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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 논들의 푸른 보자기를 펼쳐놓은 듯한 벼들 중에 유채꽃 색깔로 유난히 튀는 논 한 배미가 있었다. 추석 전에 바심(벼 베기)을 하기 위해 일부러 이른 품종의 벼를 심었다는 그 논에서 우리 동네 첫 벼 베기 하는 날의 풍경을 담고 싶었다.
오늘 점심을 먹고 창밖을 내다보니 그 논에 콤바인이 들어가 벼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드디어 첫 벼 베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오래전 농촌 풍경에서 그려졌던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모두 나와서 모를 심거나 낫으로 벼를 베고 논둑에서 들밥을 먹는 정겨운 풍경 대신 콤바인 한 대가 가볍게 일을 하는 것이 요즘 농촌이다.
콤바인 운전을 하는 논주인 이재성(58) 씨는 전업농으로 140마지기(2만8000 평)의 논농사를 짓고 있다. 오늘 수확한 벼는 이른 품종인 ‘원평벼’인데 올해는 병충해가 거의 없어서 저절로 친환경 농업이 되었다고 한다.
"올해 첫 햅쌀을 수확하는 감회가 어떠세요?“
“조생종이라 그런지 수확량이 예상했던 것 보다 적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유.”
거기에 쌀 수입 개방 이라는 난제까지 안고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바심을 하면서도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떠난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많이 지어서 스스로 부농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텨왔는데 이제 해마다 농사를 짓는 일이 불안하다고 한다.
시골에 살면서 이렇게 농민들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것을 직접 들을 때마다 나까지도 괜스레 한없이 위축되는 것 같다. 알량한 지식으로나마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하소연도 들어 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항상 이방인처럼 문제의 주변만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시국이 어수선해서 풍년가를 부르며 수확을 하는 모습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첫 수확의 감회는 있을 줄 알았는데 농민들의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골이 깊은 것만 확인하게 되었다.
“수입 개방에 대비해서 농산물도 고품질로 생산해야 한다고 하는데 장기적으로는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직 시장에서 기능성, 친환경 쌀에 대한 기반이 약해서 장담은 못해유. 부여 특산품으로 개발한 키토산 쌀도 아직 판로가 확실하지가 않다는데 개인이 그렇게 하기에는 아직 벅차지유.”
천2백 평의 논에서 두 어 시간 만에 벼 베기에서 탈곡까지 끝내서 포대에 담겨진 나락들은 곧바로 건조기로 이동을 했다. 말려진 벼들을 방아 찧으면 기름기 좔좔 흐르는 햅쌀이 되는 것이다. 농부의 손길을 88번 거쳐야 벼가 밥이 되어 식탁 오른다고 하는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벼농사만큼은 기계화가 잘돼서 그 과정이 많이 줄었다.
“쌀값이 지금처럼 한 가마니에 16 만원만 유지 되면 농사짓는 것두 괜찮아유. 시골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니께유.” 그래도 이 재성 씨 같은 사람이 우리 농촌에 남아줘서 아직까지는 희망을 볼 수 있지만 그 희망의 유효기간을 얼마나 장담할 수 있을까?
첫 수확을 하는 논에서 들려오는 한 숨 소리가 섞인 점점 노랗게 번져오는 집 앞 들판을 감상적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농민들의 현실이 너무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