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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스트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책 한 권이 조만간 우편으로 도착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였다. 마침 <오마이뉴스>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그 내용이 몹시 궁금하던 참이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 내 머리는 어느 새 익숙해진 그 신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되뇌고 있었다.

'오마이뉴스'. 내가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의식 속에 떠오른 느낌은 '촌스러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학생이었던 나는 그 이름과 연관된 유행어 '오마이 갓'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생소했던 느낌의 그 명칭은 입과 머릿속에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이제는 처음의 풋내를 잃고 매끈해진 느낌이다. 모든 이름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닳아서 표면이 반질반질해진 수많은 이름 가운데서도 <오마이뉴스>는 단순히 '익숙함'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또 내 삶의 일부가 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내 이름도 <오마이뉴스>의 일부가 되었다.

비록 내가 <오마이뉴스>와 함께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뉴미디어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그 새로운 실험을 학문적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사실 <오마이뉴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예컨대 <오마이뉴스>가 어떤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창간되었는지, 초기에 어떤 수익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오마이뉴스'라는 생경한 이름은 어떻게 해서 붙여졌는지 그리고 '시민기자제'라는 획기적인 발상의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간혹 다른 매체를 통해서 <오마이뉴스>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나, 거기에는 창간자의 진솔한 고백보다는 제 삼자의 분석이나 논평이 담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짧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오마이뉴스>의 역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의 소망이기도 했다. 전화 한통을 받고 그토록 기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그 날 올 것이라고 믿었던 소포는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행여나 우편배달부가 되돌아갈까봐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도 못하고 기다렸건만, 그 모든 수고는 헛되이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 영겁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깨달은 사실은, <오마이뉴스>가 내 인내심을 현저히 떨어뜨려 놓았다는 사실이다.

<오마이뉴스>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새 기사쓰기' 메뉴를 선택한 후 글을 쓰고 사진을 첨부한 뒤 '편집부로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 그 기사는 내가 마우스 버튼에서 손을 떼기도 전에 편집부 책상 위에 도착한다. 그러면 몇 시간 이내에 깔끔하게 편집된 글이 또 다시 마우스 버튼 하나로 전국, 아니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배달될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빛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공할 만한 댓글들을 주렁주렁 달아 줄 것이다.

이런 '비트의 시대'에, 명색이 디지털신문 기자란 사람이 종이에 인쇄된 '원자상태'의 소포를 하릴 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말이 지나고, 책은 월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주인의 손에 놓였다.

성급한 손놀림에 찢겨나간 갈색 소포 포장지 뒤로 익숙한 색조의 붉은색 표지가 드러나고, 그 위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첫 장을 넘기자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한 월간지 기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999년 말, 오연호씨는 12년간 다니던 직장 월간 <말>을 그만 두고 인터넷 신문을 창간할 계획을 세웠다. 월간지에서 일간지로, 종이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이동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변화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인터넷 신문의 창시자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 본 경험이 없거나, 전 직장을 그만 둘 때까지 컴퓨터 대신 원고지로 기사를 쓰던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가장 혁신적인 언론 모델이 기술과 별 인연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마이뉴스>의 성공은 기술을 앞에 내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았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의 표어가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가 아니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 곳곳에 깔리고 휴대용 컴퓨터가 값싼 손목시계 이상으로 흔해지는 날이 온다 할지라도, 그 기술을 이용해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없다면 사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만, 한국과 같은 인터넷 언론이 있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입증해 준다. <오마이뉴스>의 탁월함은 기술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른 정보와 사회개혁을 소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오연호씨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 여덟 글자에 오마이뉴스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것은 오마이뉴스 최대의 자산이다. 지난 4년 동안 오마이뉴스가 1단계 성공을 했다면, 앞으로 오마이뉴스가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창간 컨셉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 '모든 시민은 기자다'는 오마이뉴스를 지구상의 그 어떤 매체와도 구별짓게 만드는 오마이뉴스만의 독특한 철학을 담고 있다." – 오연호,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pp. 27-28.


근대 이래 억압적인 정치체제에 의해 억눌려 온 한국인들은 또 다시 언론을 단순한 돈벌이로 간주하는 상업언론에 의해 목소리를 빼앗겨 왔다. 80년대 후반 '국민주 신문'이라는 세계사에 유례 없는 언론운동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억압적 정치체제 속에서 억눌려온 자유의 목소리였다면, '시민기자제'라는 참여 저널리즘의 성공은 보수상업언론에 의해 호도되어 온 여론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었다.

한국 사회가 세계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75퍼센트를 넘는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나 정보통신 시장을 주도하는 'IT 강국'으로서의 위상이 아니라, 그 기술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합리적인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밤새 토론을 벌이는 논객들이나, 하루에도 수백 개의 글을 올리는 시민기자들 그리고 무료로 볼 수 있는 신문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참여의 저력과 역동성은 결코 기술개발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오마이뉴스>는 인터넷이 사회를 바꾼 사례가 아니라, 사회가 인터넷을 바꾸어 놓은 사례로 기록되어야 한다.

"이렇듯 인터넷은 새로운 공간이다. 그래서 새로운 주체를 낳는다. 그 새로운 주체는 기존 공간을 주도하던 종이신문 시대의 주체들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종이신문 시대의 주류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이 인터넷 공간에서도 먹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주체들은 그들의 표준을 거부한다." – 오연호,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pp. 86-87.


똑같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이라도 '인터넷신문'과 '인터넷판 종이신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랫동안 일방적인 '독백'을 써 온 종이신문의 기자들은 독자들과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댓글'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독자란 일방적인 '계몽'이나 '훈계'의 대상이었지, 대화나 토론의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위'를 자랑하는 신문 칼럼니스트의 글 밑에 독자의견란이 삭제되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안쓰럽다.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의 글에서 관용이나 융통성 그리고 책임감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자신의 글이 활발한 토론의 주제가 되고, 또 토론을 염두에 두고 글이 쓰여진다는 점에서 인터넷 신문은 독백이 아닌 대화의 장이다. 그런 면에서 인터넷 신문은 이미 주류 언론을 앞서기 시작했다.

"'기사보다 독자의견이 더 재밌다.' '독자의견을 읽다보면 인터넷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나는 독자들로부터 그런 소리를 자주 들었다. 전혀 새로운 독자의견란, 그것은 오마이뉴스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 나는 우선 독자를 독자의견란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해방시키고 싶었다. 종이신문에서는 독자의 목소리가 언제나 독자의견란에 갖혀있다." – 오연호,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pp. 145-146.


이처럼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에는 지난 4년간 <오마이뉴스>의 성공 뒤에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게 감추어져 온 이야기로 가득하다.

멀리는 지게꾼의 삶으로부터 시작해 가깝게는 '오마이 월드뉴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디어의 미래'라는 제법 무거운 주제로부터 '뽕을 빼주마'라는 재앙적 명칭을 피하게 된 배경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만일 '오마이뉴스' 대신에 '뽕을 빼주마'가 제목으로 결정되었다면 웹주소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터넷 매체가 처음으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대안매체와 뉴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게다가 서점에 발품 팔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비트시대'에 걸맞는 방법으로 주문하고 '원자시대'의 인내심으로 기다려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오연호 지음, 휴머니스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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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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