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7월 1일을 기해 대중교통체계를 개편하면서 난데없이 버스에 커다란 로마자 도안을 새겼다. 이에 한글단체들은 일제히 서울시를 성토하며 시정하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서울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를 참다못한 한글단체들이 다시 팔을 걷어 붙였다.
22일 한글학회는 감사원에 서울특별시 특별감사 청구를 냈다. 지난 7월 14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 감사원에 청구를 낸 데 이어 두 번째다.
한글학회가 감사원에 낸 감서청구사항을 보면 옥외 광고물 관리법 시행령을 위반한 영문 간판에 대한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지도 감독을 했는지, 서울 거리의 외국어 간판이 모두 허가된 간판인지, 허가 업무를 법에 따라 제대로 했는지, 시정 조치 업무를 제대로 했는지를 감사하고 서울시가 직제 명칭을 '미디어팀, 마케팅팀'처럼 외국어로 한 것이 잘한 것인지, 불필요하게 버스와 거리에 영문자와 영문 구호를 씀으로써 우리 말글을 훼손하고 예산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들을 감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글문화연대도 같은 날 서울시가 버스에 불필요한 영문 로마자를 크게 쓴 것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한글문화연대는 서울시가 시내버스 8천여 대 이상에 아무 의미도 없는 로마자 도안을 크게 집어넣는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언어생활에 관한 국민의 행복 추구권(헌법 제10조)을 침해함으로써 언어생활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으며, 독점적 공공재인 시내버스에 대한 행정 지도 과정에서 소비자인 시민의 편의를 무시한 도안을 넣음으로써 헌법 124조에 보장된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였다. 또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 문화의 창달이라는 문화 국가의 원리(헌법 제9조)를 위반함으로써 영어 숭상의 문화적 사대주의를 조장하고 있고,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버스 도안의 확정과 집행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를 밟지 않음으로써 적법 절차의 원리(헌법 제12조)를 위배하였다.
이와 관련 <한겨레> 9월 20일자엔 독일 보훔 대학에서 한국학, 정치학을 공부하며 <한겨레> 실습기자로 일하는 펠릭스 필리펜이 서울 거리를 이야기한 '버스 영문분류 정보 못주고, 정작 정류소엔 영어 안보여'란 기사가 실렸다.
지난 9월 14일 온종일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 본 필리펜은 "매일 버스를 이용하는 서울 시민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정보를 얻는 데 매우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을 위해, 국제화를 하기 위해 도안을 했다는 서울시 버스도안은 오히려 외국인에게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도 22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건의문을 냈다.
한글날 기념식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여 국경일 못지않게 큰 뜻을 담은 기념식으로 높여 달라. 이번 한글날에 대통령이 '우리말 살리기 특별 담화문'을 발표해 달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국어정책청을 새로 만들어 우리말과 겨레 얼을 살려주시길 건의한다.
그간 관행으로 보면 어쩌면 한글단체들이 괜한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글을 지키려 목숨까지 걸었는데 지금 우리가 이런 일들을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더구나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마당에 이를 내버려 두면 이런 외국의 역사왜곡 시도가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자존심은 깡그리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 한글단체와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걱정이다.
558돌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는 한글단체들의 서울특별시 특별감사 청구와 헌법소원 그리고 대통령에게 낸 건의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펼 때 시민을, 국민을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