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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며느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꽃 중에는 '며느리주머니(금낭화)',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그리고 각 모양에 따라서 '알며느리밥풀꽃', '새며느리밥풀꽃', '수염며느리밥풀꽃' 그리고 소개해 드리는 '꽃며느리밥풀꽃'이 있습니다.

'며느리'자가 들어간 꽃들마다 며느리의 한이 배어 있는 꽃이라서 슬픈 꽃이기도 합니다. '사위질빵'이라는 꽃도 있는데 그건 사위사랑이 가득 담겨진 꽃이고 보면 우리 여성들의 왜곡된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슬픈 꽃입니다.

꽃의 전설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전설들이 인간의 죽음과 관련지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모티브로 꽃에 대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데 늘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이지만 일년생이건 다년생이건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존재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어느 날 보이지도 않던 꽃들이 때가 되면 피어나고, 때가 되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때가 되면 반드시 피어나고야마는 그 꽃의 생명에서 희망을 보았을 것입니다.

삶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

꽃의 삶을 통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라 또 새로운 시작임을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 김민수

ⓒ 김민수

꽃마다 저마다의 이름이 있습니다.

맨 처음 그 꽃의 이름을 붙여준 이가 있었으니 그 꽃 이름이 전해질 것이고,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은 이름을 붙여준 그 누군가도 그 꽃과 조우를 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냇가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늘 발은 물 속에 잠겨 있지만 지금 보고 있는 그 물은 이미 이전의 물이 아니듯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그 꽃도 그 옛날 이름을 붙여준 이가 본 그 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미 물을 흘러갔어도 지금 내 발을 적셔주고 있는 그 물이 또 이전의 물과 다르지 않으니 꽃도 그렇겠지요.

꽃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피고 짐에 있어서 한결같고, 늘 그 모습에 그 색깔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한결같습니다. 간혹 철모르고 피어나는 바보꽃이 있긴 하지만 어쩌면 그를 속인 것은 날씨지, 그의 속성이 변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결같은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화석화된 사람, 고정관념에 묶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 늘 변하면서도 늘 새로운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 김민수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네.

아들 장가를 들어 며느리를 맞았는데 며느리 또한 효성이 극진했지. 그런데 아들을 빼앗긴 것 같았는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질투하기 시작했던 거야. 아들이 집만 비우면 시어머니의 며느리 학대가 심해졌어.

놀부의 심보를 넘어서는 시어머니의 학대에 며느리는 어쩔 줄 몰랐어. 그래도 출가외인인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가면 또 부모님들이 얼마나 상심을 하겠어. 이제나저제나 나아지겠지 하며 며느리는 참고 또 참았단다.

아들이 잠시 먼 곳에 나가자 시어머니의 며느리학대는 극에 달했단다. 며느리는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저녁밥을 지을 때 뜸이 잘 들었는가 솥뚜껑을 열고 밥알을 조금 집어 입에 넣었단다. 며느리를 감시하던 시어머니가 이걸 놓치지 않고는 들어와 며느리를 마구 때려 며느리가 그만 죽었단다.

아들이 돌아왔는데 이미 아내가 죽어 있으니 곡할 노릇이지.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라도 아내가 죽었는데 어찌 화가 나지 않겠어. 그래서 어머니에게 마구 화를 내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냐고 하니 겨우 밥알 조금 먹은 것으로 며느리를 때려 숨지게 했다면 아무리 아들이라도 자기의 편이 되어 줄 것 같지 않으니 이렇게 변명을 했겠다.

"글쎄, 며느리년이 너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을 장만하라고 했더니만 밥이 뜸들기도 전에 만든 음식을 죄다 먹어버렸지 뭐냐. 어찌 서방님과 시에미 상에 올리지도 않은 것을 지가 먼저 다 처먹어. 그래서 버럭 소리를 질렀더니 막 대들지 뭐냐. 내가 힘이 있어야지 그래서 작대기로 두어 대 쳤는데 하도 처먹은 게 많아서 그런지 체해서 죽었단다."

그 뒤 며느리 무덤가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나 여름이 되면 며느리 입술처럼 붉은 꽃에 새하얀 밥풀이 두 개 뭍은 형상을 한 꽃이 피었어. 꽃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어.

"서방님, 제가 먹은 것은 바로 이 밥풀 두 개뿐이어요. 그것도 다 먹지 못하고 이렇게 입술에 묻어 있는 걸요. 전 결백합니다. 너무 억울해요."

이때부터 이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 불렀데. 이 꽃은 세상이 너무 무섭고 수줍음을 잘 타기 때문에 산 속에서, 다른 나무나 풀에 숨어서 고개를 숙이고 핀단다.


ⓒ 김민수

ⓒ 김민수

이 꽃의 다른 이름은 '새애기풀' 또는 '꽃새애기풀'이라고도 합니다.

새색시들을 부를 때 '새애기'라고 부르니 그 이름도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새애기들이 수줍움도 잘 타 고개를 똑바로 들지도 못하니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꽃의 형상도 새애기를 닮았습니다.

꽃며느리밥풀꽃의 꽃말은 '질투'입니다.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질투겠지요. 어쩐지 아들을 빼앗긴 것 같은 심정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꽃을 보면서 상상해낸 이야기이니 사실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런 일들이 심심지 않게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요.

며느리도 자식입니다.

그리고 며느리를 그렇게 구박했던 시어머니도 그 누군가의 며느리였습니다. 자식이 자신이 이루지 못한 한을 푸는 도구가 아니듯 며느리도 자기가 시어머니에게 당한 설움을 쏟아 붓는 도구가 아닌 것입니다.

ⓒ 김민수

입술을 벌려 새하얀 밥 알 두 개로
너의 결백을 드러내는
며느리밥풀꽃아,
참 서러웠겠구나.
아팠겠구나.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신랑과
수줍은 첫 날밤을 보낸 후
너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니?
벙어리 삼 년, 장님 삼 년을 보내기도 전에
밥 알 두 개 입에 물고 죽은
며느리의 한을 품고 피어나는
며느리밥풀꽃아,
세상을 무서워하지 마라
이제
온갖 부조리 한 것들,
너를 죽이려고 하는 것들과
당당하게 맞서라
이제 더 이상
이유 없는 폭력에 침묵하지 말아라.

<자작시 - 꽃며느리밥풀꽃>


사위질빵
장모님의 사랑을 가득 담은 꽃


사위질빵은 줄기가 유난히도 잘 끊어지는 꽃입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지게 같은 것의 '질빵'을 만들면 잘 끊어지니 많은 짐을 질 수가 없겠죠?

사위가 처가집에 와서 일손을 도울 때 사위 힘들지 말라고 장모님이 이것으로 질빵을 만들어 두었다가 사위가 사용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사위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며느리들도 사위처럼 각별하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명절이 다가옵니다.

모든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딸같이 대해 주기를 소망해 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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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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