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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10일 오전 10시30분]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부일장학회 양도받았다"
고원증 당시 법무부 장관 <한겨레> 인터뷰에서 증언


▲ 고원증 전 예비역 준장.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부일장학회 재산 양도가 이뤄졌다는 당시 군부측 핵심 인사의 증언이 처음 나와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이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군정기간 동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고원증 전 예비역 준장은 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장군의 말에 따라 부산에 내려가 재산 양도서류에 김씨 도장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 5.16 군부측 인사가 당시 '강탈' 정황을 증언한 것은 사실상 처음으로 파문이 예상된다.

고 전 장관은 고 김지태씨가 구속 수감 중인 상태에서 62년 부일장학회 기본재산인 부산지역 10만여평의 땅과 <부산일보>, < MBC><부산MBC> 등 소유권 포기각서에 날인했을 당시 군부측 담당자로 직접 현장에 있던 인물이다.

김씨는 71년 8월 7일 김현철 5.16 장학회 이사장 앞으로 보낸 진정서에서도 "62년 계엄사령부 법무관실에서 고원증씨가 미리 작성한 양도서류에 날인을 강요당해, 쇠고랑을 찬 손으로 본의 아닌 날인을 하게 됐다"며 고 전 장관을 실명으로 언급한 바 있다.

고씨 "혁명정부에서 기부받은 것 바탕으로 요식행위만 관여했다"

그러나 고 전 장관은 "혁명정부(군사정부)에서 이미 기부받은 것을 바탕으로 요식행위에만 관여했을 뿐"이라며 본인 책임론에 대해서는 한발 비켜가는 태도를 보였다. 대신 부일장학회 헌납을 주도한 기관으로 당시 중앙정보부를 지목했다. 그는 "모두 중앙정보부에서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책임자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였다.

그는 또 군부강요에 의한 재산 헌납설에 대해 "강요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며 확답을 피했다. 그는 "재산이 넘어간 경위에 대해선 모른다"고 전제한 뒤 "김씨 구속 중에 벌어진 일이니까 (유족이)‘뺏겼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강요인지 아닌지 모른다"고 밝혔다.

이어 고 김지태씨가 수갑 찬 상태에서 양도각서에 날인했다는 유족 증언과 관련, "수갑 얘기는 명백히 사실과 다른 말로 유족들이 억울해서 과장되게 하는 말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김씨는 한 15평쯤 되는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부장실에 모시 한복 차림으로 걸어들어왔고, 수갑이나 포승줄은 전혀 없었다"며 "의자에 앉아서 나와 차를 마시며 몇 마디 얘기도 나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본인이 ‘알았소’ 하고 도장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날인받을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도 "김씨는 침울하지도 않았고, 안색도 건강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씨가 '3사(부산일보, MBC, 부산MBC)를 좋은 데 쓰시라고 혁명정부 쪽에 기증했다'고 하더라"며 "당시 재단을 만들 때는 ‘좋은 일 하는구나’ 싶어서 (김씨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지태씨 수갑찬 채 날인 사실 아니다...비망록 누군가 위조"

하지만 그는 당시 김씨 부인과 부하직원들이 구속 중이었다는 사실은 몰랐으며 부일장학회와 10만평 땅의 존재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고 밝혔다. 부일장학회는 서류상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 (5·16장학)재단으로 넘겨받은 것은 MBC 등 3개 회사만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재산양도 경위에 대해서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이미 재산을 기부 받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장학재단 설립을) 못하겠다고 하나"며 "본인이 기부했다고 하고, 몇 달 전에 받아놓은 기부각서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5·16장학회와 관계에 대해서는 "재단설립을 위한 실무작업을 내가 했고, MBC 사장(62∼65)을 하면서 장학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그 전이나 그 후에 개입한 일 없다"고만 말했다.

그는 9일 공개된 고 김지태씨 비망록과 관련, "'고 장군’이라고 하면 나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그 만남이나 문서 얘긴 금시초문"이라며 "누군가 위조한 것이거나 거짓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씨를 만난 것은 6월께 부산에서 한번 만난 게 전부이다, 이미 김씨쪽 주장대로 재산을 다 빼앗긴 상태인데 (9월 비망록에) 윤전기가 왜 등장하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는 "여야가 국회에서 공식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면 조사에 응할 수 있다"며 열린우리당이 진상조사단 활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1신 : 9일 저녁 8시 30분]

'부일장학회 강제 헌납' 비망록 전문
고원증 장군측 "아는 바 없고, 말할 것 없다"


▲ 고 김지태 전 삼화그룹 명예회장이 직접 쓴 비망록 사본.
ⓒ 오마이뉴스 신미희
고 김지태 전 삼화그룹 명예회장이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부일장학회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비망록 전문이 공개됐다.

부일장학회는 김 전 회장이 62년 5월 24일 헌납형식으로 포기각서를 쓰고 구속에서 풀려난 닷새 뒤 5.16장학회로 바뀌었다. 이후 82년 1월 정수장학회로 개칭됐다. 김 전 회장은 당시 부일장학회 기본재산인 부산시내 땅 10만여평과 부산일보, MBC, 부산MBC 등 소유주식(당시 시가 100억환)을 박정희 군사정권에게 헌납했다.

비망록은 김 전 회장이 포기각서를 쓴 4개월여 뒤 9월 4일 서울시 '아서원'이란 곳에서 군부측 관계자로 지목되는 고원증 장군과 5.16장학회 초대 이사장 이관구씨 등과 회동했을 때 대화내용을 적은 메모이다.

김 전 회장이 자필로 쓴 다섯 페이지 분량의 메모에는 향후 부일장학회 소유 토지이용과 장학회 운영에 관한 대화가 주를 이룬다. 김 전 회장은 주요 대화내용을 1, 2, 3, 4-1, 4, 5의 일련번호로를 붙여 정리해놓았다.

이 메모는 김 전 회장 유족들이 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 소속의 조경태 의원에게 제출하면서 언론에 공개됐다. 김 전 회장은 메모에서 "서류상은 자진납부로 되어있는지는 모르나 실재와 다른, 물목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 구체적인 헌납재산 목록도 없이 포기각서를 써줬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고 김지태씨 "중앙정보부 검토해 최고회의로 송부됐다"

김 전 회장은 또 헌납과정에 대해 "5.16장학회에 자진 헌납이라고 보고되어 있는지는 모르나 당국자가 예비회담 소집해 각서원안이 본인(수감중)에 제시되어 응공한 것이니 중앙정보부에서 검토하여 그대로 최고회의로 송부되었다”고 언급, 중앙정보부 개입설을 뒷받침했다.

부일장학회 강탈 앞장 고원증씨는 누구?

고원증 전 법무부 장관은 1921년 만주 통화현 출신으로, 경성법전 졸업(1943년)후 그해 만주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했다.

해방후 육군사관학교 법무2기(48년)를 수료했으며, 이후 육본 법무차감(54년)을 거쳐 5.16쿠데타 직후 군정기간 동안 법무부 장관(1961~1962)을 지냈다. 부일장학회 강탈이 이뤄지던 때가 법무부 장관 막바지 시기였다.

이후 62년부터 65년까지 5.16장학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뒤 MBC 사장(62년)을 역임했고, 63년 준장으로 예편한 후 변호사로 할동해 왔다.

82년 한림대 재단이사로 취임했으며, 학교법인 대양학원(세종대학교) 이사장(91∼96)과 세종대학교재단 이사(97∼2002)도 지냈다. / 신미희 기자
고원증씨는 김 전 회장이 71년 8월 7일 김현철 5.16 장학회 이사장 앞으로 보낸 진정서에서도 언급되는 인물이다.

김 전 회장은 해당 진정서에서 "1962년 계엄사령부 법무관실에서 고원증씨가 미리 작성한 양도서류에 날인을 강요당해, 쇠고랑을 찬 손으로 본의 아닌 날인을 하게 됐다"며 강탈과정에 고씨가 직접 개입했음을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건에 '고 장군'으로 언급된 고원증 당시 법무부 장관측은 "관련해서 아는 바 없다, 얘기할 게 없다"라며 취재를 거부했다.

고 전 장관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밝힌 관계자는 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아버지는 5.16 주체세력도 아니고 그때 법무부 장관을 그만 두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라 재산환수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군사쿠데타의 주범으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지목한 뒤 "핵심 주체인 김씨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또 "기자들은 대개 말하는 것을 쓰지 않고 원하는 내용만 자기 방식대로 쓴다"고 불만을 토로한 뒤 "아버지가 언론에 한두번 당한 것도 아니어서 인터뷰나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하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비망록 등에 언급된 부친 전력과 관련, "김지태씨가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식들이 틀린 얘기를 자꾸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는 열린우리당 진상조사단 증인으로 참석한다고 한 바도 없고 할 예정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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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9일 공개된 고 김지태씨 비망록 전문이다.

■ 비방록 전문

1. 회합장소 : 서울특별시 아서원
2. 시일 : 62년 9월 4일 오후 5시에서 6시반
3. 참석자 : 이관구, 고장군, 김석겸, 김지태

1. 고장군으로부터 6월 20일자 각서에 의한 건축용 기계시설의 공사촉진을 요구
김지태 : (1) 6월 20일자 각서가 어떠한 형태로서 이루어진 것이며 내가 손수 설계한 부일건축을 오늘날 부산역전에서 직접 지휘를 하게 된 심정 토로.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2) 15억원의 재산 제공된 사후처리에 있어서 사소한 것(이후 한줄 빠져 판독불가). 나의 代身(대리인) 윤동백조차 추출해버려 부일과는 연락조차 할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지 않은가.

2. 고장군 : 윤전기 동관이 시급하여 수차 연기를 거듭하여 8월말일로서 다시 연기 신청할 판이니 이번에는 이관구 이사장 앞으로 할까요?

3. 김지태 : 건축은 작년말 계획하여 환수위원회의 시인을 얻어서 착공하나 소요자금은 철거보상금 KU건물 매도금 9천만원이나 시가 6천만원 정도이고 청구금 6천만원과 부족금은 본인이 차입 처리할 것으로 작성된 것이다.

고장군 : KU건물은 청부업자가 인수하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김지태 : 검토를 마치고 계획을 세워서 3∼4일 후 재회해서 협의하자.

4의 1. 김지태 : 부산 시내 토지 10만평은 현재라도 8억 가격이나 십년 내이면 20억원이 될 것이다.
고장군 : 십년 내에 이십억에 달할 것이라고 자기는 생각하고 있다. 이 토지는 서울 근교 국유지로 교환할 계획이고 5.16장학회에 토지뿐만 아니라 학교사업에도 관여할 생각이다.
김지태 : 경제혼란을 가져오며 혹시나 장학사업에 악영향을 가져오니 삼가야 한다.

4. 김지태 : 피차 협조하여 건축에 개인자금 없고 회사는.. 조차환수위원회에서 시인이 있어야 하니 참으로 곤란하다.
고장군 : 환수위원회로부터 같이 지원해서... 나오도록 하지요(웃음).

5. 김지태 : 본 건이 5.16장학회에 자진헌납이라고 보고되어 있는지는 모르나 사실인즉, 본인이 약속됨은 계기로도, 김석겸도 수인이 본인의.. 방안의 하나로서 예비회담 소집해 각서 원안이 본인(수감중)에게 제시되어 (재벌법인 김지태 장학회에서 이사장 본인, 이사진..정부처 등) 본인이 응공(應供)한 것이니 중앙정보부에서 검토하여서 그대로 최고회의로 송부되었다는 보고를 당시 받았는 바, 얼마 후 그 안이 수차에 한하여 변경 요구되어 금후와 같은 사후처리가 우연한 처사로 되고 말았다. 서류상은 자진납부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나 실재와 다른, 물목조차 보지 못하고 있어 그 내용이라도 검토하고 인계해 드리거나 건축을 하거나 계획을 세워야 될 것이 아닌가? 윤동백(=代身)도 명일(=내일) 오게 되었으니 그 서류들을 나에게 제시해 달라.

김석겸 : 내일 서류가지고 와서 검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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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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