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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아가라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 ⓒ 최동욱

2분 인터뷰를 위해 3시간 기다리다

한 달 전에 인터넷으로 약속한 비자 인터뷰 일시에 맞춰 갔으나 이미 기다리는 줄이 수십 미터였고 대사관이 지정한 시각은 의미가 없다.

대사관 밖에서 1월의 아침공기에 떨며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보안검색을 받고 대기소에 들어가서도 속절없이(언제쯤 부를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시스템) 기다리는데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을 밖으로 내몬다. 화재경보인가 했더니 대테러훈련이란다.

철옹성 같은 방어시설로 둘러싸인 것도 모자라 우리 아들들이 방패 들고 겹겹이 경비서는 미국대사관이 웬 테러대비 훈련이란 말인가.

내가 다닌 춘천고등학교는 미군부대(캠프 페이지)와 가까웠다. 우리는 부대 울타리 가시철망에 어색한 글씨체로 써 달아 놓은 경고문 ‘접근하면 발포함’을 뒤집어 읽으며 지나다녔다. ‘발포하면 접근함’으로. 미국 대사관은 왜 비자 인터뷰 대기자들까지 참가시키며 테러 대비훈련을 하게 되었을까?

3시간은 기다려 영사를 대면했다. 인상 좋은 영사에 비해 젊은 여자 통역자는 필요 이상으로 사무적이다. 그녀는 얼굴에 냉기를 띄우며 ‘영사님께서 …라고 말씀하십니다’를 기계처럼 반복한다. 그 싸늘한 눈빛의 의미가 궁금하다.

유리벽을 경계로 안에 있는 자신의 존재(insider)를 과시하는 것인가? 통역하는 한국인이 미국 영사보다 더 딱딱거리더라는 말이 이래서 들리나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보다 친일파가 더 무서웠다는 노인들의 말이 생각났다.

영사는 서너 마디 질문하더니 사인하며 ‘여행 잘 다녀오라’고 한다. 2분 인터뷰를 위해 3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그나마 통역자를 짧게 상대해서 다행이다.

‘미국 하늘은 왜 이렇게 넓으냐?’

방학 중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하는 아들과 함께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작은 아이 때문에 함께 못 가는 아내가 아들 손을 잡고 눈물을 비친다. 미국은 너무 먼 곳이다. 아내는 우리 부자가 탄 비행기의 이륙 사인을 확인하고서야 공항을 떠날 것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보다 값이 싸다는 말에 동경을 경유하여 뉴욕으로 가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택했으나 값은 별 차이가 없고 시간은 훨씬 더 걸렸다. JFK 공항에서 동생이 사는 필라델피아까지 밴을 불러 타고 갔는데 그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목적지로 직행하는 우리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일 것 같다.

일 때문에 출발 전 이틀을 잘 못 잤어도 비행기 안에서 잠이 안 온다. 내가 179센티의 몸을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구겨 넣고 허리를 비틀며 고문당하는 14시간 동안 옆의 아들은 비행기에서 주는 대로 먹고 잘 잔다. 젊음이 좋다.

파김치가 되어 공항에 내렸는데 입국심사가 까다롭다. 길게 줄서서 기다려 얼굴사진 찍히고, 지문 찍고서야 공항을 빠져 나왔다.

밤에 도착한 동생네 집, 뜻밖에도 정원 여기저기 반딧불이 반짝인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들판을 수놓던 반딧불, 이젠 시골에 가도 보기 어려워진 개똥벌레가 도시 주택가에 있었다. 이튿날 아침 집 주변을 살피니 어제 본 반딧불이 이해된다. 넓은 정원을 가진 집들과 숲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잘 손질된 넓은 정원을 부러워하자 동생이 말했다.

“오빠, 넓은 정원은 일주일만 좋았어. 가을되면 낙엽이 징그러워.”

처음에는 매제가 잔디를 깎았는데 쉽지 않아 업자에게 맡기고 있단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맞벌이에게 한 변의 길이가 50m나 되는 정원의 잔디와 낙엽은 짐이겠다. 동생의 시어머니가 미국에 처음 와서 ‘미국 하늘은 왜 이렇게 넓으냐’고 했단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다

첫날, 차를 빌려 미동북부 제일의 관광지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렌트한 6기통 3800cc 뷰익, 힘도 충분하고 승차감도 괜찮다. 나는 도로표지판 보는 것도 서투르고 지도의 잔글씨는 못 보니 운전을 맡았다.

아들의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고 버팔로까지 달려 ‘모텔6’를 찾았다. 값이 싼 모텔 체인이라 모든 숙소를 ‘모텔6’로 예약했다는 것이 아들의 말이다.

둘째 날,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했다. 유람선을 타고 폭포 밑에 가까이 가니 하늘을 덮는 물보라와 굽이치는 물결이 장관이다. 다리 건너 캐나다 쪽으로 들어갔다. 여권만 보이면 통과다.

캐나다 쪽에서는 양쪽 폭포가 다 잘 보인다. 폭포 가까이 호텔과 카지노가 즐비하다. 캐나다의 관광수입이 만만찮겠다. 다시 미국으로 입국하려니 절차가 까다롭다. 비자와 사람들의 얼굴을 맞춰보며 행선지를 묻는다.

셋째 날, 시라큐즈를 출발하여 사우전 아일랜드로 향하였다. 사우전 아일랜드가 지명인줄 알았으나 말 그대로 1000개의 섬이라 한다. 미국 오대호 중 하나인 온타리오호의 동북쪽 지역으로 작은 섬들이 호수에 가득하다. 알렉산드리아 베이에서 유람선을 탔다. 맑고 깊은 물과 섬마다 들어선 예쁜 집들이 볼만하다.

1000섬 작은 집
1000섬 작은 집 ⓒ 최동욱
2시간짜리 유람선이었는데 비슷한 섬과 집들을 계속 보니 나중에는 좀 지루했다. 독자들이 여행을 간다면 1시간짜리만 타도 충분할 것이다.

다음 숙소는 메인주 어거스타, 거리도 거리지만 고속도로로 연결되지 않는다. 도중에 작은 호수들을 계속 만나며 국도를 달렸다. 아들이 '오늘 중 숙소에 닿기 어렵겠다’고 한다. 그 말에 너무 밟았는지 경찰에게 걸렸다.

‘웬 차가 이렇게 바짝 따라붙나’ 하는데 이내 경광등을 켜고 ‘삐약’거린다. 갓길에 세우자 잠시 뜸을 들인 경찰관이 다가와 면허증을 보자고 한다.

내가 허리띠 풀고, 티셔츠 올리고, 복대 지퍼를 열자 경찰관이 긴장한다. 권총이라도 꺼내는 줄 아나보다. 꾸무럭대며 면허증을 건네주자 슬쩍 보더니 조심하라며 돌려준다. 아들에게 ‘외국인이라고 봐주는 거냐’고 물으니 ‘국제면허증에 딱지를 끊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찰에 걸릴 정도로 밟았지만 시라큐스부터 알렉산드리아 베이를 거쳐 어거스타까지 운전만 10시간 넘게 했다. 긴장 때문인지 나중에는 다리에 쥐가 나 운전대를 아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운전을 직업으로 가지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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