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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야간 통행금지라는 게 있었다. 1945년 9월, 미군이 주둔하면서 밤 10시부터 이튿날 4시까지 치안 유지와 간첩활동을 막는다는 구실로 일반 백성들의 일체 통행이 금지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통행금지 시간이 지역에 따라 여러 차례 조정되다가 밤 12시부터 이튿날 4시까지 통행금지가 가장 오래도록 전국적으로 지속되었다. 그 시절에는 밤 11시 30분이면 통행금지 예비 사이렌이 울렸다. 그때부터 도시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한다.

예비 사이렌 후에는 택시 요금도 두 배 세 배로 뛰었고, 여관도 비로소 대목 시간을 맞았다. 두세 배 요금에도 택시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가까운 여관을 찾아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30분 후 정각 12시면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렸다. 통행금지가 시작되면 도시는 갑자기 정적에 휩싸였다.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유령의 도시처럼 변했다.

어쩌다가 순찰 경찰이나 야경꾼들이 지나칠 뿐이었다. 그 시절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때 얘기는 귀신 씨나락 까먹던 시절 얘기로 들릴 게다.

왜 시민들에게 불편한 그런 통행금지제도가 있었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게다. 당국자는 통행금지가 있었던 주된 이유는 범죄 예방과 간첩들이 주로 한밤중에 활동하기에 어쩔 수 없이 존속한다고 늘 그랬다.

그럼 1980년대 통행금지 해제 이후에는 범죄가 기승을 더욱 부리고, 간첩들이 한밤중에 활동해서 국가안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느냐고 묻는다면,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대답할 게다.

그동안 줄기차게 일부 계층에서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곧장 대한민국의 안보에 큰 구멍이라도 뚫릴 듯이 말하고 있다. 이들은 마치 지난날 통행금지가 있어야 도둑이 날뛰지 않고, 간첩들이 활동치 못한다는 논리와 같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요, 자유 민주주의의 뿌리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악법에 너무 길들여져서 일부는 그 악법이 없는 사회를 불안해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악법의 보호 아래 계속 안주하려고 한다.

그 악법에 억울하게 희생이 된 사람이나, 그 가족들이 받았던 고통과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철저히 모른 척하면서, 오직 내 재산 지키기와 내 식구 감싸기,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다.

사상과 학문의 발달 없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런 나라는 늘 강대국에게 끌려 다니는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사상과 양심,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는 국가보안법을 지난 세기의 유물로 역사의 뒤안길로 흘려보내야 한다.

국가안보는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다른 어떤 체제보다 더 우월하다는 판가름이 날 때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후,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국보법은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로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라는 입장이 발표된 2004년 9월 5일, 이 날이야말로 소리를 크게 지르고 춤을 춰야할 날이 아닌가 싶다.

아직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축배를 들기에 이르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경축! 시일야방성대무(是日也放聲大舞)" 을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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