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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9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당 3역을 비롯해 20여명의 운영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배수진'을 쳤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응원부대가 많이 왔습니다."


김덕룡, 이한구, 김형오 의원 등 당 3역을 비롯해 이경재, 김기춘, 최병국, 이규택, 원희룡, 유승민, 박형준 의원 등 20여 명의 한나라당 운영위원들은 9일 오전 운영위원회의를 마친 직후, 박근혜 대표의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긴급 기자회견장으로 자리를 옮겨 박 대표 뒤에 섰다. 한 운영위원은 박 대표가 마이크 앞에 서자 '응원부대'라는 말로 격려를 대신했다.

박근혜 대표가 "대표직을 걸고" 국보법 폐지 반대에 나섰다. 정치인이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는 점에서 지난 7월 전당대회 직후 "국가 정체성 전면전" 발언을 했던 것보다 강도 높은 제스처다.

또한 지난 두 달여 간의 과거사 공방이 사실상 박 대표의 '개인플레이'에 의존해왔던 반면, 이번 국보법 전면전은 당력으로 밀어부칠 태세다. 박 대표는 기자회견 직전 운영위원회의를 통해 자신의 회견문을 회람, '공증' 과정을 거치는 등 매우 치밀한 태도를 보였다.

이같은 박 대표의 '스탠스'에 관한 해석은 분분하다. 우선 '당내용'이라는 관점. 지난 전남 구례 연찬회에서 비주류와의 충돌로 박 대표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유신 과오에 대해 깨끗이 털고 가야 한다는 비주류측의 맹공에 박 대표는 "탈당" 등의 매우 거친 표현들을 써가며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비주류의 대표 흔들기에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쨋든 '약점'이 노출되었다. 그런 점에서 연찬회 이후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결속력 다지기' 카드로 국보법 폐지반대는 매우 선명한 '전선'을 제공한다.

또한 대여관계에 있어 강한 야성(野性)을 드러낼 수 있는 쟁점이라는 시각도 있다. 17대 국회가 열리고 한나라당의 지도부는 "반대" "우려"를 표명하는 것 외에는 독자적인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원내대표단이 사활을 걸었던 예결특위 상임위화도 지지부진한 상태.

또한 수도이전에 관한 당론 결정 지연으로 지도부는 적잖은 비토를 받았고, 급기야 김문수 의원의 주도로 72명의 의원들의 반대 서명에 동참, 수도이전의 주도권이 비주류에게 넘어갈 판이었다.

언론개혁, 친일진상규명법 등의 개혁과제에 있어서도 여당에게 선취권을 빼앗긴 채 뚜렷한 입장과 대안이 아직 없다. 국가정체성 공방 외에 한나라당의 야성은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국보법 폐지반대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온 정체성 공방을 현실화하고 야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쟁점이다.

또한 국보법 폐지반대 여론이 80%에 이른다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힘과 명분을 동시에 얻겠다는 계산이다. 박 대표는 이날 국보법 폐지반대를 선언하며 "국민 여러분의 지지를 부탁드립니다"라고 호소했다.

"박정희 정권유지를 위한 '사법살인'에 겨우 유감이라니..."

하지만 동조세력을 확실히 규합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카드로 국보법 폐지반대 '올인' 전략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일하는 국회의 첫 시험대인 정기국회 기간이라는 점이다. 민생현안과 개혁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념투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국보법 투쟁은 여론의 역풍을 맞기 쉽다.

또한 국보법을 어떻게든 손질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여야간 손질 수위의 차이인데, 그런 차이를 극한 대치상황으로 몰고 간다는 책임에서 한나라당은 자유롭지 못하다. 국보법 폐지의 당론을 정한 열린우리당도 대체입법을 통해 체제안보 수호의 골자를 담겠다는 의지를 이미 표명했다.

박근혜 대표도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보안법'이든, '국가수호법'이든 체제를 굳건히 지키는 법은 꼭 필요하다"고 말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충분히 조율 가능한 입장차다.

박 대표는 이날 회견을 통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과거 일부 인권침해 사례가 있었다는 점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국보법 폐지반대를 위해 "대표직을 걸겠다" "대정부투쟁을 불사하겠다"라는 표현에 비하자면 매우 소극적인 수준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박정희 정권의 유지를 위해 '사법살인'을 저지른 인혁당 사건을 두고 그 유족들에게 할 말이 '유감'일 뿐이라는 박근혜 대표의 인식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는 반박했다.

박 대표는 또한 "지난 10년간 인권침해 사례가 있나?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정래의 <태백산맥>, 대학의 교양수업 교재였던 <한국사회의 이해>, 인권영화제 상영작 <레드헌트> 등이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로 규정되었다가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무엇인가?

박 대표는 총선 이후 남북관계에 있어 유연하고 합리적인 입장을 취해 '변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적화통일 하자는 것이냐"는 식의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했고, 국보법 폐지는 "합법적인 친북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는 박 대표의 행동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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