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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들어온 새 손주며느리의 이바지 음식은 모두 치매 할머니의 독차지가 돼버렸다. 오물오물 입안에 넣고 먹기좋게 만든 밥풀강정, 깨강정, 색색깔의 각종 약과를 비롯해 배, 포도, 참외, 메론에 이르기까지.

고기도 씹기 힘든 갈비대신 연한 불고기감으로만 챙겨 들려보낸 정성 가득한 이바지. 그러려니 했지만 역시나 새 손주며느리 친정은 바리바리 할머니 드시기 좋은 것으로만 이바지 음식을 장만한듯 했다.

그 모든 음식들은 내리 10일 이상을 "밥하는 아줌마, 밥줘. 며칠을 굶었드니 배고프단 말야"를 연발하던 할머니의 푸념을 '스톱'시켜 놓았다. 그리고 추석을 3일 앞둔 오늘. 또다시 우리집엔 엄마의 거의 뒤로 넘어갈듯한 절규가 흘러넘치고야 말았다.

치매할머니가 시도때도 없이 벗어놓는 빨래하기, 거기다 그동안 아들 결혼으로 짓눌렸던 가슴속 부담감 마저 훌훌 떨쳐나가면서 마침내 어깨 허리통증을 호소한 엄마가 인근 정형외과로 가 물리치료를 받고 오던 사이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추석 지낼 배추김치며 물김치 담글 준비로 잔뜩 사다놨던 현관앞 배추, 무, 쪽파들이 심상치 않았다.

"아유, 이게 뭐야. 그 좋은 쪽파가 왜이렇게 됐어. 대가리는 댕강 잘라지고 몸은 다 헤져버렸네."

아, 할머니는 어떻게 아흔셋의 치매중에도 김치 담글때 쪽파를 다듬어야 한다는걸 기억하고 있었을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추석준비로 거실에 잔뜩 쌓아놨던 과일들이 이것, 저것 할것없이 모두 한두개씩, 혹은 통째로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배고프단 말야. 친구 할머니랑 같이 먹었어. 그건 안먹을꺼야."

어느새 약과더미로 손을 쑥 들이밀고 있었던 할머니는 엄마눈치를 보며 두서없는 말들을 쏟아놓고 있었다.

"한두푼도 아니고.어떻하나, 추석장을 다시 보러 가게 생겼으니..."

끊임없이 배고픈 치매 할머니가 이 추석에도 우리 곁에 계신다. 사탕이며 과일 발라 먹던 끈적끈적한 손을 씻으러 씽크대로 화장실로 바람처럼 다니며 온갖 수돗물을 모두 틀어놓으며 그렇게 이 추석에도 할머니는 우리곁에 있다.

추석보너스 따윈 없어도 밀린 월급 받아냈으니 할머니가 해치운 쪽파며 추석 차례꺼리야 다시 사러 나갈 수 밖에.할머니, 이번 추석은 두 번 온 겁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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