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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해 말까지로 예정된 이라크 파병 시한을 1년 연장하기 위해 올 정기국회에 파병 연장 동의안을 제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부당성이 거듭 확인되고 있고, 이라크의 유혈사태가 진정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으며, 파병 국가들을 겨냥한 반미 테러조직의 공격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서둘러 '파병 연장' 방침을 세운 것은 도덕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실리의 측면에서도 결코 올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표면적인' 파병 연장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당초 올해 초 출발했어야 할 자이툰 부대가 파병일정이 늦어지면서 8월에 되어서야 출발해 이제 막 현지에 적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말에 철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 일정대로라면 실제 활동기간이 3-4개월에 불과해 이라크 전후복구와 평화재건이라는 파병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둔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파병 연장 목적이 '한미동맹 강화'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파병일정이 늦어진 것은 그만큼 추가로 파병할만한 환경과 명분이 여유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번 전쟁을 치르지도 않은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아르빌에 가서 '전후복구와 평화재건'을 위해 주둔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더구나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의 철저한 보도통제로 인해 자이툰 부대가 현지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자이툰 부대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부대의 활동까지 보도통제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정부의 주장대로 파병의 목적이 전후복구와 평화재건에 있다면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점에서 정부가 자이툰 부대의 활동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려고 하는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이툰 부대의 활동을 국민들의 눈과 귀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이 문제가 쟁점화되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도덕과 정의의 '이중 잣대'

노무현 정부가 침략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파병을 해놓고 이를 또 연장시키려고 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이 과거사 청산의 근거로 스스로 강조해온 '도덕과 정의'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은 친일행위 등 과거사를 청산하고 독재정권의 '정권안보용'으로 악용되어온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역사적 정통성과 민주주의 및 인권의 가치가 존중받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도덕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이 문명의 국가로" 가는 기반을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고, 필요한 과제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도덕과 정의'를 강조하면서도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하고 부당한 전쟁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내치에서는 도덕과 정의가 중요하고, 외치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쉽게 무시해도 좋단 말인가?

정부와 여당은 이와 같은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않으면, 스스로 표방하고 있는 '개혁정치'의 근거도, 국민들의 지지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친일과 독재로 얼룩진 과거사를 청산한다면서 '더러운 전쟁의 부역자'로 계속 남음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청산해야 할 또 하나의 역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봐야 한다.

그릇된 역사를 청산할 수 있는 힘과 지혜는 단순히 과거를 바라보는 눈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현재의 행위'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에 대한 고뇌가 함께 자리하지 못하면 우리 역사는 '청산해야 할 과거'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앞세워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희생해 온 박정희 정권의 유산을 극복하는 것이 역사바로세우기의 중요한 기초라고 말한다. 이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송두리째 짓밟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정책의 부역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군대가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이라크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5-10년 지나면 한미관계가 대등해진다고?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문제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MBC 시사프로그램인 '2580'과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정부와 여당은 마치 참여정부가 미국에 할 말을 하면서 한미관계가 대등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이대로 5-10년 정도 지나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대등한 자주국가의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대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두 차례에 걸쳐 파병한 것도 모자라 파병 연장 방침을 서둘러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강조한 것처럼 주한미군 은 미국의 필요에 따라 재배치 중에 있다. 그런데 그 비용은 한국이 대부분 부담하려 하고 있다. 용산기지는 우리가 요청했기 때문에 부담할 수밖에 없다하고 미국이 요청한 2사단 이전비용은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편법을 통해 부담하려고 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한미관계가 대등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세계전략에 더욱더 종속되는 방향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는 점에 있다.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통해 마치 자주국방이 증진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한미 양국이 추진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한국 방어에 있어서 한국군의 역할 강화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그리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핵심적인 골자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엄청난 인적, 물적 부담이 따르는 북한의 남침 방어에 있어서는 한국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주한미군은 '대 테러 전쟁'과 '대량살상무기 대응', 그리고 '중국 견제용'으로 임무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한미동맹이 변하게 되면 첫째 한반도의 군비경쟁을 격화시키는 동시에 한국군의 기형적인 군구조의 혁신이 더욱 어려워지고, 둘째 미국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더욱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며, 셋째 한국이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의 중간기지'로 변질되면서 한국에 대한 테러위협은 커지며 넷째 양안간의 무력 충돌에 한국이 휩쓸릴 수 있는 위험성이 커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대등한 한미관계'는 고사하고, 천문학적인 돈은 돈대로 쓰면서 오히려 한국의 안보는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한미동맹'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진정으로 도덕과 정의가 살아 숨쉬고 대등한 한미관계를 만들어나가고자 한다면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을 어떻게 하면 통과시킬 것인가'라는 잔머리를 굴리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파병된 병력을 안전하게 철수시킬 수 있을까'라는 '탈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 연장 문제는 정부와 여당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가늠할 중대한 척도이자 자신들의 과오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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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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