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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전날인 29일 뉴욕에서 '평화와 정의를 위한 단합'이라는 반전단체 연합체가 조직한 반부시 가두시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전날인 29일 뉴욕에서 '평화와 정의를 위한 단합'이라는 반전단체 연합체가 조직한 반부시 가두시위. ⓒ AP=연합뉴스
전국 조직인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대(United for Peace and Justice)‘는 화씨 88도가 넘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지난 금요일 맨해튼 서쪽 첼시아부터 전당대회 장소인 메디슨 스퀘어 가든, 유니온 스퀘어 파크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 데 이어 29일(현지시간)에는 25만명이 집결한 가운데 부시낙선 시위를 벌였다.

마이클 무어도 시위 참여 시위...311명 체포

이들 반부시그룹의 시위에는 얼마 전 개봉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다큐멘터리 <화씨 9/11>의 제작자 마이클 무어도 등장했다. 무어는 이라크전 반대 연설을 통해 부시의 재선의 부당함을 역설하며 “우리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대다수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쳤다.

시위대열 곳곳에서는 "부시, 민주주의에 대한 절박한 위협"이라고 적힌 피켓과 케리가 1970년대 반전운동을 할 때 사용한 ‘당신은 한 병사로 하여금 어떻게 거짓 전쟁에 목숨을 내걸도록 요청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맨해튼 경찰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 이틀간의 시위로 총 311명의 시위대가 무질서와 과격시위 혐의로 체포됐다.

시위가 다소 과격 양상을 보이자 <뉴욕 데일리뉴스>는 29일치 1면에 "훌륭하게 치르자"(Play Nice)라는 사설을 게재해 과격 시위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도 29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 "양측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이번 전당대회가 안전하게 치러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맨해튼 시 당국은 이에 앞서 반부시그룹이 시위장소로 요청한 센트럴 파크를 잔디가 상한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온 일부 시위대원들이 센트럴파크에 자리를 깔고 누워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시위 동참을 요청하는 등 시비가 벌어지자 시 당국은 전당대회 기간 중 아예 공원을 폐쇄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전당대회에 맞추어 테러 첩보를 입수한 맨해튼 경찰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5만명 이상의 경찰 및 연방 파견 요원들을 대회장인 메디슨 스퀘어가든 주변은 물론 센트럴 파크, 타임스퀘어 광장 등 시위대가 몰리는 요소마다 배치, 검문검색에 나섰다. 특별 경계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하늘에는 헬리콥터를 띄워 24시간 공중 정찰을 계속하고 있다.

뉴욕은 캘리포니아에 이어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초강세 지역. 공화당은 '적지' 에서 민주당에 맞서 그동안 다소 열세에 놓여있던 부시에 대한 지지도를 단숨에 역전시키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상징성' 노린 '뉴욕' 전당대회

공화당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의 아성인 뉴욕에서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한 것은 대담한 모험이다. 어느 당을 막론하고 그 동안의 전당대회는 '홈그라운드'나 격전지에서 치르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부시의 고향인 텍사스나, 격전지인 플로리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또는 공화당의 슈워제네거가 주지사로 있는 캘리포니아 등을 전당대회 후보지로 꼽는 것이 상식인데도 공화당은 굳이 뉴욕을 전당대회 장소로 선택했다.

뉴욕은 공화당과 부시에게 어떤 곳인가. 부시는 911이 발생한 사흘 후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바로 그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미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테러전을 선포했었다. 당시의 전폭적인 지지가 현재는 형편없이 떨어진 상태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공화당 지지자들과 일부 미국민들은 911 당시 쌍둥이 빌딩의 폐허 위에서 부시가 테러리즘에 대해 보여준 단호함과 이후로 벌인 테러전에 대해 '경이로움' 의 감정을 갖고 있다.

부시가 이번에 뉴욕 전당대회에서 노리고 있는 것은 911 테러사건으로 뉴욕이 갖게 된 이같은 '상징성'을 한껏 이용하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게는 다시 한 번 결속을 호소하고, 중도 또는 부동층에게는 ‘테러’의 기억을 되살리게 해 부시쪽으로 돌아서게 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뉴욕 전당대회에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적지' 에서 정공법을 구사하겠다는 부시진영의 의지가 강하게 깔려 있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이라크전으로 전시대통령으로서의 부시의 이미지가 실추된 만큼 뉴욕 전당대회의 '약효'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부시로서는 지난 6월 이후 뒤처지고 있는 지지도를 역전시킬 ‘타개책’이 필요했고, 그 방법을 이번 전당대회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29일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난 이후 8월 28일 현재까지 한달동안 치러진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는 케리에 계속 밀렸다. 가령 18차례의 부시-케리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케리는 11차례를 이긴 반면, 부시는 5차례 이긴 것으로 드러났으며 두 차례의 동률을 기록했다.

지난 21일 이후 실시된 6차례의 3자대결 여론조사에서 부시가 4차례, 케리가 한 차례를 이긴 것으로 드러나 부시가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선거인단수에 있어 아직 부시는 케리에 열세에 놓여있다. 선거인단수가 많은 주들에서 케리가 우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갤럽은 25일 현재 케리가 280명을, 부시가 247명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계산했으며, LA타임스는 29일 현재 케리가 161명을, 부시가 147명을 얻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부시에게 이번 전당대회는 그동안 당 안팎에 드리워졌던 '재선 실패'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시위대가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국군인들을 의미하는 가짜 관들과 부시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시위대가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국군인들을 의미하는 가짜 관들과 부시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공화당 전당대회는 가면 무도회"

8월 30일부터 9월 2일까지의 공화당 전당대회 연사들을 보면, 이번 전당대회의 초점은 공화당 지지자들의 결속을 강화하고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의 표심을 호소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

그동안 부시는 강경노선의 대표적 주자로 알려진 체니 부통령으로 인해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따라서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존 멕케인,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아놀드 슈워제네거 등 비교적 대중적 신망이 높고 중도적인 공화당 연사들을 내세워 공화당의 강경 극우 노선 이미지에 대한 물타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당대회에 ‘중도’ 인사들을 포진시킨 이유에는 지난 92년 대선에서 부시의 아버지인 전 부시대통령의 대선실패 원인을 팻 뷰캐넌 같은 연사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당파적인 연설을 한 것이 역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정치분석가들의 견해도 상당수 작용했다.

부시의 이 같은 전략에 대해 민주당측 인사 중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보좌관을 지낸 앤 루이스는 28일 <워싱턴 뷰러>를 통해 "나흘밤의 '중도 잔치'가 '극우'의 4년을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는 '가면 무도회' 가 될 뿐" 이라고 폄하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존 해리스와 마이크 앨런은 29일 공동 칼럼에서 "부시는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어떻게 올바르게 행동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해 왔다"면서 "부시는 계속된 오판과 기회 상실 때문에 그의 정치력에 흠집을 남겨왔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결국 부시의 독선적인 강경노선은 미국민들을 찬성 그룹과 반대 그룹으로 급속하게 분열시켰고, 이제껏 이를 선거 전략으로 삼아오면서 지지기반을 상실해 왔다"고 분석하면서 "부시는 이번 전당대회를 이 같은 전략에서 방향을 선회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고위 선거전략가인 매튜 다우드는 이 같은 분석에 대해 "(중도파를 잡기 위한) 재래적인 전략은 지금과 같이 국가안보 문제가 최대의 관심이 된 선거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전략"이라며 "그동안 우리를 지지해온 사람들에게 호소해온 것과 똑같은 말을 중도파에게도 계속 하게 될 것"이라고 이 같은 분석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다.

'강경노선 물타기' 시도, 한계 있을 듯

종합적으로 볼 때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부시와 체니는 911 테러 이후 미국민들에게 내세워 온 강력한 지도력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한편, 온건한 이미지의 연사들을 통해 2기의 부시 행정부가 타협의 여지를 가진 신중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는 지난달 22일 아이오와 연설에서 '평화' 또는 '평화로운' 이라는 단어를 무려 20차례나 사용하면서 "어느 누구도 전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음 4년은 평화로운 해들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체니, 럼스펠드, 월포위츠 등으로 이어지는 네오콘 그룹들이 백악관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핵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 정책의 방향 선회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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