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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이 떠난 빈집의 지붕 물받이에 자라난 돌나물
ⓒ 이인우
용산역에서 국철 1호선 성북행을 타고 이촌역을 지날 때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빨간 기와집들이 밀집해 있는 주택가와 미군부대 입구가 보인다. 듬성듬성 빨간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주택가 뒤로는 멀리 오랫동안 용산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국제상사 빌딩이 보인다.

이촌역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용산동5가 주택가는 지난해 겨울부터 재개발을 위한 이주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우리의 재개발 현장이 어디나 그렇듯 이 곳 역시 세입자들과 집주인 또 재개발을 진행하는 업체간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흔적들을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골목을 들어서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건물들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주인 잃은 집들이 철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은행나무길 골목 맨꼭대기의 한 집 앞마당에서 바라본 용산의 랜드마크 _ 국제빌딩
ⓒ 이인우
카메라를 꺼내들어 이주현장을 기록하고 있는 내게 두 명의 청년이 다가와서는 건물들을 찍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지만 대답은 "아무튼 찍지 마세요!"였다. 그리고는 그들은 한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카메라로 기록하는 것이 결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서 무너지고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골목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다 쓰러져가는 걸 뭣 하러 찍어요?"

그리고는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속내를 내게 한참동안이나 설명하듯이 털어놓으셨는데 그 주 내용은 "갈만한 곳도, 이주비용도 없으며 세상 살기가 왜 이리 힘든가?"였다. 골목길에 자라고 있는 키 큰 잡초를 뜯어 그것을 다듬어가며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고단한 재개발 현장 세입자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 이주가 시작된지 10개월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주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 이인우

▲ 아직 이사를 하지 못한 집들에서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 이인우
할머니 말에 의하면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 가구 수는 대략 100여 가구 이상이다. 전체 세입자를 포함한 500~600여 가구 중 지난 10개월간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물어져 가는 건물과 쓰레기 그리고 도둑고양이와 숨바꼭질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할머니는 전했다.

골목골목 허물어진 담벼락과 쓰레기로 뒤덮인 폐가들 사이로 아직까지도 이사를 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살고 있었으며, 도둑고양이들은 빈집의 주인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도둑고양이들은 한낮임에도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깜짝놀라게 했다.

▲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수령 320여 년이 넘은 보호수 _ 은행나무
ⓒ 이인우
이 곳의 마을골목 이름은 '은행나무길'. 마을 한가운데에 수령 320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어 주변의 골목이름이 '은행나무길'로 명명되었다. 이곳을 떠난 이주민들에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추억 속의 고향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만한 존재다.

▲ '용산남부교회'와 은행나무길 골목의 언덕길
ⓒ 이인우
'은행나무길'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 사라진 고향의 추억으로 기억 될만한 곳이 마을 최정상에 위치한 '용산남부교회'. 사람들은 겨울이면 눈이 얼어붙어 고생을 감수하며 교회로 향했던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은행나무는 320여 년 이상 이곳에 서서 만주군과 일본군 그리고 오늘날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용산 주변의 변화를 지켜 봤을지도 모른다. '재개발'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고향을 등져야만 하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은행나무.

▲ 주인이 떠나간 집의 담장 넘어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열매를 먹는 '나비'
ⓒ 이인우
재개발이 되면 이 은행나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난 320여 년 동안 지금의 이 자리를 지켜왔듯 새로운 건물들이 생기고 새로운 사람들이 이곳의 주인이 되더라도 공원의 모퉁이에서 꿋꿋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품고 살아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경제적 이유로 인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어려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폐허가 된 마을과 쓰레기의 악취는 이들의 삶을 더욱 초라하게 하고 있다. 무너진 벽면에는 세입자들의 조속한 이주를 촉구하는 험악한 표현들이 빨간 스프레이로 씌여져 있어 더욱 이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세입자야 집주인을 생각해서 빨리 이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없지! 물론 무조건 재개발을 마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는데. 문제는 세입자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하는데 어디들 그런가.”

아직 이주하지 못해 다 허물어진 마을 골목 끝에 늙은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한 아저씨가 말끝을 흐렸다.

▲ 은행나무길 한 집의 대문 _ 명패를 떼어낸 흔적이 주인이 없음을 알린다.
ⓒ 이인우

▲ 주인은 떠나갔지만 대문 앞의 화분엔 지난날 뿌려둔 상추가 자라고 있다.
ⓒ 이인우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고생을 했을까? 지금도 마땅한 이주대책을 찾지 못하고 개발주체와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세입자들의 삶이 이곳에 있다. 그들은 쓰러져가는 건물과 언제 어떤 상황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는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 마을의 한 가운데 서있는 은행나무에서 바라본 국제빌딩 풍경
ⓒ 이인우
주인이 떠나간 폐가에 놓인 화분에는 채송화가 피어있고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렸고 대추나무에는 대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주인은 비록 떠났지만 이곳에 남아있는 꽃과 나무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은 주인이 떠났지만 언젠가 찾아올 자신의 주인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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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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