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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환 선수가 세계 득점 랭킹 10위
ⓒ IFFHS 홈페이지
"베트남과 월드컵 예선전이 오늘인가? 더운 나란데, 구식 잔디구장에서 고생 좀 많겠군."

나는 혼잣말을 하며 PC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안정환 배짱과 이천수 배짱을 나는 믿는다니까. 안정환은 한일 월드컵 때도 대 미국전이나 이탈리아 전에서 5분도 안 남겨놓고 골을 넣었거든."

나는 계단을 내려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다른 빌라 현관 앞에서 채소를 파는 동네 아줌마들이 보였다.

"이천수는 또 어떤가. 빼앗긴 볼을 다시 빼앗는 악바리지, 파라과이한테 3:0으로 지는 마당에 두 골이나 때려 넣는 배짱 보라구."

나는 남이 쳐다보건 말건 모노드라마 하는 사람처럼 혼잣말을 했다. 나는 기사를 쓸 때 이런 특이한 버릇이 있다. 밤이건 낮이건 글을 쓰다 말고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혼잣말이 길을 걸어가면서까지 버릇 된 것이다.

독신주의자가 아닌데도 결혼도 하지 않고, 작은 빌라에서 혼자 살아온 지 어느덧 9년째, 벌써 마흔하고도 셋을 붙여놓은 나이가 되고 말았다. 컵라면을 깜박 잊고 사다 놓지 못해서, 밤새 새우깡과 대접 커피를 먹으며 기사를 쓰다 보니 속이 좀 쓰리다. 새우깡에다 우유를 함께 곁들면 좋았으련만 대접커피는 위를 좀 혹사시켰다. 골목길을 빠져나간 나는, 다가구주택 마을 고개 마루의 횡단보도를 건너 언덕을 내려갔다.

아침식사 시간도 아니요, 점심식사 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각. 마침 친절한 40대 아줌마 혼자 운영하는 아구찜 집의 문이 열려 있었다.

"아구뚝배기매운탕 하나 주세요."

나는 음식점에 들어갈 때, 그 집 주인의 인상을 보고 들어갈 때가 많다. 인상이 좋은 사람이 하는 음식점은 밥맛도 더 좋다. 이, 아구찜집 역시, 늘 그렇다.

아줌마는 상을 정갈하게 차려준 뒤 "맛있게 드세요"라며 겸손한 미소를 지어준다. 그 미소가 밥맛을 좋게 만든다. 더군다나 오늘은 "김치 새로 한 거라 맛있어요. 좋아하심 더 달라고 하세요"라고 덧붙여 이야기하니 얼마나 기분 좋은가. 다른 손님이 먹다 남은 낡은 김치를 떳떳한 척 내주는 세상에….

아침 겸 점심 식사로 아구 살점을 특유의 소스에 맛있게 찍어 먹다가, 마침 스포츠 일간지가 방바닥에 있기에 읽었다. 기분 좋은 단신이 실려 있었다.

안정환 선수가 세계 10대 득점왕에 올랐다는 것이다.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에서 7골을 넣은 27위까지 선정하여 '올해의 세계 골게터'를 발표했는데, 안정환이 9골을 넣어 10위를 차지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그 사이트(http://www.iffhs.de)에 접속을 했다. 거기에는 안정환의 이름이 영국어, 불란서어, 독일어, 서반아어로 분명히 자랑스럽게 올라 있었다.

안정환의 9골은 대표팀의 A매치 5골과 소속팀 요코하마 마리노스가 출전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4골을 더한 것이었다. 안정환은 지난 2월 오만과의 친선경기에서 2골을 뽑아 올해 첫 A매치 득점을 한 이래, 6월 베트남과의 월드컵 예선, 7월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 쿠웨이트전 등에서 모두 5골을 뽑았다.

최근 프랑스축구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아트사커' 지네딘 지단(레알 마드리드)은 7골로 공동 26위에 그쳐 안정환 보다 순위에서 크게 밀렸다. 그 소식을 접하고 나자, 약체 베트남에게 한 골을 내주고 지던 악몽과는 달리, 오늘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 뛸 수 있겠거니 생각됐다.

하루가 금방 간다. 아침겸 점심을 먹고 조금 일하니까, 벌써 저녁 먹을 때가 되었다. 축구도 볼 겸 2500원 하는 뼈해장국을 먹으러 가는데, 어떤 글씨가 나를 멈추게 했다. 천원하는 김밥집 유리에 붙어 있는 특별한 메뉴 이름이었다. '콩나물돌솥밥'. 밥값도 3500원이라 씌어 있으니 싼 편이었다. 이 집도 아줌마 혼자 운영하는데, 다행히 인상이 좋았다.

"콩나물돌솥밥 주세요."
"마침 잘 되었네요. 밥이 질어져서 김밥 싸기가 안 좋은데, 돌솥밥에는 괜찮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분가하기 전에는 우리 어머니가 콩나물밥이다, 김치밥이다, 무밥이다 잘 해주셨는데요."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깨와 참기름이 들어가고 잔 파가 잘 썰어 들어간 양념간장을 넣고 썩썩 비벼 먹는 그 맛을….

"잘은 못 만들지만 많이 해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아줌마 말투가 태백산맥 사투리다.

"강원도 아주머니 맞죠?"
"예, 영월이에요."
"반갑습니다. 저는 선친 고향이 충청북도 제천입니다."
"제천이면 영월 바로 옆이에요."
"예. 같은 태백산맥 사투리를 쓰죠. 제 고향은 춘천입니다. 역시 태백산맥 사투릴 씁니다."

아줌마는 모처럼 태백 사람을 만나선지 몹시 반가워했다. TV 채널을 돌리니, 골이 아직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동국 선수가 주공격수로 가세한 모양이다.

베트남 호치민 통녁스타디움 관람석에서는 붉은 악마도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지만, 베트남 응원단은 무려 3만 명쯤 되는 모양이었다.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7조 조별리그 4차전. 베트남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4위로 대한민국(23위)보다 한참 아래인데다 국가대표팀간 역대 전적에서도 2승 6무 14패로 한참 열세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아시안컵 2차 예선에서 한 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을 꺾어버린 팀. 철조망 수비에 이은 역습이 더러 용맹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그러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2대를 이은 고속탱크 차두리 선수가 주심의 다소 앞서가는 판정 때문에 퇴장당한 것이다.

"음…. 우리가 한일 월드컵에서 포르투갈과 붙을 때랑 반대 모양이군."

휴식시간 동안 나는 밥을 다 먹고 신문도 보았지만 일어나지 낳고 후반전까지 시청하고 가기로 했다. "내가 일어나면 지고, 계속 보면 이긴다"는 신념(信念) 때문이었다. (경제가 어려워서 하루에 3~4만 원밖에 매상을 못 올린다는 영월 아줌마는, 내가 콩나물돌솥밥을 양념간장과 양념고추장에 잘 비벼 먹는 동안 싱싱하고 맛있는 새 김치를 더 가져다주었다.)

커피 한잔 타 마시고 있을 때 후반전은 시작됐는데, "억!" 하고 나는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다. 미드필더 한 명 빠진 것이 곧 우려했던 결과를 보여줬다. '이상한 약체'에게 한 골을 먹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골을 먹었어요?"
"예."

기운 없는 대답…. 그러나 나는 곧 느긋하였다. "내가 일어나면 모를까, 자리를 지켜가며 응원하고 있는데 질 리가 있느냐?" 하는, 나의 염력(念力)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한인 특유의 배짱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난달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때, 8강에 오르던 순간의 축구만 해도 그랬다. 그때 미안하게도 노래방에서 배호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노래방 주인아줌마가 문을 열더니 "축구 지고 있어요, 3:0으로!" 하고 말했다. 그때 나는 느긋하게 말했다.

"하하, 걱정 말아요. 우리가 다 넣을 테니까."

나는 마치 예언자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는, 조금 있다 나가서 카운터 앞에 앉아 응원을 했는데, 역시 결과는 내 '마음'대로 되었다. 3:3으로 무승부를 이룸으로써 56년만에 올림픽 8강 진출의 쾌거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노리면서 파라과이한테 질 때도 '질 것 같다'는 느낌 그대로 맞아떨어졌었다. 야식을 먹으며 축구를 보러 어느 식당으로 가려는데, 그때 마침 휴대폰의 피아노 멜로디가 울려나왔다. 이동통신을 건 사람은 잘 아는 인테리어 회사 사장인데, 포장마차에 있으니 작가선생 얼굴 좀 보자는 거였다. 축구는 여기 와서 보면 되지 않으냐는 거였다.

그래서 언덕길을 내려가 두 정류장쯤 잰걸음으로 걸어가 봤더니, 술 파는 실내포장마차가 아니라 생선묵 꼬치나 떡볶이를 파는 진짜 포장마차가 아닌가. 현장소장이랑 함께 있었는데 소주를 많이 마신 상태였다.

"축구를 어디서 봐요?"

그러자 현장 소장이 "생맥주집 가서 입가심하면서 봅시다"하고 말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겼는데, 가까운 생맥주집의 불은 꺼져 있었다.

"다른 데로 찾아 갑시다"했더니 그 눈불뚝이 현장 소장이 "축구는 관두고 노래방이나 가자"는 것이었다. "축구 다 끝났어요" 하고 큰 눈을 더 크게 뜨는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별 이상한 양반 다 보겠네. 댁 때문에 축구 질 거요" 하고 화를 내고서 나는, 24시간 분식집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3:0으로 보기 좋게 지고 있었다. 열심히 응원을 했지만 그 현장 소장의 마(魔)가 씌워져 있어서인지 염력 같은 건 사라져 버렸고, 배짱 이천수가 멋지게 두 골을 쏘아 넣었지만 3점을 다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느긋했다. 두 마음씨 좋은 아줌마들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일까, 염력이 생성되어 온몸을 힘차게 흐르며 돌고 있지 않은가.

"우선 한 골을 넣어야 또 한 골을 넣지."

그렇게 말하는 바로 그 순간, 이천수의 크로스를 받아 이동국이 헤딩슛을 날렸다. 나는 "골인! 골인!" 하고 소리치며 꽤 오래 손뼉을 쳤다.

그리고 역전골은 프리킥에서 생겨났다. 잘생긴 배짱 안정환과 노랑머리 배짱 이천수가 좌우에서 볼을 찰 준비를 하고 있으니, 누가 찰까 몰라 베트남 골키퍼는 오락가락 할 판이었다. 안정환이 달려서 볼을 지나가고 나서까지 자신이 뒤로 차서 이천수에게 패스할지도 모르는 시늉을 하니 졸지에 베트남 수비진이 흐트러졌다. 프리킥에 강한 이천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섭게 휘어지는 강력한 슈팅을 날린 것이다. 골 그물이 출렁거렸다.

문득, 한일 월드컵 때 대 미국전에서 겨우 몇 분 남겨놓고 안정환이 골을 넣고는 김동성(안정환)과 안톤 오노(이천수)의 흉내를 내며 쇼트트랙 세리머니를 하던 장면이 흐뭇하게 떠올랐다.

결국 2:1,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다.

"오늘밤엔 순대로 야식을 할까? 아주머니, 순대 천원어치만 싸주세요."

계산을 치르고는 순대를 들고 나오면서, 못 말릴 버릇대로 나는 혼잣말을 했다.

"본프레레 선장은 왜 얼마 안 남은 시간에 안정환 뺐누? 그러니까 득점 찬스가 더 안 나잖아. 그냥 놔뒀으면 안정환이 한 골 더 넣었을 거라."

어느덧 하늘과 거리는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목의 공원 벤치로 가 앉으면서 나를 꾸짖는 혼잣말을 했다.

"승부는 결정난 것이다. 1:0이든 10:0이든 이기면 그만이지 않은가. 안정환이 계속 뛰었으면 졌을지도 모른다."

그네를 타던 여고생 둘이, 연극배우라도 보듯이 나를 웃으면서 쳐다봤다.

"아니다. 안정환이 필시 한 골 넣었을 거라. 우리의 승리를 기원하는 나의 염력이 온몸에 충만해 있었으니까."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이만하면 나의 배짱도, 안정환과 이천수의 배짱을 보는 동안 수십 근은 늘어나 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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