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그것을 수행하는 자들의 이익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비극 중의 비극'이다. 총알에는 눈이 달리지 않았고, 미국이 쏟아 붓는 폭탄은 그 이름(스마트폭탄)과는 달리 전혀 똑똑하지 못하다. 강자의 이해관계에 학살당하는 약자들. 세상에 '아름다운 전쟁'이란 없다.
베트남전 참전군인 출신인 시인 김준태가 그 역시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미국작가 팀 오브라이언의 저서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한얼미디어)을 번역·출간했다. 1960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체 베트남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가 '베트콩'이라 비하해 부르던 그들은 과연 미국 아니, 공산주의를 증오하도록 교육받은 우리들의 적(敵)일 뿐이었을까?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더러운'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처참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감상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팀 오브라이언의 문장은 40년의 세월을 소급해 오늘을 사는 한국의 국민들에게 미국의 지속적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추악한' 이라크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바람은 스스로를 바람이라 부르지 않는다"라는 전언을 떠올리게 하는 김준태의 매끄럽고, 적확한 번역 역시 강변(强辯)이 아닌 조용한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묻는다. "전쟁과 그 전쟁을 통한 죽음으로 얻어지는 국익이 과연 얼마나 우리에게 이로울 것인가"라고.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두고 뉴욕타임즈는 '베트남전쟁의 고전을 복원해냈다"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쟁을 겪은 자만이 기억할 수 있는 원초적인 고백의 힘이 느껴진다'고 격찬했다.
'아아,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여'를 써내 80년 '5월 광주'의 아픔과 그 아픔을 넘어서는 위대한 힘을 보여줌으로써 기자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시인 김준태. 그의 번역은 팀 오브라이언의 책에 '시적 향취'를 더하고 있다. 평화와 공존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가워할 선물이다.
더 없이 '낮은 곳'에서 바라본 2004년 중국의 오늘
- 라오웨이의 <저 낮은 중국>
반체제 시인의 거친 눈으로 훑은 중국의 '아픈' 이야기들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됐다. <저 낮은 중국>(이가서). 원제는 <중국 저층 방담록(中國底層訪談錄)>. 저자 라오웨이(老威)가 만난 사람은 시체 미용사, 인신매매범, 마약중독자 시인, 공중변소 관리인 등 모두 눈부신 개혁개방의 성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려지는 '거대 중국'의 모습은 가혹할 만큼 적나라하다. "진지하게 장사하고 있는데, 왜 그래?" 구치소에서 만난 인신매매범 첸구이바오의 항변은 현재 '기이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겪고 있는 혼돈과 갈등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 소개된 60년대 '대약진운동'의 참상은 아직도 중국 당국이 공식 인정치 않는 내용이다. '대약진'이라는 정책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수천만의 인민이 굶어죽고 심지어 인육까지 먹는 경우가 발생했던 당시의 끔찍함을 이 책의 주인공들은 담담히 증언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중국에는 언제나 깊고도 풍부한 저층사상이 있어왔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국가와 역사라는 이름으로 자행돼 온 거대한 폭력의 실체들을 고발해 간다. 1999년 이 책의 일부가 익명으로 출판되자 중국 당국은 곧바로 판금 조치를 취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며 화려한 돈 잔치의 꿈을 인민에게 선전하는 중국의 모습은 20년 전 우리의 모습과 '지나치게' 닮았다. 이 책에 등장한 '낮은 중국인'의 모습 또한 너무도 익숙한, 여전히 그러한 우리네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혁명가도 사랑을 한다. 그것이 연인이건 이념이건
- 안재성 장편 <경성 트로이카>
누군가가 썼다면 그 '누군가'를 믿고 책을 사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앞서 언급한 명제를 그대로 적용시켜도 좋을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노동운동가 출신의 소설가 안재성이다.
강팍한 군사독재 시절 제 한 몸의 평안을 버리고 운동일선에 투신하여, 시쳇말로 '목숨 다해' 싸웠으며 그 싸움으로 얻은 성과물에 대해서는 초연한 사람. 대거 국회로 진출해 국민들에게 절망과 한숨만을 보태고 있는 언필칭 '386세대 정치인'과는 그 격이 다른 사람 안재성이 신작 장편소설을 선보였다. 이름하여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전작 <황금이삭>을 통해 한국 친일파 형성사와 근대사의 비극을 가감없이 보여준 그가 불과 1년 사이에 다시 선보이는 <경성 트로이카>는 1930~40년대 한국 사회주의 운동사를 문학적으로 복원해 내고 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혁명가' 이재유가 안재성의 문장 속에서 살아 돌아오고 있는 것.
책의 제목인 '경성 트로이카'는 1930년대 서울(경성)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사회주의 혁명가 이재유, 김삼룡(해방 후 실질적 남로당 총책), 이현상(지리산 빨치산 대장)을 지칭하는 조어(造語). 독립과 평등, 해방이라는 절실했던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버렸던 사람들.
안재성은 이들의 삶을 소설화함으로써 이제는 흑백의 낡은 사진으로도 남지 않은 '잊혀진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되살리고 있다. 그 '흥미진진' 속에는 그들의 연애 또한 포함돼 있다. 기자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한 명의 여자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면서 4천만 민중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옳으냐"라고 묻던 학창시절 선배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슬퍼졌다.
뜨거웠던 가슴과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행복해지는 혁명을 꿈꾸었던 이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책이다.
'몸의 사랑'은 마음의 사랑에 우선한다
- 윤효 장편소설 <노 러브 노 섹스>
소설가 정도상이 그랬던가? "나는 몸의 사랑만을 믿는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우스운 것이란 걸 알면서부터다." 경남 마산에서 룸살롱 영업상무를 하는 기자의 친구는 말한다. "나는 (몸부터) 확인하고 (마음의) 사랑을 시작해."
위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 아니, 작가가 또 있다. 최근 <노 러브 노 섹스>(이룸)라는 '야한' 제목의 소설을 출간한 윤효. 그녀는 2004년 오늘을 사는 4쌍 남녀의 만남과 사랑, 다툼과 헤어짐을 통해 "대체 인간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래로부터의 물음을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노 러브 노 섹스>가 제목처럼 야하지 않고, '진지한' 작품으로 읽히는 것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물음의 진정성 때문이다. 윤효는 (육체적) 욕망와 (정신적) 연민 속에서 갈등하는 보편적 인간의 고뇌를 쉽고, 편안하며, 때론 발랄한(?) 문장 속에 녹여냄으로써 인간세상의 영원한 공안(公安)인 '사랑'을 재해석하고, 재분석한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실로 적나라한 성적 표현조차 흥분이 아닌 공감으로 독자를 유도하는 윤효 소설의 힘. 그 힘을 D. H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에 비유하면 누군가는 '철없는 오버'라고 힐난할까?
섹스를 말하면서도 섹스를 말하지 않는 문장. 그 문장의 행간에 담긴 결코 가볍지 않은 뜻이 '가볍고 부담 없는 성교'만을 꿈꾸는 우리를 반성케 한다. 30대 여성작가의 작품에서는 익히 맛보지 못한 특이함이다. 그러므로, 빛난다.
| | 한 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 | | 특별히 '사랑'을 다룬 책들이 많은 한 주 | | | | 정이현 외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해토)
30대 초반의 작가 정이현. 지난해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문단과 평단의 주목을 받더니 결국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인 '타인의 고독' 외에도 추천 우수작으로 오른 '출가'(김도연) 벚꽃 뜰'(박청호) '소금 한 줌'(함정임) 등이 실렸다.
주제넘은 충고인지는 모르지만 동년배인 정이현에게 한마디.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평가받는 것은 인간을 오만에 빠뜨린다'는 옛날로부터의 잠언을 잊지 말기를.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도서출판 b)
그는 문학평론가인가? 근현대를 아우르는 철학자인가? 아시아의 좁은 틀을 벗어나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 학자의 빼어난 저서. 소장본으로서의 가치도 상당하다. 조영일 역.
김종근의 <달리, 나는 세상의 배꼽>(평단)
'흐물거리는 시계'로 세계 화단을 뒤흔든 살바도르 달리. 그는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에게 그림이란 무엇이었던가?
오동명의 <금요일 저녁에 떠나는 5만원 2박3일)(삼성출판사)
이채로운 사진작가 오동명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근사한 여행지. 게다가 싼 비용으로 여행을 즐기는 방법까지 덤으로 들려준다.
가네하라 히토미 소설 <뱀에게 피어싱>(문학동네)
'베로날 잘'이란 환각제를 복용하고 아킬레스건을 잘라 자살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아쿠타가와상' 2004년 수상작.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유현의 <대마를 위한 변병>(실천문학사)
"마리화나(대마초)는 당신을 범죄자로 만든다"고? 천만에 이 책을 읽어 보라. 대마는 우리에게 저항과 혁명의 힘을 제공해왔다. 아이쿠! 이러다 가수 전인권처럼 연행될라?
엘리노어 허먼의 <왕의 정부>(생각의나무)
구중궁궐 그 깊숙한 곳에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던 왕. 그 왕의 곁에 머물다 사라진 여자들. 황금침대 위에서 이뤄진 은밀한 거래와 젖과 꿀의 향연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피에르 비달나케의 <호메로스의 세계>(솔)
인류 최초의 서사시에 대한 정밀한 탐구. '일디아드'와 '오딧세이'는 누가 어떤 이유에서 썼을까?
폴 아론의 <왜? 사랑했을까>(지상사)
지구를 들었다 놓은 24쌍의 연인. 그들은 왜 사랑하고, 증오하고, 환멸을 느끼며, 헤어졌을까? 사람이 죽고 사는 유일한 이유 '사랑'에 관한 특별한 탐구.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