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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분명 내가 묵었던 호텔인데 호텔 컴퓨터 기록에는 투숙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잃어버린 여권을 재발급하려다 보니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받는다.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내가 살던 집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물로 나와 있고, 어디에서고 나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흔적은 말끔히 사라져 있다.

마치 컴퓨터 C 드라이브를 완전히 포맷한 것처럼 말이다. 상상만 해도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이런 끔찍한 일들은 산드라 블록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네트>(The Net)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 속과 유사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야 말았다. 최근 동사무소 아르바이트 학생의 철없는 실수로 순식간에 본인도 모르게 주민등록상 주소가 옮겨져버린 모 영화배우의 사건이 바로 그것.

연예인을 동경한 철없는 학생이 일으킨 어이없는 행정상 실수라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자정부를 구현한다는 이 디지털 시대에 가장 우려해왔던 염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세상의 파놉티콘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와중에 전혀 상관없는 타인이 누른 버튼 하나로 멀쩡하던 사람의 주민등록 주소지가 바뀌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허술하고 단순한 시스템이라면 아르바이트생이나 담당자가 행정실수로 누른 버튼 하나로 멀쩡하던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과 결혼도 할 수 있다.

아예 나라는 인간 자체가 삭제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특히 전 국민이 출생부터 주민등록이란 이름표와 지문으로 체계적으로 등록, 정비되어 있고, 그 데이터 자체도 모두 디지털화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이 한국이란 땅에서 말이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대상에 의해 감시당하며, 내 사생활이 침해되고, 더 나아가 내 삶이 조작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문득 미셀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언급했던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원래 벤덤이 주장했던 파놉티콘은 손쉽게 죄수를 감시하도록 고안된 원형감옥을 부르는 말이다. 가운데 간수의 방은 어둡게 하고, 원형으로 둘러져 있는 죄수의 방은 환하게 한 채 감시를 하게 되면 죄수는 보이지 않는 시선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통제된다는 것이다.

200여년 후 파놉티콘의 개념을 되살린 것은 미셸 푸코였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사회의 특징을, 한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대중을 감시하는 체제로 설명한다. 그 권력자가 빅 브라더가 되었든, 게이트 키퍼가 되었든지간에 파놉티콘이라는 원형감옥에 나타난 감시의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스며들면서 규율 사회의 기본원리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파놉티콘은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면서 보이지 않은 일방적 감시가 아닌 상호감시가 가능한 시놉티콘(synopticon) 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재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24시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며 살고 있다. 이 순간에도 인터넷상에 사용한 자신의 이메일, 신용카드, 휴대폰 등을 통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어딘가에 기록되고 누군가에 의해 체크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나의 이메일, 신용카드번호, 휴대폰번호들이 보안이 허술한 틈을 통해 누군가에 유출되어 사용되는 사이버 범죄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뿐인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여론 조작의 대상으로 이용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옛날 일일이 손으로 기록을 찾아 복사하던 아날로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비록 그 많은 서류더미에서 기록을 찾아 일일이 수작업을 하는 번거로움은 있을지언정 잘못 누른 버튼 하나로 사람이 주민등록상으로 이사를 가는 황당한 일은 발생할 염려가 없기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행정상의 편리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기록 모두가 디지털 데이터화 되어버렸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인사기록, 의료보험기록, 우리의 은행계좌번호, 신용카드번호 등등.

일단 의심과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복잡한 세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때문에 기껏 힘들게 디지털 데이터화 되어버린 자료를 모두 파기하고 다시 옛날 서류시대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한다면 마치 산업혁명의 시대적 조류에 반항해 공장의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과 같은 무모한 일일 것이다.

이중 보안시스템 구축 및 보안취급자 교육

그렇다면 이러한 끝도 없는 의심과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바로 각종 디지털 데이터 보안의 강화이다. 비트화 되어 있는 데이터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침입자를 차단하는 이중 삼중의 엄중한 보안 시스템의 구축과 내부 보안 취급자의 엄격한 보안의식 모두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비트를 다루는 자는 어디까지나 기계가 아닌 인간이고 아무리 완벽한 보안시스템도 빈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동사무소의 주민등록 담당자가 암호를 입력해야 접속되는 시스템에 접속한 채 자리를 비우는 그런 허술한 보안의식만 없었으면 주민등록지가 이전되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혹 실수에 의해 이런 황당한 사태가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 해도 또 다른 감독자가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승인하지 않는 이상 변경할 수 없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위 전자정부를 표방하고 나선 정부는 이번 사태를 거울 삼아 각종 개인 신상이 기록된 디지털 데이터를 취급하는 관련기관에 대해 데이터의 외부유출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보안시스템 구축과 엄격하고 지속적인 보안취급자 교육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보안에 신경쓴다고 해서 과연 내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의 망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의심과 불안은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괴리감이 아닐지.

문득 이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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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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