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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차례에 걸쳐서 연재될 이번 기획에서는 한반도 정책을 중심으로 부시와 케리의 외교정책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안은 무엇인지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중편에서는 한반도와 관련된 케리의 외교정책을 북핵문제(1편)와 이라크 파병 및 한미동맹(2편)으로 나눠 분석합니다... 글쓴이 주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미국의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케리 역시 '북핵 불용'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시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시보다는 유연한 자세를 보일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케리의 미국'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대개 대선 유세 때 내놓는 정책이 논란을 피하고자 그럴싸한 얘기만 늘어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케리의 외교정책을 구체적으로 평가·검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외교정책이 미국 대선에서 핵심적인 이슈가 되고 있고, 북핵 문제 역시 이에 포함되어 있어 그 밑그림을 그려볼 수는 있다.
특히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 원죄로 인해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부시와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케리는 부시의 대외정책 가운데, '동맹 회복'과 함께 '북핵 문제'를 주된 공격 포인트로 잡고 있다.
"북한과의 포괄 협상에 나설 것"
우선 케리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문제에 사로잡혀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지 않아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했다고 보고, 집권시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케리의 '대화 우선주의' 노선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케리는 3월 2일 '슈퍼 화요일'에서 사실상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뉴욕타임즈>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의 전쟁에 나선 것은 북한과 전쟁을 벌일 경우 첫 8시간 내에 10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나겠지만 이라크에서는 이와 같은 대량 인명 피해가 없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라며, "다시 말해 이라크와의 전쟁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했고 북한과는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받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백악관의 네오콘들은 그를 좌초시켰고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까지 좌초시켰다"며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참여와 관련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참여가 매우 유용하지만 중국이 개입되지 않은 많은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기 때문에 북미 양자 협의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며 북미 양자 협상을 기본틀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6자회담과 관련해서는 "부시 행정부는 한국, 중국, 일본의 참여를 북한 핵문제 협의 테이블로 돌아가는 구실로 삼았지만 애초에 대화 의도는 없었다"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을 선호하고 있는 것은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케리는 6자회담을 계속하면서도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진행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종식시킬 수 있는 포괄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케리 후보가 북한 핵문제에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북한의 핵무장은 "악몽의 시나리오"라면서 미국의 최우선적인 대외정책의 하나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주창해오고 있다.
케리가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은 핵무기 비확산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의심해서는 안되며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히려 케리 후보가, 이라크 침공에 매달려 북한 핵문제에 소홀했던 부시 행정부보다 북한의 핵무장을 막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기 때문이다.
케리가 지금까지 밝혀온 대북 정책을 종합해보면, 케리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현실을 고려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입장을 갖고 있다.
첫째, 무력 사용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협상이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역사는 우리가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지 않은 부시 행정부를 비판해왔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북한의 안보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북한이 동결 약속을 파기하면 무력 사용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고려할 수 있지만,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한반도에 무력을 증강시키거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는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한반도 안팎에 군사력을 증강시킨 것과는 다른 접근법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셋째, 핵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1차원적인 접근이 아니라 광범위한 의제를 포함한 포괄적이고도 단계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리는 핵문제뿐만 아니라, 화학무기, 미사일, 재래식 군사력, 경제 체제, 마약 거래, 인권 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 사안들을 해소할 수 있는 광범위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대북 안전보장과 경제개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의 협상 의제에 군축 문제와 평화협정 체결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어, 케리 집권시 한반도가 급격한 전환기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또한 북한과의 합의는 검증가능하면서도 단계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케리가 당선될 경우 미국은 6자회담과 함께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의 해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클린턴 행정부 때의 페리 프로세스에 기반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페리 프로세스는 "미국이 원하는 북한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인정하면서 북한의 붕괴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북한의 안보 우려를 인정해 상호간의 위협 감소를 추진하며, 주고받기식 협상 및 단계적인 이행을 통해 포괄적인 합의를 추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했던 부시 행정부와는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 상하원 선거도 중요
그러나, 케리의 당선을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의 '보증 수표'로 간주하는 것은 곤란한 측면이 있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 때의 상황과도 흡사한 측면-북한 핵무장 저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 및 공화당의 강력한 견제, 그리고 핵 사찰 및 검증의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리는 미국이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임할 때 한반도 위기 해결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으나, 미국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미국의 군사적 선택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가 강조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클린턴 민주당 정권이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1994년 북폭 일보 직전까지 갔던 사례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케리 후보가 포용정책의 기조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려고 할 경우,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내 보수파들의 '딴지걸기' 가능성도 중요한 대목이다.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내 강경파들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는 것은 "협박에 굴복하고 악행을 보상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워낙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사일방어체제(MD) 등 군사력 증강 프로젝트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 8년 동안 미국의 강경파들이 줄곧 클린턴의 대북정책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 케리가 집권하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선과 함께 실시될 상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 여부도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북핵 문제 해결의 기술적인 어려움이다. 케리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불확실한 측면이 많이 있기 때문에, 사찰 및 검증 문제로 들어가면 '돌출 변수'가 불거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특히 케리가 북핵 사찰 및 검증 문제와 관련해 유화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미국 내 강경파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리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경우,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질 것이다. 페리 프로세스에 기반을 둔 케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한국 측 파트너인 노무현 정부 역시 페리 프로세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하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부시와 케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케리는 말이 통하는 상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는 '케리의 미국'을 다른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클린턴 행정부를 상대했던 YS와 DJ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기 클린턴을 상대했던 김영삼 정부는 미국보다 더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집했다가 전쟁 위기를 자초하는 한편, 제네바 합의에 따른 비용 부담을 '독박' 쓰다시피 했다.
반면에 2기 클린턴을 상대했던 김대중 정부는 당시 미국 내에서 팽배했던 '북한붕괴론'의 비현실성과 포용정책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미국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이끌어냈다. 그랬던 김대중 정부도 결국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는 근본적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관계를 우리와는 달리 하는 정권이기 때문이다.
결국 케리가 당선될 경우 '케리의 미국'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가 DJ 만큼은 해야 한다.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며 탈냉전이 가져다 준 민족사적 호기를 놓쳐버린 YS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가 한번쯤 되새겨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정도는 덜하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북핵 해결없이 정상회담 없다", "핵문제 해결 이전에 남북관계의 급진전은 어렵다"는 인식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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