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언제나 상징을 필요로 한다. 각 당의 후보를 공식 추대하는 전당대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미국 역사상 깃발과 배지, 그리고 표어 및 화려한 수사학이 동원되지 않은 전당대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 해만큼 '상징'에 크게 기댄 전당대회도 찾기 어려웠다.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과 함께 보스턴항에 내렸을 때, 그가 탄 배는 관광용 페리가 아니라 정찰용 쾌속정을 의미했고, 그가 건너온 강은 찰즈강이 아니라 메콩강을 뜻했으며, 그가 입고 있던 것은 암청색 정장이 아닌 땀에 찌든 흙빛 군복이었다. 그런 그가 무대에 서자마자 거수경례로 군중들의 환호에 화답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이 단 한 번도 공화당 전당대회를 치러본 적이 없는 뉴욕에서 후보수락 연설을 하기로 한 것 역시 순전히 상징적인 결정이었다. 뉴욕이 공화당 전당대회장으로 공식 결정되었을 때, 적지 않은 뉴욕 사람들이 '부시가 보기 싫다'는 이유로 휴가계를 냈고, 또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시를 응징하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표를 샀다. 그러나 공화당측은 모든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뉴욕에서 전당대회를 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물론 부시를 포함한 공화당측은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행사를 하든 뉴욕주민들은 공화당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노린 것은 뉴욕 유권자들의 표가 아니라 그곳에 부여된 '테러의 피해자'라는 이미지였을 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진보적인 도시를 상징의 무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공화당은 상당한 물리력을 사용해야 했다. 행사를 위해 뉴욕시에 배치된 경찰병력이 1만명이 넘었고, 8월30일부터 9월2일까지 나흘간의 전당대회 기간 동안 체포된 사람 수만 해도 2천명에 달했다. 주최측 추산 50만(경찰추산 20만)명의 시위대가 저항하기는 했지만, 대회는 별 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다.
전당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첫 날과 마지막날이다. 초반에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이틀간 그 열기를 서서히 고조시킨 후 마지막 날 후보를 극적으로 등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첫 날 가장 강력한 지지연설자가 등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 공식은 뉴욕 공화당전당대회에서도 그대로 지켜졌다.
전 뉴욕시장 줄리아니 "세계의 수도에 온 것을 환영한다"
9.11 테러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에게 이 '바람잡이' 역할이 주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두 개의 높은 건물이 소실된 '이전 같지 않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줄리아니가 청중들 앞으로 나왔다. 대형 스크린 위로 펼쳐진 뉴욕의 풍경은 다시 성조기의 모습으로, 그리고 또 다시 자유여신상의 모습으로 시시각각 바뀌었다. 그가 웃음 머금은 입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세계의 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거만한 환영사에 공화당 대표단들은 우레같은 갈채를 보내며 환호했다. 줄리아니는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뉴욕은 미국의 첫 번째 수도였습니다. 1789년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바로 이곳에서 취임선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역시 맨해튼의 바로 그 자리에 부시 대통령이 섰습니다.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건물 사이에 말입니다. 그는 우리를 공격한 그 야만스러운 테러리스트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분노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또 다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줄리아니는 예의 그 빈 듯한 웃음으로 관중들을 지켜보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다시 한 문장을 잇기도 전에 다시 갈채 속에 묻혀 버렸다.
"테러리스트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목소리를 들었고, 탈레반은 제거되었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우리 목소리를 들었고, 사담 후세인의 공포정치는 끝이 났습니다. 후세인은 가야 할 곳으로 갔습니다. 감옥으로 말이지요."
'뉴욕에서 이렇게 많은 공화당을 보게 되어 반갑다'고 너스레를 떤 그는 '강력한 국가안보'를 위해서 공화당이 재집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박수소리가 연설을 중단시켰고, 잠시 침묵을 지킨 그는 미국이 '자유의 터전이고 용기의 고향'이며, 부시대통령은 링컨의 전통을 이어 전 세계에 자유를 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중들은 '미국, 미국, 미국'을 연호했고, 줄리아니는 민주당에 대한 공격으로 화제를 돌렸다.
"공화당이 모든 면에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민주당은 틀렸어요. 민주당은 거의 모든 면에서 틀렸어요."
폭소를 터뜨리는 청중들을 향해 줄리아니는 '당을 떠나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부시를 히틀러와 맞선 처칠, 그리고 구 소련과 맞선 레이건에 비유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이끌 지도력을 갖춘 이는 케리가 아니라 부시라고 강조했다.
"존 케리는 그처럼 명쾌하고 정확하며 일관된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건 존 케리에 대한 인신공격이 아닙니다. 나는 그가 미국을 위해 참전한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부시와 케리의 다른 점을 분명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시는 여론이 수시로 변할 때에도 자신의 결정에 일관성을 가지고 임하는 지도자입니다. 반면에 케리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곧잘 입장을 바꿉니다."
갈채와 웃음, 그리고 '뉴욕'과 '미국'을 번갈아 외치던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입을 벌리고 웃던 줄리아니가 야유에 동참한다.
"아, 케리가 방금 여러분의 야유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줄리아니는 케리가 앞으로 선거 전까지 60여일 동안 또 언제 입장을 번복할지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케리의 그런 변덕 때문에 에드워즈가 '두 개의 미국'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빈정거리며 말했다. 뉴욕의 상징성을 담지한 연설자답게 그는 구체적인 공약이나 정책을 배제한 수사학으로 일관했다.
"자유의 힘을 믿으십시오. 자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억압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언제나 이기는 법입니다. 그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것은 2001년 9월 11일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소방대와 경찰, 그리고 구조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으며, 더 많은 인명손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라크 전쟁의 어려움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이 발언은 마지막 날 부시가 전할 메시지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대국민 홍보방식이 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이 벌이는 전쟁은 '자유 확산'이기에, 이라크에서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말을 맺었다.
갑자기 실내가 어두워졌고, 무대 위로 가늘게 비치는 조명 아래로 젊은 금발 여성들이 걸어 나왔다. 모두 테러 사건으로 남편들을 잃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물기 어린 눈으로 증언을 마쳤을 때,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묵념의 시간이 주어졌다.
상원의원 존 매케인 역시 첫 날을 장식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케리가 한때 부통령 파트너로 고려한 것으로 알려진 매케인은 케리를 '물 먹인' 것만으로도 공화당의 영웅이 되기에 충분했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케리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동시에 부시에게는 빛을 던지는, 대단히 효율적인 캠페인 수단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존 매케인 "전쟁에서 싸우든지 위협 속에 살든지 하나를 택하라"
매케인은 공화당 전당대회를 통틀어 가장 공격적인 연설로 주목 받았다. '감사한다'는 한 마디 말로 감사를 표한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분법에 근거한 그의 메시지는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단순명료했다.
"이번 전쟁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정의의 편에 서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이에 맞서는 사악한 세력들, 즉 세상의 모든 영혼을 향한 신의 사랑을 부인함으로써 영광스런 종교를 모독하는 집단간의 싸움입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간의 싸움이자,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그는 전쟁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지만, 그 전쟁이 결코 미국이 원해서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줄리아니의 '수정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이 도리어 전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난 역시 테러위협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전쟁은 끔찍한 것입니다. 조국의 가장 빛나는 애국자들이 희생되어야 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산업이 위태로워지고, 경제가 흔들립니다. 전쟁의 필요성과 국제관계의 충돌로 인해 수년간 쌓아온 외교적 이해관계가 위협받기도 합니다. 이유가 어떻든, 전쟁의 손실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노력했지만, 전쟁을 피하려는 소극적 태도가 오히려 엄청난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매케인의 눈이 객석의 어느 한 쪽을 향하는가 싶더니, 이전보다 더 강경한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갔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선택안은 '전쟁이냐 평화냐'가 아니라, '전쟁이냐 테러의 공포냐'였다는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청중의 누군가를 쏘아보았다.
"우리의 선택은 평온이냐 전쟁이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쟁이냐 아니면 그보다 두려운 위협이냐의 문제였습니다. 만일 이와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묵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다른 정당이라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음흉한 영화감독이라면 더욱 더 안 되고요."
매케인의 눈이 떨어지는 곳에 모자를 눌러 쓴 수염 덥수룩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순간 청중의 눈이 모두 그 남자에게 쏠렸다. 마이클 무어였다. 관객의 입에서 일제히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부…!"
그리고 그 야유는 이내 '4년 더'라는 부시 지지구호로 바뀌었다. 취재차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진보적 영화감독은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거듭 외쳤다. "고맙소, 존 매케인." 매케인은 지지 않고 응수했다.
"제가 썼던 말이 마음에 드는군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요. 음흉한 영화감독이라면 더욱 더 안되는 일입니다. 사담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가 평화가 샘솟는 오아시스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는 자들 말입니다."
부시 "더 안전한 세계와 더 희망적인 미국을 위해"
전당대회 마지막 날, 연사들의 입과 대형모니터를 통해서만 등장하던 공화당 대선후보 부시가 연단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순간 행사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고, 부시는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미소를 지으며 청중들을 둘러보았다. 갈채는 어느 새 '4년 더'라는 구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의장, 각 주의 대표단, 그리고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제게 보내주신 지지를 영광으로 생각하며, 여러분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미국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는 바입니다."
부시 뒤의 대형 스크린 위로는 거대한 성조기가 펄럭였고, 객석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람들이 "유 에스 에이"를 외쳤다. 부시 앞에서 그의 이름 대신 '미국'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의 눈에는 후보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국가의 상징이 서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와는 달리, 공화당 행사장은 무대가 벽쪽 대신 실내 한 가운데 둥글게 놓여 있고, 객석이 그 연단을 겹겹이 둘러싼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반대편에서 환호하는 다른 지지자들을 마주볼 수 있고, 이로 인해 행사장의 열기는 쉽게 달아올랐다. 관객과 최대한 밀착된 이 무대배치는 '서민적인' 부시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다.
서민정책과는 거리가 먼 공화당 후보가 '서민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전당대회 준비의 치밀성에 있어 공화당은 민주당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잘 준비된 것은 비단 무대만이 아니었다.
"제가 4년 전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했을 때,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앞으로 다가올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위대한 뉴욕시의 심장부에서 우리는 비극적인 사태를 목격했습니다. 그 평온했던 아침에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위험 속에서 구조대의 용기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 운명의 비행기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용기와 기백으로 테러리스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부시의 연설은 자신의 행정부를 괴롭히는 경제문제를 9.11 테러의 문제로 간단히 치환하는 영민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런 논리적 연결고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매끈하게 미국의 군사작전을 미화하는 수사학으로 이어졌다.
"우리들은 경제가 재난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군대는 산 속의 요새를 급습하고 모래폭풍 속에서 돌진하면서 수백만을 해방시켰습니다. 이들의 용맹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예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시의 연설은 한 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환호와 갈채에 파묻히곤 했다. 특별히 감동적인 내용이 아닌 경우도 박수소리는 말미마다 반사적으로 터져 나왔다. 부유층이나 서민층을 위한 공약 가운데 어느 것도 갈채를 받지 못하는 내용이 없었다.
부시 연설의 치밀함은 공약사항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대개 부유층을 위한 정책은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반면, 서민을 위한 공약은 두루뭉술하게 엮어낸 '좋은 말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향후 4년간 계속해서 세금감면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한 그는 갈채 속에서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분명하고 긍정적인 계획을 가지고 대통령에 출마했습니다. 더 안전한 세계와 더 희망찬 미국을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약자를 배려하는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람들을 돕는 것에 그쳐야지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후 노인을 위한 처방약 할인과 중소기업 보호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 그는, 보험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순회 유세 때 만났던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고소 당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진료를 포기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부시는 의사들이 고액 소송에 시달리는 것이 값비싼 의료보험 때문이라고 간주하고, 이를 통제할 만한 법률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일일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여기서도 되풀이 되었다. 부유층의 감세정책이나 소송방지를 위한 법률마련에는 '정부개입'으로 일관하고 서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자유방임'으로 돌아서는 모순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박수소리는 줄지 않았다.
"국민보건에 대한 결정은 의사들과 환자들의 손에 맡겨야지, 워싱턴 디 씨의 관리들에게 맡겨서는 곤란합니다."
사람들이 또 다시 환호했다. 그는 케리의 '변덕'을 거론한 후, 자신은 진정한 리더십을 가지고 어려운 결정에 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비록 많은 희생과 고통을 요구하는 고난의 과정이기는 하지만, 전쟁 결정만은 옳은 것이었다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는 비열하고 잔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자유와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하긴 그들이 두려워할 만합니다. 자유가 이미 그곳을 향해 행진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자유의 변동력을 믿습니다. 미국의 힘을 가장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언급하면서, 기존의 차별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시민들이 그 자유의 순간을 만끽할 때, 이들의 모습은 주요 세계의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변화가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우리들의 좋은 친구 이스라엘과 화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부시가 전쟁에 대한 기존의 낙관적인 견해를 일부 수정한 데서도 드러나듯, 그는 자신을 향한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부시는 스스로를 가볍게 조롱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는데, 아마도 이 지점이 그의 연설 가운데 가장 '똑똑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제가 몇 가지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제 영어의 문제점을 지적해주곤 합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그 중의 한 명이 된 걸 보면 제 문제가 심각하긴 심각한 모양입니다."
다시 몇 번의 폭소와 몇 번의 갈채가 있었고, 부시는 말버릇처럼 다시 '이라크에서 싸우는 군인들의 용맹'을 언급하고는 말을 맺었다. 연설 도중 한 여학생이 반부시 구호를 외치다가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가기도 했으나, 공화당 전당대회는 비교적 원만하게 마무리 되었다.
<뉴욕타임즈>는 다음날인 3일자 사설에서 부시가 가진 인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경제, 군사, 복지 등 어떤 분야에서도 뚜렷한 개선책 없이 기존의 입장을 되뇌는 것으로 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문제가 될 뿐이다. 적어도 공화당 전당대회 행사장을 채운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문제'는커녕, 일관되고 확고한 지도자의 자질로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콩깍지 현상'이 전당대회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최근 여론조사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