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손에 들고 있으면서, 수차례나 거듭 읽었던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박지원과 그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남긴 <열하일기(熱河日記)>라는 거작(巨作)의 면모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지식인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열하일기>를 일반인들이 접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한문으로 표기된 원전(原典)은 물론, 번역본조차도 손에 잡게 되면 우선 그 방대한 분량에 주눅이 들기 쉽다. 물론 그 중 일부 기록이나 작품들은 이미 교과서에 소개되어 작품의 존재나 내용도 익숙한 것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열하일기>라는 텍스트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상 국문학을 전공하는 나조차도 아직까지 <열하일기>를 단 한 번도 완독(完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전공자들조차도 소화하기에 만만치 않은 <열하일기>와 연암 박지원을 친절하게 소개한 이 책을 읽고 나서,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그 책을 꼭 읽어야 하겠다는 어떤 의무감(?)이 자리잡기도 하였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그 내용이나 문학사적 위치로 보건대 매우 매력적인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나는 오래 전에 김명호 교수의 <열하일기 연구>라는 책을 손에 잡고, 그 순간부터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아주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연구서를 술술 읽었던 경험은, 당시로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연구서조차도 그렇게 재미있게 만든 것은 연구자의 몫도 있겠지만 사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숨어있던 저력의 탓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열하일기>는 중국을 다녀온 여행기이다. 동시대의 다른 저작들은 ‘연행록(燕行錄)’이나 ‘연행기(燕行記)’ 등과 같이, 당시 중국 수도인 ‘연경(지금의 북경)을 다녀온 기록’이라는 의미의 제목을 붙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특이하게도 <열하일기>라는 다소 이색적인 명칭이 붙어 있다.
‘열하(熱河)’는 당시 중국 청(淸)나라 황제의 피서지가 있던 곳을 뜻하는 지명이다. 당시 사행단(使行團)을 따라 청나라 수도인 연경을 방문했던 박지원은, 열하로 피서를 떠나있던 청 황제를 만나기 위한 일행들의 예정에도 없던 추가 일정에 동행한다. 그리하여 조선에서부터 청의 수도인 연경(燕京)까지, 그리고 다시 열하까지 여행하면서 그 과정과 견문한 내용을 위주로 <열하일기>를 저술하게 된다.
조선 시대까지 왕명으로 사신이 되어 외국을 방문하는 것을 ‘사행(使行)’이라 했다. 특히 청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당시 수도인 연경을 방문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행(燕行)’이라 불렀다. 중국과의 관계가 긴밀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시대까지 대규모 사행단을 꾸려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사행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당시 ‘문화 선진국’인 중국을 여행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바라던 바이기도 하였다. 저자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박지원은 사행단(使行團)의 공식적인 일원이 아니면서도 사행단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다. 어쩌면 사행단에서의 이러한 특별한 위치가 박지원으로 하여금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목적 텍스트’인 <열하일기>를 탄생시키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탄생된 <열하일기>에는 당대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수많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어 그야말로 문학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하다. 고미숙의 책에는 열하일기의 다양한 면모가 소개되어 있고, 또 그와 함께 저자가 느낀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아울러 제공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연암 박지원과 그의 저작 <열하일기>에 대한 ‘매뉴얼(manual)’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대해서 알려거든, 먼저 이 책을 읽어본다면 매우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 고미숙의 진술에 의하면 ‘<열하일기>는 여행기이면서,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여행이라는 장을 전혀 다른 배치로 바꾸고, 그 안에서 삶과 사유, 말과 행동이 종횡무진 흘러 다니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매우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를 포함하고 있는 ‘<열하일기>는 일회적이고 분석적인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책의 체제와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책은 ‘프롤로그’와 전체 5장으로 나뉘어 서술된 본문 그리고 한 편의 논문인 ‘보론’과 각종 자료를 제시한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편력·유목’이라는 제하(題下)의 ‘프롤로그’에는 저자인 고미숙의 지적 편력과 더불어,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접하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 과정에서 ‘해체’된 텍스트로서의 <열하일기>와 그 편린들만을 접할 수밖에 없게 된 사유도 제시하고 있다.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저자의 진단에 의하면 그 이유는 그동안 받았던 ‘교육 과정 어디에도 <열하일기>를 통째로 읽는 코스는 없었’기 때문이다.
박지원과 그 주변 이야기를 정리한 ‘제1장 나는 나고 너는 나다’에서는 명문 거족에 속하면서도 ‘비주류’로 살아왔던 그의 삶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이미 학계에서는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지식인 모임을 ‘연암그룹’이라고 칭하고, 벗과의 연대를 중요시하는 ‘우정론(友情論)’이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녔던 것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나이 50이 넘어서야 벼슬길에 나설 정도로 관직에 미련없던 그이지만, 당시 세도가들의 표적이 되어 있었던 박지원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그의 정치적 위상을 엿볼 수 있었다.
박지원을 이해할 때, 그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당시 임금인 정조(正祖)에 의해 1792년 시작된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중심에 늘 박지원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2장 1792년, 대체 무슨 일이?’에서는 문체반정의 경과와 그 정치적 의미를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문체(文體)란 이른바 글의 스타일(style)을 지칭한다. 따라서 ‘문체반정’이란 ‘불온한 문체를 올바른 것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종의 ‘지적 검열’에 해당한다. 왕명에 의해 진행된 이 반정은 일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시중에 떠도는 까끄라기’와 같은 ‘패관잡기(稗官雜記)’들이 널리 퍼지는 것을 금지하고 유학의 경전과 같은 스타일의 ‘고문(古文)’을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 문체반정의 주요 골자라 할 수 있다.
글이란 그것을 쓰는 사람과 당대 대중들의 입장을 반영하게 된다. 어떤 작품이 널리 읽힌다고 할 때, 그러한 작품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그만큼 폭넓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치적 반정이란 문제가 된 사람을 바꾸면 되지만, 문체의 반정이란 탄압을 하면 일시적으로 숨어들었다가도 그 촉수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오히려 더 각광을 받기 마련이다.
‘금서(禁書)’ 혹은 ‘금지곡(禁止曲)’이라는 이름으로 강압적으로 유통을 차단했던 문화적 현상들이, 오히려 ‘비공식적’인 공간에서 더 널리 전파되었던 지난 독재정권 시절의 예를 통해서도 이는 쉽게 확인된다.
어쨌든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 와중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늘 ‘문체반정의 바람을 일으킨 진앙지’로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당대의 지식인들에게도 ‘열렬한 탄사와 저주어린 비난을 동시에 받은’ 박지원의 글들을 모은 문집은 그가 죽은 지 한참 뒤인 190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출간이 된다.
앞 부분에서 박지원과 그가 살았던 상황을 정리한 이후 이 책의 제3장~5장은 <열하일기>를 따라 들여다 본 연암 자신과 중국의 풍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열하일기>를 정리하면서 3개의 부분으로 구분하여 서술한 것은, 각 장의 기술에 따라 이 책을 읽는 3가지 관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파악된다.
즉 ‘제3장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는 호기심과 새로운 문물에 대한 탐구심이 강했던 박지원의 ‘잠행 또는 일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조차, 박지원에게는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그는 틈틈이 일행을 이탈하여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새로운 풍물에 대해 무한한 관심을 보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사람과 풍경을 만나면, 그 속에서 자기 나름의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는 박지원의 안목에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제4장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는 <열하일기>에 담긴 유머에 관해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여행기간 동안 박지원은 중국 사람들과 만나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물론 말이 서로 통하지 않기에 당연히 당시 중국과 조선의 공통 문자이기도 했던 한자(漢字)를 통한 필담(筆談)이 그 수단이 되었다.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에서 나타나기 마련인 다양한 종류의 에피소드는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포착해 내는 박지원의 문체야말로, 그가 움직일 때마다 ‘웃음의 물결’이 출렁거리게 한다. 유머와 해학의 진수가 잘 드러나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매 순간 어떤 일이든지 진지하게 대하는 박지원의 낙관적인 성격을 읽어내는 것도 흥미롭다고 하겠다.
<열하일기>의 문체를 통한 인식론에 해당하는 ‘제5장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에서는 박지원 글의 특징을 ‘사이에서 사유하기’로 규정한다. ‘경계’가 아닌 ‘사이’에 주목하는 박지원의 글들은 그리하여 ‘어떤 대상이든 입체적으로, 다층적으로 사유하라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박지원이 그만큼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파악된다.
이러한 본론의 구성은 때로 일행의 일정을 좇아서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 특정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박지원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을 지적하여 적절한 해석을 곁들임으로써 글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글의 내용을 포함한 박지원의 문체도 매혹적이지만, 이를 재구성해서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보고하는 저자 고미숙의 문체 또한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그리하여 뛰어난 저작이 그 가치를 알아보는 감식안을 지닌 사람을 만나서 탄생한 저술이 바로 이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덧붙여 박지원과 함께 당대 비판적 지식인의 대명사로 평가를 받았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을 비교하여 논한 ‘연암과 다산-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라는 제목의 ‘보론’도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박지원과 정약용은 조선 후기 새로운 사상적 경향으로서의 실학(實學)이 주목을 받으면서부터 우리 지성사에서 늘 쌍벽으로 이루는 인물들로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서 두 인물이 처했던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글과 세계관의 차이 그리고 중세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에 대해서도 상세히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열하일기>의 ‘원목차’와 ‘여정도’,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특징 등을 정리해 놓은 ‘부록’도 매우 유용한 정보다. 특히 마지막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함께 읽어야 할 텍스트’들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 책을 읽은 연후에 꼭 찾아서 읽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