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원로교사 반공교육 참회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익대 사범대 학생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원로교사 반공교육 참회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익대 사범대 학생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목은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 없다는 1세기도 더 이전의 웃기지도 못하는 3류 신파가 재개봉 박두될 판세다. 바로 21세기식 자유민주주의의 상투인 국가보안법 존폐문제이다. 정확히 그 법률적 기능으로 표현하자면 독재 보안법, 민주화 탄압법이랄 이 유령.

두발을 자르면,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 양반 상놈의 구별이 없어지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그들은 '상투가 국수버섯 솟아나 듯' 애국을 빙자하여 사회를 어지럽히며 외쳐댔지만 민족사는 소극의 한 장면으로 막을 내려버린 지 오래다.

그 역사적인 희극이 가발에다 염색까지 횡행하는 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 '내 상투는 자를 수 없다'며 재공연을 서두르고 있다. 딱한 사람들이다. 실로 국민소득 1천 달러나 문맹률이 절반을 넘던 시대의 가치관이 아닐 수 없다.

민족사가 순조롭게 풀렸더라면 8.15이후 친일파를 척결한 뒤 독립운동 세력이 주축이 되어 통일민주정권이 수립되어 아예 '국가보안법'이라는 불륜이 잉태시킨 기형아는 탄생시킬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애비가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치안유지법'이었기에 8.15 이후에도 조상의 피는 못 속여 국가나 민족, 자유민주주의의 보안이 아닌 '독재 정권'의 안보에 그 목적이 있었음은 이미 명증된 사실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씨를 받아 독재자의 품안에서 태어나 군부 쿠데타 세력의 귀염둥이로 자란 철부지인 이 법은 너무나 막가파식 난폭자로 국민 다수에게 정신적인 멍에로 작용해 왔을 뿐만 아니라 명백히 위헌적이다(고 말하면 헌법 재판소나 대법의 판례를 들겠지만 여전히 위헌적이란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일곱 번이나 땜질해온 국가보안법 제1조는 아래와 같다.

제1조 (목적 등)
① 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② 이 법을 해석 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 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개정 91.5.31)


이 조항은 우리의 헌법 제4조와 제5조를 상기시킨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제5조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이 두 조항의 기본이념을 보다 투철하게 인식하기 위해서 헌법 전문 한 대목을 살펴봐야 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이를 두루뭉실 풀이하자면 우리나라의 국가적 정체성(이를 군부독재로 착각하는 예가 횡행하는 안타까움이여!)을 밝힌 헌법 제4, 5조의 이념을 지향하기에 이를 저해하는 행위가 곧 보안법 제1조 위반이 되는 셈이다. 쉽게 말하면 통일 반대,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 파괴, 무력 통일 주장, 외국 침략전쟁 수행이나 지지 등은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소지가 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 법을 그대로 지키지 못했기에 현행 국가보안법 혐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범법 혐의자는 그들뿐이 아니다. 가령 사법기관이 그간 수많은 무고한 국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과연 제2조의 규정대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고려했느냐고 따진다면 아마 가슴이 뭉클할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물론 이 법은 1991년 개정안인지라 그 이전의 법조문은 달랐다고 항변하겠지만 글쎄 오늘이라고 뭐가 다를까.

더 미묘한 사실은 바로 지금 국가보안법 유지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인사들이 우리의 헌법 제4-5조의 이념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면 어떤 결말이 날지 흥미진진해진다. 그들 중에는 보안법 제2조(반국가단체 정의), 3조(반국가단체 구성), 4조(목적 수행), 7조(찬양 고무) 등에 두루 해당되지 않을까. 아마 노태우 정권 이전 시대라면 줄줄이 반국가단체 행위로 엮어진대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한 토막 코미디 같은 망상이다. 도저히 우리 시대의 모든 가치관과 공존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투잡이이자 독재체제의 정조대이다. 결코 손질하거나 이 부분의 어느 한 곳을 다른 법률에다 접합하려는 시도도 필요치 않아 싹둑 잘라내다 버려야 할 분단시대의 수치스러운 마마 자국이자 통일시대의 맹장이다.

빌리 브란트는 1969년 10월 28일 연방의회에서 "동서독 간의 인적 및 물적 거래가 장기간 악화되도록 만들었던 원인은 동독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완강한 보수정책을 밀고 나갔던 서독의 기민당 정부에도 있다"고 명백히 지적했다.

동독은 변하지 않는데 왜 서독만 자꾸 변하느냐는 따위의 상투잡이들은 어느 시대 어디서나 있었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서도 20년이나 지난 뒤에 어렵사리 독일 통일은 이뤄졌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으로 '극우 파시스트'를 적시하여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북한 체제 지지,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민족주의, 자유민주주의 등등에 대한 변별성도 없이 무작정 '빨갱이'로만 내몰지 않았던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빨갱이'로 낙인찍힌 예를 구태여 일일이 다 들어야 할까!

민주화하자는 쪽과, 남북 대치 중 쿠데타를 일으킨 쪽의 누가 정말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 것인가. 물론 북에서 내려온 대남 첩보요원도 없지 않았지만 내가 교도소에 갇혔던 경험으로는 정작 1970년대 후반 이후에는 아예 그런 인물들은 별도로 처리하여 교도소로 보내지도 않을 만큼 우리의 수사기관과 수법도 성숙해 버렸다.

첨언하면 국보법 위반자들은 대개 형법도 위반한 것으로 고발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곧 국보법 없이 형법만으로도 얼마든지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임헌영 소장
임헌영 소장
적어도 분단시대의 서독처럼 극우세력을 자유민주주의의 적으로 인식하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원칙을 확고하게 뿌리 내려야만 국가 정체성이 확립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저 낡은 상투는 어서 잘라 버려야 한다.

이 법이 있어야만 존립할 수 있다고 믿는 국가란 파시스트 체제거나 피식민 체제일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나라라면 이런 상투잡이 법은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개혁을 마치 참여정부의 특허인양 오해하는 풍조야말로 상투잡이 사촌들이다. 헌법전문의 "조국의 민주 개혁"이란 말은 여야 없이 민족사는 끊임없는 개혁임을 상기시키는 말이 아닌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