욱 난감해진 나는 예산군 덕산면에 소재하는 여행사의 담당 과장에게 전화로 미안한 말을 전했다. 다행히 그는 다시 한 명이 빠져도 성인 9명에 초등학생 3명이면 단체가 유지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저녁에 내 생질의 여권을 태안으로 가져다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미안한 데다가, 생질이 오늘 당장 여권을 입수해서 회사로 우송해야 한다고 해서, 생질에게 직접 찾으러 가라고 했다. 읍사무소에 가서 회사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서류를 뗀 생질이 전화로 내게 차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는 최근에 운전면허를 땄는데, 운전 경력이 3년인 아무개 친구가 운전을 할 거라고 했다. 생질의 그 의좋은 친구는 성당 학생회장과 청년회장도 맡아하면서 봉사 활동을 참 많이 해서 여러 가지로 믿음직스러운 청년이었지만 내 차를 선뜻 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생질은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생질을 막상 버스 태워 보내놓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급한 원고 작업 때문에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업을 포기하고 생질에게 전화를 거니 서산쯤 가고 있다고 했다. 내가 차를 가지고 서산 버스터미널로 가기로 하고, 막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생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읍내 어떤 음식점에 놓고 온 제 서류들을 찾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생질의 취직을 축하하는 뜻으로 그 의좋은 친구가 점심을 사주었다는데, 거기에다가 깜빡 서류들을 놓고 왔다는 것이다. 완전히 장가가는 놈이 불알을 떼어놓고 가는 격이었다.
생질은 외삼촌의 서산시내 운전 불편을 고려했음인지 터미널이 아닌 석림성당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소견이 꽤 있다는 생각과 함께 절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생질 형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내 아내도 동행을 했다. 언젠가(아마 대학생 생질이 중학생 때였지…) 생질 형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은 큰외숙모라고 했을 정도이니, 아내는 그런 일에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서산 시내 10리 밖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하는 피서철 차량 행렬을 피해 서산과 태안 사람들만 아는 샛길들을 이용하여 수월하게 석림성당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 옆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생질을 태우고 덕산으로 가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생질은 반도체 부품 생산업체인 한·일 합작회사의 기술사원 모집에 응시를 했던 모양이다. 생질이 다니는 천안의 2년제 공업대 학생들과 여러 공업전문대 학생들 다수가 서류 제출을 했다고 했다.
1차 시험인 서류전형을 통과한 학생은 10명. 생질은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는 등 성적이 전반적으로 우수한 데다가, 수원의 삼성전자 공장에서 전자제품 조립 아르바이트를 한 경력도 있고 해서 무난히 서류전형을 통과한 모양이었다.
2차 시험은 면접. 서울 서초동에 있는 본사에 가서 다섯 명의 면접 시험관으로부터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 중에는 종교와 관련하는 질문도 있었다고 하는데, 잠시 그 부분을 소개해 보겠다.
문: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까?
답: 예, 천주교 신잡니다.
문: 신앙생활에 열심이신 편입니까?
답: 예, 신자로서 하느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신앙생활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 시겠습니까?
답: 제 직장이고 생업이니 만큼 직장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신앙 생활에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압니다. 천주교에는 토요일 오후의 특전미사도 있고, 주일 새벽미사와 저녁미사도 있습니다. 그런 게 왜 있겠습니까? 천주교는 직장인들의 원활한 직장 생활을 돕기 위해서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면접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다섯 명이 합격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섯 명 중에서 두 명을 일본으로 연수를 보낸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두 명 중 한 명이 내 생질이라는 얘기다. 출국 날짜는 이 달 17일에서 20일 사이. 그리고 연수 기간은 3개월.
그러니 대학생 생질이 가족여행에 참가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피차 섭섭하지만 잘된 일이었다.
생질이 취직을 하게 된 그 회사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괜찮은 회사인 것 같았다. 초임 사원의 연봉은 2300만원. 군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생질은 '소년가장'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군 현역복무는 면제될 것 같고, 그게 금년 12월 안에 결정이 날 것이라는데), 군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연봉이 어느 정도 삭감된다고 한다.
3시 20분쯤 덕산 읍내에서 여행사의 담당 과장을 만나 생질의 여권을 돌려 받았다. 그리고 우체국으로 가서 수신처에 다음날 도착할 수 있는 '빠른 등기' 우편을 부탁하니, 이미 마감이 되었다며 읍소재지인 삽교 우체국으로 가라고 했다.
삽교로 가다가 중간에서 차를 돌려 해미로 넘어가서 우체국에 가니 서산우체국으로 가라는 대답. 다시 서산시 읍내동 1호 광장 근처 우체국으로 가니, 활성동에 새로 생긴 집중 우체국으로 가라는 대답. 열이 나는 상황이었다. 결국 활성동의 서산시 집중 우체국을 찾아가서 겨우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또 한 번 생질을 위해서 시간 쓰며 수고를 했지만, 녀석이 좀 더 대견스러워져서 태안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옛날 이야기도 하나 했다.
녀석이 두 살 때였나, 엄마와 함께 외갓집에 와 있을 때인데, 제 엄마가 외출을 하자마자 거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똥 싸놓는 일을 저질렀다. 나 혼자 그걸 다 치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런데 그 얘기를 녀석은 남의 얘기로 들었는지 나중에서야 "지금 그게 내 얘기를 한 거예요?"하더니, "외삼촌은 별걸 다 기억한다"고 했다.
생질은 꽤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취업난 시대에, 더욱이 청년 실업률이 최고조에 올라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기에 과도한 경쟁을 뚫고 직장을 얻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신기한 모양이었다. 일본 연수와 앞으로의 직장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는 눈치였다.
일찍이 대기업에서 전자제품 조립 아르바이트를 한 경력도 있고 해서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을 터. 그러나 막상 한·일 합작회사에 합격하고 보니,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일망정 직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함으로써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질은 이런 농담도 했다. 자신이 면접 시험에서 시험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최종 합격자 5명중에서도 일본 연수를 가게 된 두 명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외모가 완벽한 미남이기 때문이라나. "제가 얼굴 덕을 많이 보고 산다니까요"해서, 얼굴이 잘생기지 못한 우리 부부는 녀석에게 핀잔을 하면서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은 또 "일본에 가서 사는 동안 일본 아가씨들이 날 좋아하면 어떡하죠? 벌써부터 걱정되네요"해서 우리 부부는 또 한번 웃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 중에는 가슴 아픈 얘기도 있었다. 무슨 얘기 끝에 내가 "우리 생질 녀석이 지 애비보다 훨씬 낫구먼"하니, 녀석이 "당연히 그래야지요"했다.
그 음성 속에 초등학교 5학년 때 헤어진 이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어떤 '원성'과 체념 같은 것이 스며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미국에 있는 제 아버지의 어이없는 처신에 대해 이곳의 붙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걱정하며 연민의 정도 머금는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아파 말없이 한숨을 쉬었고….
아무튼 부모와 헤어져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모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느님 신앙 안에서 명랑 쾌활한 성품을 잃지 않고 참으로 열심히 살며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 가고 있는 대학생 생질이 나는 더없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내 대학생 생질은 인터넷상에서 'kingka'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 그것에서도 생질의 명랑하고 적극적인 성품을 느낄 수 있다. 내 대학생 생질이 그런 성품을 잘 유지하고 난생 처음으로 얻은 직장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최선을 다해 더욱 성실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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