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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답지 않게 비가 내린 산은 아직도 여기저기 물기가 남아 있다. 인천시 남동구에 위치한 약산(약사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는 서산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산에는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산길 옆 포장도로에는 의젓하게 포장집을 차려 놓고 술을 팔던 자리에는 트럭이 서 있고 모든 것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럼 산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기자가 일년 만에 찾은 산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다. 혼자서 또는 둘이서 낯선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들이 검은 비닐봉지를 한 쪽 손에 들고 또는 가방을 메고 산속을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노인들이나 낯선 손님이 지나가자 팔을 붙잡는다.

"아저씨 커피 한잔 팔아주세요."

여자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 봤다. 곳곳에는 비닐자리를 깔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 도착하자 여인은 비닐자리를 서둘러 깐다. 다음은 팔에 들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풀었다. 그 안에는 몇 개의 술병과 안주거리로 오이 몇 개, 커피포트가 들어있다. 일년 만에 찾은 곳이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여인들은 일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십을 넘은 나이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인생계급장 마냥 깊게 파여 있다. 체격은 조금 비대한 편, 이 직종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그런 모습이지만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소주를 내놓고 오이 하나를 칼로 작게 잘라 내놓는다.

"점잖은 분 같아 말을 붙이기 어려웠는데 말을 붙이기 잘했네요."

기자는 비죽 웃어 주었다. 한참 기자의 얼굴을 보다가 안심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은 김아무개. 나이는 47년생. 집이 송도라고 한다. 이곳과는 꽤 먼 거리다. 매일 버스를 두 번 타고 출퇴근한단다.

아들을 삼형제를 두고 있는 데 남편은 35살에 사업실패로 술만 매일 퍼마시다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고, 잠시 말문을 닫는다. 아들 삼형제와 가난만 남기고 떠나간 남편을 원망할 새도 없이 김씨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안 해 본 것이 없다는 데, 그러다 7년 전 어느 날 힘들게 사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친구의 소개로 이곳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한다.

"그때는 그래도 벌이가 괜찮았는데 요즘은 잘 안 돼요. 경기가 나빠서 그런지 오늘은 손님이 처음이에요."

경기가 좋을 때는 하루 10만원도 거뜬히 수입을 올려 아이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맏이는 장가까지 보내 살림을 차려주었다고 했다. 막내가 대학 1년생인데 그놈만 공부시키면 자기는 할 일을 다 하게 된다며 그때는 죽어도 좋다며 가을 산을 바라본다.

젊었을 때는 얼굴도 예뻐 같이 살자는 남자들도 줄을 섰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여관으로 가자는 남자도 있었으나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자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느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어머니다.

"좋은 세상에 오래 살아야지요" 하고 기자가 말하자 "어미만큼 자식들이 부모를 생각해 주면 좋겠는데…" 자식으로부터 별로 효도를 받아보지 못한 듯 자식은 역시 자식이라고 말했다. 자식에게 더 기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곳에 출근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여자도 있다고 하니 이곳도 사는 것이 천차만별인 모양이다. 거스름돈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기자의 마음도 어쩐지 개운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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