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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그들의 경고를 듣다가, 나는 종교가 싫어졌다. 기독교인인 나는 신의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전쟁을 벌이는 모든 이들이 밉다. 누구도 더 이상 신의 이름을 팔지 말라.

김혜자가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읽으며 밑줄 쳐놓았던 문구가 생각난다.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전세계에서 전쟁이 단 한 곳도 일어나지 않은 날은 14일뿐이었다. 그 전쟁 중에서 종교로 인해 발발한 전쟁이 90%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내 마음에 그 말이 울림이 되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과연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이교도와의 전쟁은 정당한 걸까.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던 일부 기독교 대표들의 주장은 과연 정당한 걸까.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빌려 테러를 감행하는 자들은 과연 정당한 걸까.

뉴스를 통해 접하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대립을 지켜보면서 나는 좀더 자비로운 종교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이 믿는 알라신도 중요하다고 인정해줄 수 있는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싸움과 다툼은 내가 믿는 신만이 신이며, 네가 믿는 신은 우상이라는 독선적인 가치관에서 시작된다.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부시는 이라크전을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라고 했다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슬람의 테러리스트들은 알라신의 이름으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있다.

ⓒ 김태우

ⓒ 김태우
이제 제발 누구도 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신의 이름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치 가롯 유다가 은화 30냥에 예수를 판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명분과 이익을 위해 종교를 내세우고 있다.

어릴 적 좋아했던 찬송 중에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은 더 늘어간다"는 가사가 있었다. 그 때엔 그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미처 알지 못하고 경쾌한 리듬에 반해 그 찬송을 좋아했었다.

세상에 화해를 권하고 평화를 전파하며 사랑을 심어주어야만 하는 의무가 종교에 있다. 종교가 세상을 파멸과 전쟁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명분이 된다면 그 종교는 더 이상 종교일 수 없을 것이다.

끝없는 희생과 사랑만이 진정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총과 칼로 그들의 땅을 점령하고 세우는 교회라면 그 교회에 사람들이 신실한 마음으로 모여들 수 있을까.

21세기 첫 시작에서 전쟁은 끝없는 증오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우리도 그 증오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휘말려 버렸다.

파병에 찬성한 모든 사람들은, 파병을 막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이제 절망하게 될 것이고 역사가 그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100년의 역사 속에서도 지구상의 전쟁은 그치지 않고, 종교로 인한 전쟁이 또 다시 90%이상을 차지하게 될까 봐,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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