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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께서도 주목하고 있어. 외치(外治)에 힘써야 할 이때에 내부적으로 비수를 품고 있는 비밀조직이 있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지.”
영락제는 제위에 오른 후 아직 대명을 위협하고 있는 변방의 이민족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북원이 여러 부족으로 갈라지면서 세워진 달단(韃靼), 와자(瓦刺), 올량합(兀良哈) 등이 자주 남하해 기습하면서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고 있었다.
영락제는 내부적인 안정만 된다면 세외세력의 위협을 적극적으로 제거하기 위하여 정벌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었고 이미 정화를 시켜 남해원정을 시킨 바도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오중회도 극단적이지 않잖아요.”
“문제는 지금 관직에 있는 주요관료 중에도 오중회의 인물이 섞여 있어.”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섭다. 오중회는 결성된 지 벌써 30여년이 되어 간다. 서슬 퍼런 태조의 숙청과 철저한 감찰, 감시 속에서도 살아남은 비밀결사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방법이 될 텐데요.”
억울하게 숙청당한 개국공신등을 복권시켜 주자는 이야기다. 역적이라는 오명을 떼어내고 개국공신으로서의 대우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죽은 자를 되살리지 못해. 한번 들어주면 끝없이 요구하게 될 것이고…. 더구나 황상의 아버지가 잘못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는 결론이 나는 거야.”
현 황실의 고민이었다. 영락제의 고민이기도 했다. 영락제가 크면서 보아온 개국공신들은 자신과도 친분이 깊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 억울하게 처형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뒤집을 수 없는 것이 자식 된 도리요, 선황에 대한 예의다.
상대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균대위…,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었을까? 왜 남옥대장군 숙청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았을까? 선황은 그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는 끊임없이 의문을 내비치고 있었다.
“균대위…, 그들만 차지할 수 있다면 오중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의 속마음이었다. 균대위를 과거 태조처럼 이용할 수 있다면 자신들의 정보조직과 함께 오중회를 이 땅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오중회의 존재를 깨끗이 빼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전연부가 낙양에 도착하면 무엇보다 먼저 그 일을 시킬 것이다.
× × ×
정주(鄭州) 손가장(孫家莊)
정주는 하남성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라 부자(富者)가 많다. 손가장의 장주인 손불이(孫不二)도 정주 내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부자인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가 부자이면서도 자린고비 짓을 한다거나 베풀지 않고 재물을 쌓아두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많은 친구를 두고 있으며, 그의 장원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손님 오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겼으며 그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다.
그는 고아였다. 그를 어릴 적부터 거두어 준 사람은 가난한 훈장이었는데 손씨였던 관계로 그는 손(孫)이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름도 불이(不二)라고 지어 주었는데 그가 공부에 재능이 없고, 손재주가 없다 하여 그리 부르다가 아예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 시골 학당의 훈장은 거두어들인 아이가 공부라도 잘하길 바랐던 것 같은데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아이였던 것이다.
그는 훈장이 돌아가시자 그 집을 나왔는데 사실 공부도 못하고 손재주도 없으니 어디서 일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그에게는 장사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쓰레기 더미 속에 쇠붙이를 모아 판돈으로 장사 밑천을 삼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가 사십이 되기 전에 이미 그는 정주에서는 손꼽히는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했고 인정도 많아 부자라는 생각을 들지 않게 했고 거지라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돈을 쓰는데도 그의 재산은 축나지 않고 늘어나기만 했다.
그와 거래하는 사람들이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이익을 보고 있지 않고,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그가 친구로서 베푼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돈을 벌고 있는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손불이는 오늘 아주 소중한 친구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루도 끊이지 않는 손님들이지만 오늘은 다른 날과 달랐다. 점심때가 지나자 서달 대장군가의 여식이며, 강남삼미 중 한명인 서가화가 도착했다.
저녁때가 되자 그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몇몇의 사람 중 한명인 갈유(葛侑)와 그의 아들인 갈인규(葛仁葵)가 몇 명의 무림인들과 함께 들어 왔다. 그 중에는 대학유 송렴의 자손인 송하령이 있는 것도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단 한 가지 갈유의 농담만 뺀다면 그는 아주 기분 좋았을 것이다. 허물없이 지내는 갈유는 손불이를 만나자마자 모두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떠들었다.
“손무이(孫無二), 이 친구 잘 있었나? 소실(少室)은 또 얼마나 늘었나?”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면 그를 모욕하는 소리가 그를 손무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는 부모가 없으며, 자식이 없다. 결국 손무이라 부르는 것은 그를 뿌리도 없고 씨도 없는 놈이라고 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술김에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 신세한탄을 하다가 늘어놓은 말 한마디가 씨가 되어 그 뒤로 그와 가장 친한 친구들은 그를 손무이라 놀려댔다.
더구나 그는 자식을 낳기 위해 처(妻)를 두 명, 첩(妾)을 일곱 명이나 두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식을 낳아주지 못했다. 그는 육순이 다 되어가는 그의 나이로 보아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자꾸 첩을 들인 것은 그의 정력 때문이 아니라 빚에 몰린 사람들이나 곤궁한 사람들을 도와주다보니 애를 잘 낳는다는 여자나 그런 체형의 여자들을 소실로 받아들여주길 간청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자식을 낳으면 나중에 그의 재산이 모두 자기 것이 된다는 욕심도 한몫 하였다. 그는 그래서 할 수 없이 소실을 받았고, 그것이 또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예끼, 이 돌팔이야. 어른 공경이 그건가?”
말은 그래도 얼굴엔 함박웃음이다. 그를 본 것이 벌써 일 년전이다. 그의 친구 갈유는 의원이다. 이 세상에서 그를 돌팔이라고 부를 사람은 손불이 뿐이다. 손불이에게 자식을 보게 하기 위해 온갖 치료를 해주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괴의(怪醫) 갈유란 이름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는 기인(奇人)이다. 그는 중원에서 의술(醫術) 하나는 최고라고 말들 한다. 그가 못 고치는 병이라면 천하명의(天下名醫)라 해도 고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게 괴의라고 그리 좋지 않은 별호가 붙은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환자가 무림인이나 부자라면 과도한 대가를 요구한다. 무림인에게는 독문무공이나 그 문파의 비급을 요구하기도 하고, 부자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요구하는 대가를 내놓지 않으면 그는 치료를 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그의 괴행(怪行)이다.
그는 사람의 시체를 갈라보기도 하며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의 배나 머리를 갈라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그가 사람의 간을 먹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래서 항간에는 우는 아이에게 “괴의 온다”라는 말로 울음을 그치게 한다고도 말한다.
소문이야 어떻든 그는 마음이 내키지 않은 환자는 돌보지 않는 고집통이였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진정한 의원이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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