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대낮의 볼품없는 달맞이꽃에 비해 어둠이 내려앉은 후 활짝 피어난 달맞이꽃이 얼마나 눈부신지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을 제방에 어둠이 찾아들면 아이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곳에 갈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장마 뒤 큰물이 내려갈 때 마을 아이 하나가 물에 빠져 죽은 후로 어두운 제방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어두운 제방 너머 달팽이를 잡으러 가신 날이면 나는 어둠이 내리는 제방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달팽이는 흐린 날이나 어두운 저녁이 되면 돌멩이 위로 기어올라오기 때문이지요.

손바닥 만한 땅 한 자락도 없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오신 어머니가 그 가난을 온몸으로 지탱하며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겨울이면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가서 삽추싹 뿌리를 캐서 팔았습니다. 봄이면 산나물을 뜯었고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들녘에 있는 각종 약초를 캐서 팔았지요.

그 많은 일들 가운데 어머니가 가장 많이 하신 것이 달팽이를 잡는 일이었습니다. 얼음이 채 녹지도 않은 이른 봄부터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초겨울까지 어머니는 저녁에는 개울에 나가 살다시피 했습니다. 달팽이를 잡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몸에선 물비린내가 물씬 풍겼습니다. 그렇게 잡은 달팽이를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늘 집에 없었습니다. 개울로 떠난 어머니 대신 연필에 침 묻혀 꾹꾹 눌러쓴 종이가 밥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찬상에 게란 부처 노아따. 밥해 머거."
"장에서 써니넨 사다 노아따. 밥 마니 머거."

맞춤법도 맞지 않고 삐뚤삐뚤 쓴 글이지만 어머니의 그 메모처럼 가슴 저미는 글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 떠난 밥상 위에서 혼자 밥을 먹고 기다리다보면 무서움이 밀려들었지요. 그래서 어머니를 찾으러 제방 위로 갔습니다.

어두운 제방 위에 달맞이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어두운 제방 저편에선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가 무서워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제방 위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달맞이꽃 꽃잎 따 입에 물고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려도 어머니는 오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길조차 어둠에 묻힐 즈음이면 달맞이꽃을 꺾어 손에 들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면 잠결에 물에 젖은 고무신을 끌며 집으로 오시는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눈을 뜨면 어머니에게 비린 물내음이 물씬 풍겨왔습니다.

제방 위를 밝혀주는 노란 달맞이꽃을 보면 달팽이 잡으러 개울로 가신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제방 위를 밝혀주던 것이 달맞이꽃이라면 우리 가정을 밝혀주던 또다른 꽃은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달맞이꽃을 꼭 닮으셨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한 새벽 올 때까지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 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주병선이란 가수가 부른 달맞이꽃의 노래 가사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항상 어머니 얼굴이 떠오릅니다. 새벽녘까지 홀로 피어있던 달맞이꽃이 시들어가듯 어머니도 점점 늙어 가십니다. 그런 어머니를 뵈면 항상 가슴이 미어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