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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메밀꽃은 1936년 <조광>지에 발표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꽃입니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김민수
봉평장에 나갔던 왼손잡이 드팀전(피륙을 파는 가게)을 하는 허 생원은 장사가 시원치 않아 심사가 뒤틀려있다. 조 선달과 함께 충주집을 찾은 그는 거기서 장돌뱅이 동이를 만난다. 허생원은 술자리에서 충주댁과 농탕치는 동이를 보자 화가나 따귀를 갈긴다. 한바탕 지껄이는 허 생원 그러나 동이는 한마디 대꾸도 아니하고 나가니 도리어 동이의 모습이 측은해 보인다.

조선달이 술을 마시는데 동이가 황급히 달려와 나귀가 밧줄을 끊고 난리라고 알려준다. 허 생원은 자기를 외면할 줄 알았던 동이가 그런 기별을 해주니 마음이 풀린다.

나귀에 짐을 싣고 달밤에 다음 장터로 떠나는 길, 달빛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분위기에 취해 허 생원은 옛 이야기를 동이에게 들려준다.

여자와 인연이 없던 허 생원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여름 밤 봉평의 물방앗간에서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나 그 처녀와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다음날 처녀는 빚쟁이들을 피해서 가족과 함께 봉평을 떠나고 말았다.

이야기 끝에 허 생원은 동이가 편모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발을 헛디딘 허 생원이 물에 빠지자 동이가 부축해서 엎어 주고, 허 생원이 마음에 짚히는 데가 있어 어머니의 고향을 물으니 봉평이란다.

제천장으로 향하는 길, 동이의 채찍이 왼손에 들려 있었다.


ⓒ 김민수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메밀밭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강원도 국도를 지나는 길에 하얀 메밀밭을 보고는 "여기가 혹시 봉평인가?"했는데…. 봉평은 아니었습니다. 메밀꽃을 보면 '봉평'을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메밀꽃 필 무렵>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교시절 이 소설을 읽고는 '동이가 허 생원의 아들일까, 아닐까?'하는 궁금증 때문에 확실하게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 저자에 대한 불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소설의 묘미인 것을 그 때는 몰랐습니다. 뒷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맡김으로 상상력의 날개를 달게 하는 것이 글을 맛나게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메밀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보아도 또 그 질문이 새록새록 되살아옵니다.

'동이는 허 생원의 아들일까, 아닐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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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메밀밭이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그래도 간혹 밭 가까운 들녘에 메밀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면 메밀밭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도로변에 관상용으로 심은 메밀꽃들은 종종 볼 수 있습니다만 바람을 타고 자유를 찾아 야생에서 꽃을 피우는 메밀꽃만큼 예쁘게 다가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똑같은 꽃이라도 어떻게 피어났는지, 어디에 피어있는지에 따라서 주는 느낌이 다릅니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것들을 보면 그들의 천성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고맙고, 추운 겨울에 피어나는 꽃도 그 때 피어날 수밖에 없는 꽃인데도 대견스럽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실 수 없으니 자연을 통해서, 꽃을 통해서 우리 삶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 아닐런지요. 누구에게나 들려주는 소리지만 그 세미한 음성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운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아픈 이들을 보면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핍박받으면서도 기쁨의 비결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들리는 천상의 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민수
어디에 살다가 그 자리에 자리를 잡았는지 모릅니다. 어느 누구에 의해 그곳에 씨앗이 뿌려졌는지도 모릅니다. 바위틈에 자리 잡고 수줍은 듯 피어있는 메밀꽃, 그 꽃의 주인은 남제주군 삼달리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 김영갑님이었습니다. 루게릭병과 투쟁하기 때문에 지금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누워있어도 힘들 시간들임에도 그는 꼿꼿하게 늘 그 자리에 앉아서 그의 갤러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무심의 경지에 다다른 듯 보일 듯 말 듯한 따스한 미소와 눈길 속이 스며있을 그의 정원 한구석에 피어있는 메밀꽃을 만난 것은 지난 5월이었습니다. 무리 지어 피어있지 않고 홀로 외로이 피어있던 메밀꽃은 어쩌면 홀로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는 그와 동행하려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꽃이 지고 씨가 맺혀 흙을 만나면 더 많은 꽃들이 피어날 것입니다. 제주를 사랑했던 그, 이어도를 보았다는 그의 소망이 화들짝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5월에 피었던 메밀꽃의 씨가 떨어져 다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시절이 요즘이니 그 곳에는 이제 홀로가 아니라 무리 지어 메밀꽃이 피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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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소리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찹싸알 떡! 메미일 묵!"하며 그 길고 긴 겨울밤 창문 넘어 골목길에 울려 퍼지던 소리입니다. 멀리 골목길에서 외치는 소리가 다르고 불이 켜진 창문 곁에서 저음으로 내는 소리가 다릅니다.

간혹 동네 처녀들 중에는 밤이면 '찹싸알 떡! 메미일 묵!'을 외치며 하얀 입김을 뿜고 다니는 그 총각이 누굴까 궁금해서 빼꼼히 창문을 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훔쳐보고는 다음 날 희미하게 본 그 총각의 모습을 부풀려서 말했습니다. 사릴 부풀릴 것도 없었을 것이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보았으니 자세히 보지도 못했으니 적절한 조명에 그냥 멋지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날 밤 처녀들이 야심한 밤에 한 집에 모여 용기를 내어 창문을 열고 기대에 차서 대면 했겠지요. 아저씨였다면 실망을 했을 것이고, 혹시라도 눈이 맞아서 결혼을 한 이도 있을 것 같습니다.

ⓒ 김민수
메밀묵도 메밀국수의 맛도 참 좋습니다. 입맛에 따라 다르겠지만 청년시절에는 도대체 무슨 맛에 메밀묵을 먹고, 메밀국수를 먹나했는데 입맛도 변하는지 그렇게 부드러운 것들이 점점 좋아집니다. 작은 꽃들을 올망졸망 담고 있는 메밀꽃의 이파리는 심장모양입니다. 마음에 순백의 하얀 꽃을 담아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듯한 꽃 그러나 그 씨앗은 검은 색이니 흑과 백의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꽃이겠구나 생각도 됩니다.

자기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면서도 다른 모든 것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자연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가장 자기다우면서도 다른 존재들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저 자연의 삶을 우리들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메밀꽃, 또 궁금해집니다.

'동이가 허 생원의 아들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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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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