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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자아(自我)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 후에 마른 풀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서너 개의 동굴을 지나친 끝에 좁지만 은신하기 좋은 동굴을 찾은 것은 행운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족적이나 흔적을 지우며 두시진이 넘도록 헤메고 다닌 끝에 찾은 동굴이었다. 그리고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동굴 입구를 자연스럽게 감추고 송하령을 위해 잠자리를 봐 주는 일이었다.

“운이 좋다면 이틀 정도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오. 그들에게 발각된다면 할 수 없지만 내 생각으로는 빠르면 하루, 늦으면 이틀 뒤부터 산속을 뒤질 것이오.”

무슨 근거로 그는 저런 생각을 할까? 그러나 송하령은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가화가 관도로 나서기 전에 이미 자신이 사라졌음을 알 것이다. 풍운삼절과의 혈투를 치른 이 사내의 존재는 아직 모를 것이다. 만약 지켜보고 있었다면 결코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가지다. 그들은 송하령 혼자라면 관도나 뱃길을 이용할 것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가면서 서가화와 다시 동행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관도나 지름길 정도, 아니면 배를 수색할 것이다. 그 시간은 대략 하루 이틀 정도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고 판단되었을 때 그들은 산을 뒤지기 시작할 것이다.

“...........!”

동굴 평평한 곳을 골라 마른 풀을 수북히 깔아 주고 표사들이 사용하는 우비(雨備)를 깔아 주고는 입구 쪽에 자리 잡는 그를 보았다. 무공도 무공이려니와 갈수록 저 사내는 다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송가에서도 모두가 인정하는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총명한 두뇌는 좋은 스승을 만나면서 능력을 배가시켰다. 단지 그러한 능력을 활용할 시기를 맞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는 지금 건포 몇조각을 천천히 씹고 있다. 그녀도 그를 따라 한조각의 건포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몇 번 씹기도 전에 비릿한 맛 때문에 밷어내야 했다. 차라리 그녀는 건량을 씹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밥을 지어 말리고 콩과 조를 볶아 혼합한 건량은 씹다 보면 고소한 맛이라도 들었다.

어느새 그는 건포를 다 먹었는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운기를 하려는 것일게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의 체력은 이미 바닥나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에게 보여 준 배려는 정말 고마운 것이었다.

그녀는 그를 조용히 지켜 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그의 상처에 금창약이라도 발라 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운기 상태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그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들이 실패했다고...?”

말을 한 사람은 오십대 초로의 몸집이 작고 마른 인물이었다. 사내라고는 하지만 이미 입은 의복이나 모습을 보면 사내 구실을 하지 못하는 환관(宦官)이다.

환관들은 목소리나 몸이 여성화되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반대로 중년이 될수록 몸이 마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을 거세(去勢)한 영향이다.

“예. 풍운삼절 중 검절이 죽고 두 사람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하던데요.”

대답을 한 사내 역시 환관이었다. 살이 약간 오른 몸집에 얼굴이 둥근 삼십대 전후의 환관이었다. 태사의에 앉아 있던 환관이 혀를 찼다.

“쯧쯧...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풍운삼절을 그 지경 만들 인물이 그 중에 있었다는 거야?”

말꼬리가 말아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 짜증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황급히 머리를 조아린 환관이 말끝을 흐렸다.

“글쎄…. 그게…, 풍운삼절이 말을 하지 않는 통에… 그 사정을 알 수…”
“그게 보고야?”

드디어 화가 났다. 저 인간은 화가 나면 앞뒤를 재지 않는다. 주먹이 날아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황상(皇上)을 위해 일한다고 하겠어.”

목소리 끝이 파르르 떨린다.

“서가화에 대한 기록 가져와.”

내심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주먹이 날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한쪽 서탁에 놓여 있던 서류 중의 일부를 서둘러 그에게 건넸다. 받아 든 서류를 읽기도 전에 지금껏 부복하고 있던 무복 차림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상대부(尙大夫). 서가화는…”

환관의 최고위층은 태감(太監)이란 직책으로 불린다. 그 아래로 정식 명칭은 없지만 대체로 대부(大夫)라고 높혀 부른다. 아비 부(夫) 자를 쓰는 이유는 환관 그들만의 연대의식 때문이었다. 사내는 이미 그 문서의 내용을 외우고 있는지 상대부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나이는 방년 십구세. 강남 서장군가 서인가주의 딸로 그녀는 전진칠기(全眞七奇) 중 홍일점이었던 유운선자(流雲仙子)의 기명제자이고, 아미파(峨嵋派) 적하신니(赤霞伸尼)에게서 사사(私事)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대단한 사부들을 가진 서가화다. 전진교(全眞敎) 또는 전진파는 불교(佛敎)를 가미한 도교(道敎)의 일파로 원나라 시절 징기즈칸으로부터 존경을 받던 장춘진인(長春眞人)으로 인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지만 정통도교로 부터는 이단(異端)으로 여겨졌던 종파.

무공 역시 구대문파 등 정파무림에서는 사파(邪派)라고 규정짓지는 않았지만 기오막측함과 정통무공에 벗어난 궤리로 같은 정파라고 인정하지 않는 문파다. 하지만 전진파는 수많은 갈래로 갈라지면서 새로운 무공에 대한 연구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어 절대 무시하지 못할 문파였다.

그 중 전진파의 전대고수들을 가르켜 전진칠기(全眞七奇)라 하였다.
도교에서 꺼려하는 유일한 여자가 유운선자다. 더구나 아미파의 적하신니는 아미파의 장로(長老)로서 성질이 불같은 비구니. 두 전대기인의 진전을 이은 서가화라면 이미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올랐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상대부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렇다고 치자. 조궁(曺藭). 자네는 유운선자와 적하신니가 모두 나섯더라도 풍운삼절을 그 지경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풍운삼절의 위세가 그들만 못한가?”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무복 차림의 사내 조궁은 고개를 숙였다.
그들 둘이라면 풍운삼절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것이다. 풍운삼절이 죽기를 각오한다면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들과 같은 전대기인들이라면 그러한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
조궁은 말문이 막혔다. 상대부가 영락제 즉위 직후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황궁 비밀첩보기관에 몸을 담고, 중요한 거점인 낙양을 맡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상대부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럼 송하령은?”

서류를 가져다 줄 필요도 없다. 조궁은 조심스럽게 송하령에 대해 줄줄 외어댔다.

“나이 이십세. 두차례에 걸친 집안의 참화로 현재 가주로 있는 송렴대학사의 셋째 아들인 송연형(宋硯亨)의 딸로 어려서부터 총명하다고 인정된 재녀(才女). 무공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배웠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무공을 시전한 적이 없음. 호신에 필요한 수준 정도라 생각되며 다만 기문진식이나 병법 등에 조예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럼 서가화도 송하령도 아니야.”

상대부는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었다. 저럴 때 보면 남자가 아닌 것 같다.

“누굴까? 누가 그녀들을 도와주었을까?”

그는 태사의의 모서리를 엄지로 톡톡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생각에 잠길 때의 버릇이었다. "톡…톡…."

“그녀들을 쫒고 있는 자들과 붙은 건가? 그렇다면 풍운삼절이 깨졌다는 것이고, 서가화가 그들에게 붙잡혀 갈테니 관도로 나올 수가 없는데….”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송하령은 없어졌다고?”
“........!”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니 대답할 수가 없다.

“자춘(仔椿). 풍운삼절은?”

눈치만 살피며 말을 아끼던 환관이 재빨리 끼어 들었다.

“저희가 준비한 예물도 받지 않고 어디론가 떠났답니다. 빚은 갚은 것으로 하자구 하면서 말이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보냈단 말이지.”

말꼬리가 심상치 않다. 답변을 해야 할 자춘은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상대부의 말꼬리는 이미 화가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자춘(仔椿)이다.

“그들이 워낙 침통해 있고, 더구나 둘째인 검절의 시체가 있었는지라 그들에게 자세한 내용을 묻기도 어려웠다고 합…”

아니나 다를까? 자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부의 주먹이 자춘의 뒷통수를 갈겼다.

"딱."

마치 잘 마른 북어 대가리가 펴지는 소리와 같았다.

“이 빌어먹을 고자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해?”

고자는 자신도 고자다. 하지만 자춘을 욕할 때면 항상 같은 욕이다.
자춘은 눈물이 핑 돌았다. 상대부의 손은 매섭다.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매를 피한답시고 물러나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지만 역시 또 한대다.

"딱."

이번엔 좀 심했다. 자춘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굴을 탁자에 처 박았다..

“그래도 이 고자 새끼가… ”

언제 태사의에서 일어나 자춘의 뒷통수를 갈겼는지 알아볼 수도 없이 그는 원래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상대부의 무공수위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무인인 조궁도 자세히 모른다.

“저런 쓸모없는 걸 입히고 먹이고 키운 내가 잘못이지. 으이구.”

자춘은 성(姓)이 없다. 고아인 그를 데려다 키운 사람이 상대부다. 그래서 그는 그의 성을 자신의 성인 상(尙)을 주었다. 자식과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 아래에 가 있게 하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신이 데리고 있을 만큼 자식과 같은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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