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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지난 2월 28일 워싱턴에 머물고 있을 때,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환경정책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 권헌열씨가 굳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다. 권씨는 부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할 동안 자기가 사는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서울 촌사람에게 워싱턴 시민들이 사는 마을을 구경시켜 주었다.
권씨가 안내한 곳 중, 'Centreville Regional Library'라는 동네 도서관을 본 것이 가장 인상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라면 일개 동(洞)의 도서관인데도 시설이 좋았고, 많은 주민 특히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게 무척이나 부러웠다. 더욱이 그 도서관에는 한국 책도 꽤 많이 소장돼서 나그네를 놀라게 했다.
내가 학교를 그만 두면서 가장 아쉬워했던 점은 대학 도서관 이용을 원활히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대학부속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무시로 대학도서관 책을 빌려볼 수 있었는데 퇴직하니까 일체 대출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서울에 있을 때는 꼭 필요하면 대학도서관에 가서 열람할 수 있었지만 안흥에 내려오니 자연 도서관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동은커녕 면소재지에도 아직 도서관이 거의 없고, 군청 소재지도 도서관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좀 큰 지방 도시의 시립도서관을 찾아도 참고할 만한 책은 거의 없다.
도서관이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마련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민들은 읽을 만한 책이 없기에 도서관을 찾지 않는다고 하고, 도서관 측에서는 주민들이 도서관을 찾지 않기에 부실하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너무 멀리하고 있다. 현대는 버튼 하나로 모든 게 작동하는 '디지털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이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텐데, 표피적인 영상 문화에만 젖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점차 단세포적이요, 즉흥적인 경향으로 짙어가는 느낌이다. 그런 탓인지 우리 사회는 갈수록 기상천외의 끔직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를 위하여, 그나마 남아 있는 서점들을 그대로 남겨두기 위하여, 우리 모두 만남의 장소를 서점으로 정하면 어떨까? 두 사람 찻값이면 책도 한 권 살 수 있으리라.
깊어가는 가을 밤, 지난 여름 무더위로 비어 버린 나의 머리를 채우면서 그리운 이에게 '가을 편지'도 한 통 띄운다면, 내 영혼은 비단 위에 꽃수를 놓는 것처럼 아름다워질 것이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 <가을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