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의 통신 추적은 노동의 문제이다. 삼성이 노조를 온갖 방법으로 무산시켜오지 않았냐? 노조 못 만들게 감시한 것 아니겠느냐?"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국정감사는 모든 노동문제를 다루는 게 아니라 노동부를 감사하는 기관 감사이다. 노동부에 신고되지 않은 사안인데 다룰 명분이 없다." (제종길 열린우리당 의원)
"사안 자체가 통신 추적 문제인데 정보통신부 소관이 아니냐. 환경노동위원회 소관 사안이 아니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
24일 오후 3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김순택 삼성SDI 이사를 제외시킨 국정감사 증인명단을 확정했다. "삼성SDI의 '노동자 통신 위치추적 사건'은 노동부 소관이 아니다"라는 것이 여야 간사협의 결과였다.
김순택 이사를 증인으로 신청한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증인 신청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여야 간사가 사전 협의한 명단만 안건 상정이 됐을 뿐, 단 의원의 증인 신청 건은 아예 환노위 회의 안건으로도 채택되지 않은 것이다.
단 의원은 "의원들이 증인채택 가치가 없다고 해서 채택이 안될 수는 있지만 최소한 발의한 내용은 들어봐야 하지 않느냐"며 간사 합의에서 누락된 증인에 대해 안건 상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안건 상정여부를 표결한 결과,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 1명뿐이었다.
삼성SDI는 지난 7월 노동조합의 설립을 추진하는 노동자들의 휴대폰을 무단으로 복제한 후 '친구찾기'라는 서비스에 일방적으로 가입한 후 그들에 대한 위치를 추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삼성SDI 근로자들과 삼성일반노조가 이같은 혐의로 서울지검에 이건희 삼성 회장, 이학수 부회장 등을 고소한 상태다.
격앙된 단병호 "증인 신청한 이유라도 설명하겠다"
이날 단병호 의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상임위 일정은 양당 간사가 조정할 수 있지만, 안건 심의 여부까지 결정하는 것은 간사들의 권한 남용"이라며 "(증인신청안건 상정을 못하는 것은) 법적 근거도 없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단 의원은 발언 도중 "삼성SDI는 꼭 증인 채택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왜 빠졌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협의 중인 간사들에게) 참고해달라고 한 부분인데 빠졌고, 다른 부분은 (참고해달라고) 얘기 안 한 부분이 들어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원식 의원과 김영주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단 의원 말씀이 맞다"며 "단 의원의 증인신청 안건에 대해서 다른 의원들 의견을 물어서 표결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원들은 단 의원의 증인 신청에 대해 뚜렷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간사인 제종길 의원은 "저와 배일도 의원(한나라당 간사), 위원장은 노동 문제로 볼 때 삼성SDI는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했다"고 반론을 폈다. 또한 "(비교섭단체인데도) 단 의원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 오히려 다른 의원들보다 더 많은 기회 드렸다"고 강조했다.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은 단 의원에게 "하도 많이 신청하니까 우리는 질려서 신청도 안했다"고 따지기도 했다. 장 의원은 이날 회의 진행에 대해서도 "의원들 능력이 있는 거야 없는 거냐, 간사협의는 왜 하는 거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 역시 "상임위는 경연대회가 아니지 않느냐"며 "단 의원이 간사협의체를 무력화시키고 다른 의원들의 인내심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절차에 대한 논의가 1시간 넘게 지지부진하게 계속되자, 이경재 위원장은 결국 단 의원이 신청한 증인 채택 안건 상정 여부를 즉석에서 찬반 표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재석 13명에 찬성 2명, 반대 10명, 기권 1명이었다.
이 위원장이 "단병호 의원이 신청한 증인채택안 상정에 찬성하시는 분 일어나 달라"고 하자, 단 의원이 혼자 자리에서 일어났고 잠시 뒤 우원식 의원이 뒤따라 일어났다. 반면 이 위원장이 같은 방식으로 반대 입장을 물었을 때는 김영주 의원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인 채택 찬성 2, 반대 10, 기권 1
단병호 의원은 침울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가며 "삼성SDI는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됐어야 했다"며 "오늘 한국 최대 재벌의 실체를 실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단 의원은 기자들에게 "삼성SDI가 도청을 왜 했겠느냐"며 "삼성의 무노조 전략 차원에서 노조를 무산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왔고, 이번에도 노조를 못 만들도록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통신 추적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제종길 의원은 "삼성SDI 건이 노동문제일 수는 있지만 현재 노동부에 신고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기관감사에서 다룰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 의원은 "일부러 삼성을 제외한 것은 아니다"라며 "다른 대기업인 현대중공업은 증인명단에 들어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 간사인 배일도 의원 역시 "안건 자체가 통신 추적 문제인만큼 노동부가 아닌 정부통신부 소관"이라며 "이와 같은 인권침해 내용은 국정감사가 아니라 국정조사에서 다룰 문제"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