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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수건을 턱하니 어깨에 걸치고 안방으로 걸어 들어온 치매할머니 때문에 모처럼 편안하게 누워 올림픽 경기를 치켜보던 엄마와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미 새벽을 향한 시간, 전기 아끼라는 엄마 지론에 이미 초저녁 이후 대부분의 불을 꺼놓았던 터라 하얗게 머리가 샌 할머니가 빠끔히 열려있던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땐 민망하게도 말 그대로 귀신이 따로 없었다.

"얘, 그 닭도리탕이며 닭튀김이 혹 치매에 효과있는 음식 아니니? 요즘 늦더위 쫓는다고 부쩍 닭 요리를 드렸는데 이젠 앉아서 걷지도 않고, 저렇게 성큼성큼 다니시니 말이다."

평소 국물 있는 음식이라곤 요만큼도 드시질 않아 더 오래 사신다던 소리를 듣던 할머니는 요즘도 여전히 팍팍하게 국물 없이 해낸 요리만을 고집한다.

그런데 정말일까. 할머니는 요 며칠 부쩍 정신이 드셨다. 물론 아침나절에 불과할 뿐 한밤중엔 여전히 세수하러 나오시며 옷을 훌훌 벗어 젖히기는 하지만.

그런 할머니가 어쨌든 손자며느리 보실 일이 떠올랐나 보다. 오늘 아침엔 "내가 이제 원을 풀었다. 우리 손주 장개가는 걸 다 보고 죽다니"라며, 끌끌 혀를 차시더니 급기야는 그 하얀 머리를 퍼머해야 한다며 엄마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일주일 뒤면 손자며느리를 보신다던 얘기를 기억해내신 걸까.

"어머니, 그 많던 돈 다 휴지통에 버리시고 무슨 돈으로 퍼머를 해요?"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할머니는 돈 삼만원을 집어들고 나오셨다. 도대체 어디다 두었던 쌈짓돈이 생각났단 말인가.

"에이 웬걸. 어떻게 식장엘 모셔가니. 그냥 당신 혼자 마음만 바쁘신 거지."

할머니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았어도 그 마음을 엄마와 나는 다 안다. 손자 결혼식장도 가고 싶고 '코빼기'도 내밀지 않던 당신 딸들도 보고 싶어 할머니는 나름대로 머리며 옷매무새를 추스르고 싶었던 거다.

하도 서랍마다 있는 옷들을 끌어내 여름옷 겨울옷 가릴 것 없이 입고 벗는 통에, 안 쓰던 컴퓨터 모니터로 막아놨던 할머니의 서랍옷장.

그 속에 곱게 접은 한복이 들어있었던 걸 잠깐 정신이 든 새 기억해 낸 할머니가, 여름끝자락에 동네 미장원 아줌마를 뻘뻘 진땀 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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