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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許昌)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객점이라면 단연 천품관(天稟館)이다. 음식이란 것이 하늘이 내려 준 녹(錄)이라고 생각하던 조씨가 개업한 이후로 삼대째 허창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인정받는 주루였다. 관에서도 주요 손님들이 오면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천품관은 비상이었다. 이십여명의 숙수(熟手)들은 주문만 기다리고 있었고 점원들의 움직임도 조용하고 빨랐다.
허창은 허주(許州)라고도 하며 하남성(河南省) 내에서도 작은 도시가 아니다. 진시황 때부터 발달된 도시로 후한(後漢) 말기에는 일시 국도가 되기도 한 고도(古都)다. 하지만 대명 최고의 무장(武將)으로 인정된 서달대장군가의 여식(女息)같은 귀빈을 모시게 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관내 이름난 포두들이 모두 출동해 천품관 전체를 경비하고 있고 허창위(許昌偉) 소속 천호(千戶)의 장(長) 세명 중 두명이나 투입된 상황이라면 아무리 이름난 음식점이라 해도 다른 손님을 받을 만큼 배짱이 있을 수 없었다. 자리에 앉자 있는 손님은 채 열명이 안 되었다. 천호장 두명과 노련한 포두장 세명 그리고 문제의 여자 때문이었다.
서가화는 음식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는 저렇게 아름다운 미녀가 그토록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던 숙수와 점원들은 지금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혹시 맛없는 것은 아닌가? 간이 맞지 않은 것인지? 무슨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 아침을 걸렀다고 들었는데 점심을 먹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젓가락으로 음식을 헤집어 놓을 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없었다.
불안한 것은 그녀의 탁자를 포위하듯 둘러 앉은 천호장과 포두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강남삼미 중 하나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황홀한 최고의 미녀다. 이렇게 가깝게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중에 두고두고 말거리를 삼을 수 있는 사건이다.
지금 간간히 한숨 터트리고 찡그려도 아름다운 여자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의 조용한 탄식에도 자신이 그런 것인양 불안한 것이다.
(송언니는 무사하겠지?)
그녀의 걱정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미끼였으나 미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추적자들은 그녀 앞에 이틀 동안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아마 자신에게는 감시자만 붙여두고 송하령을 잡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불안했다. 그녀 곁에 풍운삼절을 물리친 그가 있더라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병(私兵)을 가지고 있는 것을 국법(國法)으로 금하고는 있지만 세도가의 경우 호위를 위하여 무사를 두는 것은 관례였다. 특히 그녀의 가문에는 호위를 위해 보이지 않는 개인 위사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뛰어난 무공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이 이번 일을 위하여 삼십여명이나 비밀리에 투입되었다.
표면으로는 표사를 사용했지만 그녀 주위에는 그들이 있어 추적자들을 따돌리거나 무력으로 막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차례에 걸쳐 공격을 받았다.
그녀를 쫒는 자들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문파이거나 세력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가문 위사들 중에 남은 사람이 있다면 송하령을 보호하지 않고 지금도 암중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을 것이었다. 정주까지는 송하령과 그 사내의 힘으로만 가야하는 것이다.
탁!
그녀는 무심코 젓가락을 탁자 위에 놓았다.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차는 준비가 되었나요?”
그녀는 가까이 있는 사십대로 보이는 포두장에게 물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완료하였소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주루 안으로 무복차림의 사내가 들어섰다. 그를 본 천호장과 포두장들 세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전영반(全領班)을 뵈오.”
그들의 인사는 깍듯했다. 전영반이라 불리운 사내는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답례했다.
“수고들이 많소이다.”
삽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 그는 곧바로 서가화에게로 걸어왔다.
“전연부(全然扶). 서소저를 뵙게 되서 영광이오.”
그의 태도나 말투는 공손했다. 서가화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할 수 밖에 없었다. 전연부라는 이 사내에 대해 그녀도 들은 바 있었다.
그는 이십일세에 무과에 합격한 후 금의위에 입문하여 삼십이세에 금의위 영반에 오른 인물이다. 범인 색출 및 조사에 타의추종을 불허하고, 수공(手功)을 위주로 한 무공도 뛰어나 천비수(天匕手)라는 외호를 가지고 있는 사내다. 일의 처리에 빈틈이 없고 공명정대하여 무관이나 포두들에게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서가화는 자리에 앉으며 과장스럽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금의위의 영반께서 무슨 일로 소녀를 찾아오셨는지?”
천비수 전연부는 그녀의 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의 천호장과 포두관들에게 나직히 말을 건넸다.
“잠시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소?”
누구의 말이라고 거절하겠는가? 직접 본 사람도 있었지만 귀가 따갑게 들었던 인물이다. 그들의 표정에는 상관의 엄명이 있어 곤란하다는 기색이 떠올랐지만 전연부의 가벼운 미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잠시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와 함께 옆에서 대기하며 서있는 점원들까지 눈빛으로 물리며 문밖으로 나섰다. 그들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전연부가 서가화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입을 떼었다.
“본인은 금의위소속에서 천관(天觀)으로 자리 옮긴 지 일년 정도 되었소이다.”
단도직입적이다.
“.....?”
뜻밖의 말에 서가화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천관이라면 현 황상 직속의 비밀기관이 아닌가? 환관들이 조직하여 황상의 눈과 귀가 된다는 감찰조직. 특히 우리가문과 같은 강남관료 집안의 흠집을 잡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는 곳인데. 왜?)
환관들이 조직한 비밀기관. 후에 동창(東廠)이라는 황궁의 정식기관이 되기 전에 일반인들은 모르고 있지만 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명칭이 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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