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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병력을 파견했거나 파견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국가들이 잇따라 철군 내지 감군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주둔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이와 맞물려 부시 대통령이 주요 동맹국들을 열거하면서 한국을 빼놓은 것은 '화끈하게' 파병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보수진영의 정치공세도 높아지고 있다.
주요 파병 국가들 가운데 스페인은 대형 테러 직후 철군을 완료했고, 필리핀 역시 자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철군을 단행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역시 철수 계획을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로 폴란드는 2500명, 우크라이나는 1600명을 이라크에 파병해 놓은 상태이다.
이들 국가들은 미국이 공언했던 것처럼 이라크 상황이 안정화되지 않고 자국에 대한 테러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존중해 위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는 '나홀로' 추가파병을 강행하면서 이라크 저항세력 및 반미 테러집단의 주요 공격 대상으로 떠오른 한국이, 또 다시 파병 연장 방침을 세운 것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한국만큼 화끈하게(!) 파병해 준 나라도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날 연설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을 열거하면서 '한국'을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침략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병력을 파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참고로 부시는 "동맹국이라면 영국, 폴란드, 일본, 네덜란드, 덴마크, 엘살바도르, 호주 등"이라고 언급했다.
이것이 단순한 해프닝인지, 아니면 부시가 한국을 주요 동맹국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엉뚱하게도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을 홀대해서 그렇게 됐다며 이를 정치 공세의 빌미로 삼고 있다. 논조의 차이는 있지만 한마디로 화끈하게 파병해주지 않아 부시가 한국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왜 나는 예뻐해 주지 않는 거야"식의 반응도 한숨을 짓게 하지만 무슨 건수만 생기면 이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보수파들의 악습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수많은 우방·동맹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화끈하게(!)' 파병해준 나라는 없다. 보수파들은 부시가 거명한 동맹국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초기부터 파병한 나라들이고, 한국은 뒤늦게 마지못해 파병한 나라이기 때문에 부시의 눈 밖에 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이미 지지 및 지원 의사를 밝혔고, 2003년 4월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희·제마부대를 이라크로 파병했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추가파병을 요청 받고는 "국민 여론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2003년 10월 18일 주말을 기해 느닷없이 추가파병을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이라크의 유혈사태가 악화되고 미국이 내세운 침공 명분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많은 국가들이 파병 방침을 철회하거나 파병한 병력을 철수할 때 '나홀로 추가파병'을 단행했다. 그것도 침략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말이다. 부시에게 '할 만큼 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할 정도'로 해준 것이다.
부시는 '고마운' 동맹국으로 폴란드도 언급했다. 그런데 폴란드는 부시의 연설이 있기 전부터 올해 말 내년 초에 걸쳐 자국 군대를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보수파들의 기준에 따르면, 폴란드는 부시에게 있어서 고마운 동맹국이 아니라 배신한 동맹국으로 언급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부시는 왜 한국을 빼놓았을까? 고마움을 모르는 배은망덕한 지도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머리가 안 좋아서 그런 것인가? 이 해프닝이 발생한 직후 미국 정부는 공화당에서 연설문을 작성했기 때문에 단순 실수가 있었다며 해명했다. 그러나 이 역시 납득하기 힘들다. 재선 가도의 최대 이벤트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의 부시의 연설문을 행정부 참모진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시에게 넘겨졌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파병 연장' 쐐기 박기
부시가 한국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을 다루기 쉽고 알아서 잘 하는 나라쯤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과잉충성이 오히려 홀대를 불러온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현실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효과'에 있다. 맹목적·감상적 친미주의에서 허덕이고 있는 냉전수구세력과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가 있는 한국을 효과적으로 길들이는데, 한국을 홀대하는 듯한 미국 정부의 발언만큼이나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2년 말 "미군은 환영받지 않는 국가에는 주둔하지 않겠다"라는 럼스펠드의 발언이 가져온 결과를 보자. 이 발언이 나온 직후 보수파들은 촛불시위와 김대중-노무현의 반미 노선 때문에 주한미군이 철수하려 한다며 총반격에 나섰고, 이는 촛불의 힘이 약해지는 것과 함께 노무현 정부로 하여금 감상적 친미주의로 돌아서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이와 같은 한국의 현실을 잘 알고 있고, 또 잘 활용해왔다. 미국에서 한 마디 해주면, 한국의 보수파가 이를 침소봉대 해주고 한국 정부가 알아서 기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가 주요 동맹국을 언급하면서 한국을 빼놓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을 담고 있다. 물론 부시 행정부가 '의도'를 갖고 있었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가 한국을 빼놓으면서 국내의 보수파들은 엉뚱하게도 노무현 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이는 다가올 파병 연장과 관련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한국이 파병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결단 날 것이라는 보수파들의 공세를 미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둘러 파병 연장 방침을 결정한 노무현 정부의 입장과 맞물려 파병 연장을 저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의도했든 아니든 부시가 한국을 언급해주지 않은 것이 오히려 한국을 길들일 수 있는 호재가 되고 있는 기막히고도 씁쓸한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큼이나 한미동맹의 '황당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도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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