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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동체 사회에서 학생들이 규칙을 어겼을 경우, 또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했을 경우 거기에 따른 책임과 벌(punishment)을 어떻게 효과 있게 줄 수 있는지는 상과 보상 만큼이나 중요하다. 미국에 있을 때도 두 아이 학부모 역할을 하면서 관심을 갖고 관찰을 했던 부분이 미국 학교의 규칙과 미국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벌을 주는 방법이었다.

미국의 모든 주가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텍사스, 콜로라도를 비롯해서 10개 주 이상이 체벌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부분적으로 체벌을 허용하는 주까지 포함하면 무려 20개 주 이상이 체벌을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내에서도 체벌은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에 관한 잡지나 신문 따위의 칼럼을 보면 체벌에 얽힌 여러 가지 사례가 나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러 인종, 여러 문화의 배경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모여서 학교의 구성원이 되고 있으니 당연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을 것이다. 부시(Bush)가 교육개혁을 강조하면서 무너져 내리는 공교육을 살려보려고 많은 대안과 예산을 투자하고 나서는 것만 봐도 공교육의 부실화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만은 아닌 듯싶다.

미국 교장 선생님의 역할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의 교육 방침이나 문제를 접근해서 해결해 나가는 의식 자체가 부럽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기본적인 학생들의 질서의식,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인성교육, 자발적인 봉사정신은 어쩌면 미국을 지탱해나가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교장실은 규모부터 우리와 일단 다르다. 우리나라의 교장실은 고급스러운 가구로 꾸며져 있고, 게다가 교실 한개 정도의 커다란 크기를 학교장이 혼자서 다 사용한다. 물론 외부 손님 접대라든가 학부모 간담회라든가 할 때 어느 정도 공간이 필요하겠지만 교실 크기의 1/3정도의 공간도 되지 못하는 별실을 쓰는 교사들의 경우는 최소한의 개인적인 공간까지 침해당하면서 근무를 하고 있는 실정임을 고려할 때 과한 공간배치라고밖에 볼 수 없다.

벌칙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웬 교장실 크기를 운운하는 걸까'하겠지만 연관이 있다. 미국의 중학교 교장실은 굉장히 비좁고 이런 저런 서류로 다소 산만하고 지저분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국의 교장 선생님들이 주로 담당하는 주요 업무 중의 하나는 문제가 되는 학생들을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미국 학교를 소재로 하는 많은 영화 속에서도 학생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교장이 직접 문제가 되는 부모와 상담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가 있다. 미국의 학생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고 겁나는 말 중에 하나가 "너, 교장실에 가고 싶니? 교장실에 가 있어"라는 말이다.

학과 담임선생님들이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학생이거나 경고를 두 세 차례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변함이 없으면 그 학생들은 교장실로 보내진다. 교장은 학생의 생활 반경에 제한을 두고 자유를 박탈한다. 심한 경우에는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해서 부모에게 학생을 인계한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의 부모들처럼 미국의 초등학교 부모들도 학교의 이런저런 행사 때문에 자주 학교를 찾아갈 기회가 많지만 일단 중학교 학생이 되면 딱히 학교에 갈 일이 거의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부모가 오는 경우는 거의가 학생이 문제가 있어서 학교에 호출되는 경우다. 규칙을 어기거나 친구를 지나치게 괴롭히거나 성적이 너무 뒤처지거나 하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학생들에게 벌을 주고 학부모 호출을 해서 문제를 해결해주니 교사가 구태여 매를 들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잡지에서 익살스런 사진과 짤막한 글이 실려 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교실에서 남자 어른이 양복을 입은 상태에서 학생의 책상 앞에 인상을 쓰고 앉아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신사는 바로 말썽꾸러기의 아버지다. 하루 온종일 아이의 학교 스케줄에 맞추어서 아버지가 아이와 같이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주어진 벌칙이었던 것. 부모들도 자식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서 같이 학교의 방침에 동참하고 협조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미국의 학교가 한국의 학교에 비해서 누가 덜 엄격하다고 했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중학교 이상만 되도 여학생들 중에 상당수가 메이크업을 하고 귀를 뚫어서 귀걸이를 하고 남학생들은 이상야릇한 머리 모양새를 하고 다녀도 딱히 거기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는 규칙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수업시간 사이의 쉬는 시간이 딱 5분 주어지고 그 5분 동안에 책이나 소지품을 놓아둔 락커(locker)에 가서 다음 시간에 배울 책을 가지고 온다거나 화장실에 가서 용무까지 다보고 다음 수업 들을 교실까지 찾아가서 제 자리에 앉아 있어야 된다. 수업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타디(tardy:늦은, 느린)라고 해서 경고를 받는다. 두 번 타디가 되면 우편엽서만한 크기의 통지서가 학부모에게 배달된다.

예근이 학교에서 온 타디 쪽지

어느 날 우편함을 확인하러 갔다가 예근이 학교에서 온 타디 쪽지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불어 시간에 두 번 늦은 것으로 되어 있고 한 번 더 늦게 되면 예근이 불어 성적에서 점수를 감하겠다는 통지였다.

"도대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다니기에 이런 쪽지가 날아드는 거야."

잔뜩 화가 나서 예근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몰아치면서 물었다. 예근이는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선 깜짝 놀랐다. 예근이 설명에 의하면 한 번은 화장실 갔다가 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아서 늦었고, 또 다른 한 번은 락커의 문이 잘 닫히지 않아서 늦었는데 거기에 대한 이유나 변명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석을 해야 하는 경우나 조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상당히 까다롭다. 부모가 직접 학년 사무실에 전화해서 결석의 사유를 말하거나 조금 늦겠다든가 어쨌든 연락을 미리 취해 놓지 않으면 학교 측에서 자동으로 출결에 관한 메시지(voice mail)를 집 전화기에 남겨 놓는다. 그 다음날 부모나 보호자가 학교에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서 왜 결석을 했는지에 대한 사유를 말해야 된다.

한번은 예근이가 치과에 갈 일이 있어서 몇 시간의 수업을 빠져야 했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는 우리 식으로 학생의 말만 듣고 조퇴를 쉽게 해주지 않는다. 담임제가 아니므로 학년 사무실로 찾아가서 출결과 학생 현황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에게 예근이의 학년과 이름과 조퇴의 사유를 말했다.

미국에서는 매 시간 시간마다 예근이가 어디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컴퓨터를 통해서 파악이 가능하다. 10분 정도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어디선가 예근이가 나타났다. 학년 사무실에서 보낸 쪽지가 학과 선생님에게 전달되고 그 쪽지를 다시 예근이가 받아서 전체 학년을 담당하는 사무실(main office)에 제출하고 나서야 조퇴가 허락이 됐다.

예근이는 미국 학교생활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것이 바로 학생들의 수업태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모습의 미국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 때의 자세는 한국의 대다수의 학생들의 그것하고는 상당히 다르다고 했다. 떠들고 남을 방해하고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경우에 이때다 싶어서 장난치고 그러는 학생들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미국의 학교도 전교생들이 우리나라처럼 강당에 모여서 조회(assembly)를 서는 경우가 있다. 교장 선생님 훈화도 있고, 이 시간을 이용해서 상장도 수여하고 이런저런 정보나 소식도 교환하는 시간이다. 현근이 담임 선생님였던 맬턴(Melton) 선생님이 현근이 상 받는 것을 보고 싶으면 금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강당으로 오라고 하기에 갔다가 미국의 초등학교 학생들의 질서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처럼 선생님 구령에 똑바로 줄을 맞추어서 서있지는 않지만 교장선생님이든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면 갑자기 쉬-하면서 하나 같이 조용히 경청하는 태도를 갖는다. 중학교 학생들은 어떤지 예근이에게 물어보았다. 고개를 몇 번이고 끄떡인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학생들의 질서의식이 잡혀 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졸업식 업무를 담당하는 바람에 한복을 입고 교장 선생님 옆에서 상장 보조를 한 적이 있었다. 졸업식장인지, 도떼기 시장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교장선생님은 많은 학부모 앞에서 체통이고 뭐고 학생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졸업식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교장 선생님 옆에 서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학교 운동장 조회를 서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장선생님이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서야 학생들이 조금 집중하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서 떠들고 난장판이 된다. 보통 한국의 교육이 엄격하고 보수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어떤 것이 엄격한 것이고 무엇이 보수적이란 말인가. 머리길이 단속, 교복 스커트 길이 단속이 엄격한 교육인가? 규칙은 있으돼 적용되지 않는 규칙, 학생들을 사랑하고 위한다는 미명아래 모든 것을 끌어안고 어설피 책임지려 하는 학교체제, 타성에 젖을 대로 젖은 학생들의 무감각과 무질서.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라는 물음 속에는 기본적인 생활지도와 인성지도가 자리를 차지할 공간이 없다. 오직 학력향상만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규칙을 어기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는 의식이 밑에서부터 자리를 잡아가야 한다고 본다. 거기에 따르는 제도적 장치가 엄격하게 따라야 되지 않을까 싶다.

구심점 없는 혼탁한 무질서속에서 우리는 모두 교육의 헛바퀴만을 돌리고 있는것은 아닌지 정말 돌아보고 점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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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음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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