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는 KBS <미디어포커스>의 '적기가 방송'을 놓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첫 질의를 맡은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적기가 방송은 이라크 추가파병을 능멸하고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는 발언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KBS 아나운서 출신의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은 "친정이 잘되길 바라는 입장에서 듣기 어려운 말씀을 드린다"며 "(방송 효과음을 담당한) 프리랜서는 음악 귀신인데 적기가를 모를 리 없다"며 의도성 여부를 추궁했다.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도 "프리랜서가 음악에 서툴다면 프리랜서에 대한 모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오후 회의에서 "자세히 들으면 가사를 들을 수 있는데 적기가인 것을 알면서 튼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적기가 방송은 물론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대한 압력 논란, 대법원의 국보법 판결을 다룬 <시사투나잇> 방송, 탄핵방송 등의 사례를 들어 정연주 KBS 사장의 '용퇴'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 사장은 "제작 이후에도 그 음악이 적기가인 것을 몰랐고,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사과문을 게재했다"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인사위원회를 열어 제작진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한 방송 내용에 대해서도 "배경음악은 전체 음향의 4분의 1이고 군화가 행진하는 발자국 소리, 성우 나레이션이 이를 덮었다"며 "멜로디는 '오,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곡과 같고 1920년대 일본에서 노동운동가로 불리다 북한에서 적기가로 바뀐 것 같은데, 판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광고공사 압력 논란 "이사회에서 코미디 할 수 있냐"
이날 문광위 회의에서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대한 압력 시도 여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KBS 이사들이 회의에서 광고시장 악화를 염려하며 "(한국방송공사에 대해) 압력을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나, 카메라를 동원해서 압력수단으로 쓰자"고 말한 것이 논란의 발단. 이재웅 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발언은 조직폭력배나 쓰는 말 아니냐"며 "여기에 사장이 감사하다고 한 것은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글로 보니까 분위기가 그렇게 전달되는데, 협박이 아닌 로비를 하자는 얘기였고 당시 오간 이야기는 웃으면서 농담조로 하신 것"이라며 "당시의 감사 발언은 광고액이 1500억 미달한 상태에서 이사들의 충정을 고마워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그러니까 코미디다, 중요한 이사회에서 코미디를 할 수 있나? 그게 농담이 되냐"며 애초 문제제기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KBS 조직개편에 문제제기 "'동무' 문화같아 섬뜩"
한나라당 의원들은 또한 KBS 예산의 국회 심의, 사장 인선시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를 주장하며 "이후 이같이 방송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BS 인사에 대해서도 "사장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승진시키는 코드인사"라고 주장했다.
이계진 의원은 "KBS 사장은 대통령과 국회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하는데, 인사에서 청와대 사람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또한 "저는 30년 아나운서로 일했고 사장님은 방송사 생활 2년차"라며 "제가 사장님 다니시던 회사(<한겨레>) 사장이 됐다면 자연스럽겠냐? 제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사를 단행해 정권이 좋아하는 신문 만들면 이 신문 괜찮겠느냐?"며 정연주 사장의 경력과 인사를 문제 삼았다.
또한 "팀제 이후 아랫사람이 올라가서 완장을 차고, 방송에서 잔뼈 굵은 사람도 있는데 늙수구레한 선배에 호칭이 없어져 새파란 후배들이 선배를 (직함 대신) '님'이라고 부른다"며 "완장찬 사회에서 동무라고 부르는 문화 같아 섬뜩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 역시 "전임 사장은 5년 동안 5명을 승진시켰는데, 정연주 사장은 지난 2년 동안 20명을 승격했다"며 "코드 맞는 사람 전진 배치한 거 아니냐"고 추궁했다.
정 사장은 이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인물을 발탁했다"며 "일정 기간 안되면 승진이 안되게 하는 여러 장치들은 회사의 변화에 방해된다고 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론을 펼쳤다.
또한 "KBS 내에 인사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주로 중간 관리층 이상 시니어 그룹의 주장이고, 일정부분 경청할 부분도 있고 일방적인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며 "(인사를 통해) 되도록 많은 권한을 밑으로 내려주고 제왕적 권력 행사하지 않으려도 노력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KBS 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조직은 항아리형으로 중간 관리자가 너무 많아서 전문가가 나올 수가 없다"며 "나이많은 선배들이 일선 후배와 같이 앉는 게 부담이라고 했는데, 저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BS 부역 과거 검증해야"... "욕먹어도 싸지만 뼈아픈 노력 중"
한편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근 과거사 청산 추진과 관련해 "KBS에도 80년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에 부역해왔던 일부 방송인들이 아직도 남아있고 인적 구성에서 낙하산 출신 특채가 있다"며 "당장 청산하자고 하긴 어려워도 80년대 방송 민주화 흐름 속에서 검증작업이 있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 사장은 "그동안 국민의 지탄 받아온 과거 행적도 있었고, 경영이나 회사운영에 방만한 조직인 것도 사실"이라며 "욕먹어도 싸지만 변화하려고 전 구성원이 뼈아픈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또한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면서 KBS의 많은 분들이 정신적으로 피곤한데, 적자를 줄이기 위해 2년 연속 긴축운영하고 있어서 (임금 인상이나 복리후생 증진 등으로) 위로해드릴 수가 없다"며 "개인적으로 사장으로 있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