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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10월 3일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10월 3일까지) ⓒ 박수호
뮤지컬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사천의 착한 여자'의 후일담 혹은 대안적 성격을 띤다. 미국작가 캐서린 라이언 하이디의 소설 < pay it forward >에서 소재를 얻어 한국 상황에 맞게 만든 창작뮤지컬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실천할 것'이란 담임선생님의 숙제에 초등학교 5학년 지홍이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다는 내용.

그 아이디어란 주변에 도움이 절실한 세 사람을 찾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도 주변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처음엔 3, 그 다음엔 9, 27, 81…. 결국 16번만 이어진다면 대한민국 4304만6721명 모두가 도움을 받게 되어 세상은 아름답게 바뀔 수 있다는 것.

지홍이 노름뱅이 노숙자 장봉을 도와주는 것을 시작으로 '도움주기' 운동은 서서히 퍼져 결국 담임선생님과 지홍 어머니 정인과의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다는 줄거리는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해준다.

잘 훈련된 배우들의 몸짓, 표정 연기에 가창력까지 고루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소극장(대학로 '알과 핵')만의 묘미. 특히 정인 역을 맡은 김은정씨는 최근 뮤지컬 배우가 취약한 점으로 지적되는 연기 부분에서 안정된 발성과 들뜨지 않은 차분함으로 아들을 위해 억척 같이 살아가지만 알콜 중독에 빠지는 30대 미혼모 역할을 잘 소화했다.

또한 평소에 가장 행복을 느낄 때가 엄마와 뽀뽀할 때라는 지홍 역에 정세인(11)군의 초롱초롱한 눈빛도 잊지 못한다. 배우들간의 호흡도 회를 거듭할수록 척척 맞는다는 노우성 연출가의 설명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아이디어를 찾아 실천할 것"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아이디어를 찾아 실천할 것" ⓒ 박수호
최근 대형화 추세에 접어든 국내 뮤지컬 경향과 달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한 2층 무대와 이동식 단 등은 극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주도록 짜여졌다. 담임선생님과 지홍이네 집, 거리, 노름방 등으로 순간순간 변하는 무대는 적재적소의 조명과 함께 아기자기한 맛을 선사한다.

서랍 속에 차곡차곡 들어있는 휴지, 가지런한 셔츠와 책 등의 소품으로 선생님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객석과 무대는 가까웠다. 배우들이 인형을 이용해 지홍이를 '바다 괴물'을 물리치는 해적의 세계로 이끄는 담임선생님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노름뱅이 노숙자 장봉, 폐암 말기 환자 농부, 장님인 만순, 라면만 먹고 공부하다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한 장미, 중국집 배달원 이소령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을 너무 단편적으로 처리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

이는 반대로 정인 어머니와 담임선생과의 사랑에 초점을 맞힌 나머지 정작 '도움주기'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창작 뮤지컬임을 표방하면서도 번역투의 대사와 입에 익지 않은 듯한 노래 가사 등이 귀에 거슬렸다. 마지막 장면의 멘트 후 곧바로 커튼콜로 이어진 후반 역시 관객의 여운을 기다리는 맛을 빼앗은 듯한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제목대로 막이 내린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뮤지컬이다.

선행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작품으로, 미국에서는 소설책 발간 이후로 Pay it forward 재단(www.payitforwardfoundation.com)이 설립되는 등, ‘Pay it forward’ 운동이 사회 운동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떠오른 세 사람에게 지금 당장 전화를 걸어야겠다.

"작지만 큰 반향 일으킬 소극장 뮤지컬로 자리잡길"
[인터뷰]<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연출 노우성씨

공연이 끝난 후에도 무대 주위에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감동을 받았다는 한 관객은 배우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어이 배우에게 음료수 캔 하나를 손에 쥐여주고는 자리를 떴다. 배우와 기념 촬영을 하는 커플들도 눈에 띄었다.

기자가 찾아간 19일에는 어린이 손님들도 많았다. 배우들 손에 안겨 함께 사진도 찍고, 뽀뽀도 하던 그들은 복지재단 '아이들과 미래' 식구들이란다. 그러고 보니 객석 곳곳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보이고, 연령층도 다양했다.

이런 모습을 관객석 뒤에서 예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제작자 겸 연출가 노우성씨. 본인을 뮤지컬 창작공작소 레히 공장장이라고 소개하는 노씨는 날카롭게 느껴지는 여느 연출가와 달리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배어났다.

- 공연 잘 봤습니다. 연출가의 미소가 공연과 썩 잘 어울리는데요. 그래서 공연이 더 따뜻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극의 분위기 만큼 제 마음도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희 극단 분위기도 '식구'라는 말을 쓸 정도로 정겹다 보니 표정 역시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 이번 공연의 감상 포인트는?
"원래 이 공연은 작년에 'IF'라는 이름으로 올라갔던 작품인데요. 거기에다 N.Y.U.TISCH School Writing Program Composer 대학원 출신들(작곡- 박문희, 편곡- 최종윤)이 음악을 맡아 브로드웨이 현지에서 편곡하고, 초연 때 부족했던 아이의 비중을 늘렸습니다. 제목도 바꾸는 등 많은 부분을 손보면서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음악, 연기, 노래 등 많은 볼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변화들보다 주인공 지홍이의 '도움주기' 릴레이가 무엇보다도 관객들에게 어필할 것입니다."

- 창작뮤지컬을 시도하셨는데….
"최근 오페라의 유령, 미녀와 야수, 캐츠 등 브로드웨이의 대형 뮤지컬이 들어오고, 국내에서도 <명성황후> 등 뮤지컬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점점 성숙해져가는 풍토이긴 하지만, 잘못하면 외국 작품에 잠식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 의식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작품의 질이 문제라는 판단 하에 우리의 숨결이 담긴 뮤지컬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 공연제작 과정에서 에피소드는?
"지금 정인 역을 맡고있는 김은정씨가 원안을 가지고 와서 무조건 뮤지컬로 해야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살펴보니 이미 동명으로 미국에서 영화화되었는데 아이역에 <식스센스>에서 열연했던 '할리 조엘 오스몬드'가 출연했던 거더군요.

그래서 '할리 조엘 오스몬드니까 극이 사는 거지 우리 나라에서 이만한 아역배우가 있겠어?'하며 반신반의했지요. 그래서 아이의 역을 최대한 축소한 가운데 제작에 들어갔지요.

한참 아역배우를 찾는데 지난해 함께했던 서희재(12)군이 눈에 띄더군요. 캐스팅하고 반년 가까이 공연을 했는데 당시 희재군이 워낙 잘해줘서 이번 공연에서는 아이의 비중을 많이 늘렸지요. 지금은 그 친구가 변성기가 찾아와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지요."

- 뮤지컬의 진수는 역시 노래인데요. 김은정씨가 부르는 '다른 엄마처럼'은 들을 때 가슴이 찡했지요. 전반적으로 선율이 참 아름다웠어요. 다만 아쉬운 건 노래를 듣다보면 전달력에 문제가 있는 느낌이 드는데….
"지적 잘 해주셨는데요. 아무래도 우리 말이 분절음이다보니 영어에 비해서 느낌이 좀 딱딱하게 느껴지지요. 또 같은 마디라도 우리 말은 영어보다 넣을 수 있는 내용이 더 적더라고요. 시처럼 함축적이지 않다면 더 그래요. 그래서 계속 수정중인데요. 조만간 관객들의 귀를 어루만질 수 있는 곡으로 거듭날 겁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 작품이 레퍼토리화되는 겁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처럼 작지만 큰 반향 일으킬 소극장 뮤지컬로 자리잡는 것이죠. 작품 자체가 도움주기 릴레이 운동의 시발점으로 작용하고 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일으켰으면 합니다."

극단 '레히'는 젊었다. 연출가 스스로도 '표현력에서는 배우를 따라갈 수 없다'며 '이번 작품은 전 출연진이 자유롭게 직접 만들어낸 것'이라고 배우들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에서 어떤 권위주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도움주기' 릴레이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는 것도 다 이런 연유인가 보다. / 박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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