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근래 서구 유럽에서는 불교를 비롯한 동양 종교에 대한 연구가 부쩍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책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서구 종교학자가 쓴 붓다의 전기라고 해서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유구한 서구사상과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이 만나 매우 유익하고 창조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암스트롱은 이 무거운 과제를 수행할 만한 충분한 자질과 감각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종교학자다.
그는 젊은 시절에 7년 간 가톨릭 교회 수녀로 생활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한계를 깨닫고 환속한 뒤에는 풍부한 학식과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기독교, 이슬람, 유대주의를 넘나드는 뛰어난 저작을 연달아 내면서 대중에 깊숙이 다가서고 있다.
그는 기독교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종교든 치우침 없는 다리 놓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니 과연 그러하다. 저자 스스로 진리를 향한 열정을 불덩이처럼 간직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다지 냉소나 과장 없이 아주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붓다의 생애를 더듬고 있다.
역사적 예수 복원이 그렇듯 역사적 붓다 또한 방대한 경전의 전승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설과 신화에 가려 있으므로 복원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심지어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팔리어 필사본마저도 불과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불교도들 스스로 역사적 붓다를 별로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붓다를 깨달음을 위한 하나의 원형으로 보기 때문에, 육체를 입은 붓다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불교는 붓다의 색신(色身- 역사적 실존 인물)보다는 법신(法身- 진리의 구현체로서의 붓다)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던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를 통하여 불완전한 세계에서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처한 조건과 인간의 갈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완전한 자기포기를 실행한 붓다에게서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진정한 인간이 되는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고타마의 구도와 깨달음은 그가 축의 시대(대략 기원전 800년부터 200년 사이)를 살았던 인물이었다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축의 시대에 이르자 사람들은 커다란 불안과 혼란, 신을 기리는 희생제의의 한계, 잔인한 세계 가운데서 느끼는 완전한 무력감을 폭넓게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것이 그 시대를 살던 위대한 현자들로 하여금 가장 높은 목표와 절대적 실재를 구하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현자 중 하나였던 고타마는 자신이 목도한 인간 고통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직접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 고타마는 요가로 무의 경지에 이른 알라라 칼라마를 스승으로 삼고 기존의 여러 방법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상당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고양된 자아'를 찾는 것이 오히려 자기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근본적 결함을 발견한다.
그 뒤부터 스승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개척해 나갔다. 6년 간 구도 끝에 마침내 그는 "아주 먼 시대에 인간들이 다니던 길, 아주 오래된 길, 고대의 길"인 완전한 깨달음의 길을 자기 내부에서 발견했다.
닙바나(니르바나, 열반-고통으로부터 해방과 깨달음을 가져오는 자아 소멸)에 이른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완전한 내적 고요, 마음의 평정, 감정 없는 차분함을 항상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붓다는 이후, 자신의 깨달음을 사성제, 팔정도로 정리하여 가까운 사람들을 시작으로 전도하기 시작하였고 모여든 이들로 상가(승가, 불교 교단)도 만들었다. 그리고는 평생토록 자신의 제자들이 아라한트(최고의 깨달음을 이룩한 자, 닙바나를 얻은 자)에 이르도록 도왔다.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거짓의 토대들을 모두 부정하고 치열하게 수행한 붓다의 생애는 주어진 현실에 그대로 순응하여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일깨운다. 괴로움의 사슬을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이라고, 해방의 길은 있다고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여행에 동행한 빅쿠(비구니, 탁발 수도자)의 무리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개별적인 것들은 지나갑니다. 부지런히 자신의 해방을 구하십시오."
그런데 붓다가 말한 닙바나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붓다 자신이 닙바나를 정의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닙바나는 직접 체험해야 하는 것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다. 다만 이 닙바나는 존재의 핵심에서 발견되며 자아를 넘어선 어떠한 이기심도 없는 행복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아집에 사로잡혀 시야가 제한되어 있는 우리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붓다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며 시중들었던 제자 아난다마저도 머리로는 불교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지만 붓다 생전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불교 전통에서는 붓다와 같이 닙바나를 완전히 깨달은 인간이 25명 있었다고 전한다. 그들은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 파리닙바나(반열반, 깨달은 사람이 죽으면서 성취하는 최후의 안식)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구한 인류 역사 속에서 깨달은 자가 이토록 적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또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붓다가, 여성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망설이며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붓다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저자도 여성학자라서 그런지 이 부분은 얼렁뚱땅 넘길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붓다는 깨달음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욕정과 여자를 떼어서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붓다는 구도를 위해 집을 나설 때, 일부 구도자들과는 달리 부인을 데려간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부인이 해방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237쪽)
하지만 붓다가 여성 수도자를 남성에 비해 차별함이 분명한 팔경법을 통해서일지라도 여성들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당시로선 가히 혁명적인 조치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리하여 그의 집안 모든 여자들도 평신도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붓다는 옛 부인에 대해서는 만큼은 거리를 두었다는데 그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이외에도 삭카인들이 붓다에게 경의를 표하려 하지 않았을 때 그들에게 놀라운 잇디(神力-공중부양, 불과 물을 뿜어냄, 하늘에 난 보석이 깔린 길을 걸음)를 보여준 것, 깨달음을 얻은 후 제자들에게 자신을 친구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 것, 생전의 교단 분열과 말년의 쓸쓸함 등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
하긴 전설적인 요소들이 워낙 많이 뒤엉켜 전해지다 보니 그럴 것이다. 중국의 선승 임제 의현은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라'고 명령했다던가? 그렇다면 옥석을 구분하여 세심하게 붓다의 진면목을 복원시키고 있는 저자의 목소리에 한번 귀기울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