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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날이다. 그동안 더워서 장보러 나가기도 겁이 난다. 하지만 버스 회사의 파업으로 그나마 다니던 버스가 운행을 중단한 상태라 내 눈치만 보고 있는 동네 할머니들을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그분들을 태우고 장으로 나섰다.
무더위는 사람 냄새 나는 시골 장터의 정겨운 풍경까지 앗아가 버려 난전을 벌인 상인들도, 장꾼들도 확 줄어버렸다. 게다가 과일이며 채소 값은 얼마나 치솟았는지 동네 할머니들은 치마 속바지에 차고 있는 쌈지돈 주머니를 망설이며 열지 못했다.
그런데 장터 입구에서부터 장터의 상가에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다 장악해버릴 듯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조그만 시골 동네에 OO 부동산이라는 간판이 서너 개가 한꺼번에 생긴 것이다. 그것은 우리 동네에 어떤 조짐이 일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연기, 공주 쪽으로 발표되자 그 인접 지역인 이곳 부여 지역까지 땅값이 출렁거리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이런 부동산이 난립하게 되면 땅밖에 모르고 사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흔들리게 하고, 우리처럼 도시와 문명에 회의를 느껴 시골로 피난해 온 사람들을 비감에 젖게 한다.
"요즘 왜 그렇게 뜸해? 뭐하느라고 바쁜데?"
장터의 부동산 가게들을 보고 울적해진 마음으로 돌아와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에게 친화를 걸었다.
"나 요즘 좀 바빴어. 친정에 일이 있어서 여기저기 다니느라고…."
"무슨 일인데? 안 좋은 일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공주와 부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예정된 지역이 친구의 친정 동네라고 한다. 그러면서 뜨거운 부동산 투기 바람을 그녀도 맞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10년 전에 아버지가 사서 농사짓던 밭 값도 10배가 넘게 뛰었다고 한다. 업자들은 친정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당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을 아버지가 밭 장만하는 데 보탰으니 그녀도 어느 정도 그 밭에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덧붙여서 말이다.
노쇠해진 몸으로 농사를 계속 짓기가 힘든 친정 부모들은 땅값이 한껏 부풀었을 때 팔아서 노후 생활을 하겠다고 그녀에게 정보를 수집을 해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집안 일은 뒤로 하고 고향집으로, 관공서로 바쁘게 뛰어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정부가 신행정수도계획을 발표하자 그 후로 부여지역에 우후죽순으로 부동산 중개소가 생기고, 군청 민원실의 업무도 폭주했다고 한다.
"나 요즘 복부인이 된 기분인 거 있지!"
비감에 젖어들던 기분을 추스르려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나는 덤터기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농사짓고 소를 키우느라고 한창 나이에 멋도 못 부리고 거친 일을 했던 그녀를 생각하면 친정 부모님이 그 땅을 팔아서 어느 정도 떼어주기를 함께 기원해 줘야겠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우리 동네에서, 내 눈앞에서 부동산 투기 바람이 닥친 것을 보니 솔직히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진작에 땅 몇 평 더 장만해 놓지 못한 회한이 더 앞섰다. 친구의 친정집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기분까지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얼마 전 모임에 나갔다가 백 억 이상의 재산이 있다고 자랑하는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재테크를 하는 특별한 비법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나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히곤 돈이 생기면 땅에다 묻어둬라 그러셨지.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란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어른들이 돈을 주면 봉숭아꽃이 피는 화단에 땅을 파고 묻어두곤 했어.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아서 조금씩 서울 변두리에 땅을 사 둔 것이 이렇게 된 거지 뭐."
그 때 당시,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마냥 부러워서 어릴 적부터 재테크 하는 법을 잘 가르쳐주지 않은 우리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부동산 투기는 나한테는 전혀 거리가 먼 일이라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코앞에서 10여 년 전에 천원 주고 산 땅이 삼만 원을 호가하고, 그 땅 주인들은 벌써 땅을 팔아서 자식들에게 나눠줬다는 등의 무성한 소문들이 동네의 들뜬 분위기에 따라 나도 어떻게 가슴이 부풀어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모처럼 살인적인 폭염을 잠재우고 태풍을 부르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나도 이제부터 어린 아들, 딸을 무릎에 앉혀 놓고 돈이 생기면 무조건 땅에 묻고 보라는 재테크 교육이라고 시켜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