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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령은 자기 접시에 간단한 채소를 덜다말고 아직 젓가락조차 잡지 않은 담천의를 보며 망설이다가 그의 접시로 몇가지를 담아주기 시작했다.
“소저... 제가...”
나직한 담천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그 일을 마치고서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동은 좌중의 시선을 끌기 족했다. 그녀의 행동은 함부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송하령 그녀 자신도 분명 그녀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
뭔가 말을 할 것 같던 서가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송하령이 저런 행동을 한 것은 이미 좌중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까와 같이 놀린다면 이제 놀림이 아니다. 비난이 될 수 있다. 그 때까지 조용히 담천의를 지켜보고 있던 전연부가 손불이에게 물었다.
“손대인. 여기 계신 분들은 모습만 뵈어도 알 수 있지만 저 소협은 제 식견이 낮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소이다.”
자신들은 소개해 놓고 왜 소개하지 않는냐는 투다. 물론 손불이도 지금까지 궁금했다. 더구나 송하령의 행동을 보고 더욱 의아했었다. 그는 옆에서 음식 맛을 음미하며 먹고 있는 괴의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돌팔이 인건 맞는 것 같아. 저 소협 가슴에 비친 선혈을 봐. 그걸 아직도 자네가 치료하지 않고 있다는 건 또 말도 안 되는 대가를 요구했기 때문이겠지?”
갈유는 그의 말에 갑자기 컥 소리를 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정말 괴의는 억울했다. 그는 마차를 타고 오는 하루 종일 수차례에 걸쳐 그의 상처를 봐주겠다고 담천의에게 말했었다.
“내 아무리 괴의라 불리지만 그럴 리 있나. 도대체 친구라는 놈이.”
“소생이 마다했지요.”
담천의는 자신이 일어날 시기임을 알았다. 그가 갈유의 호의를 거절한 이유는 오직 한가지 였다. 그의 상처를 동여맨 것이 송하령의 속치마다. 그것을 구양휘 등이 있는 마차 안에서 보인다면 송하령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담천의라 하오이다. 아직은 만물표국의 표사이외다.”
“만물표국의 표사....?”
전연부는 입속에서 뇌까렸다. 이 자리는 표사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니다. 자신의 일행 뿐 아니라 무당의 현진도 사제 두 명이 더 있었지만 이 자리에 끼지 못했다. 그런데도 구양휘나 팽악, 괴의의 표정을 보면 그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모습이니 그것 가지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
“대주(隊主)이셨소? 그리고 아직은 표사라니..?”
전연부는 겉으로 웃고 있지만 이미 그의 본능과 직감은 대물(大物)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받고 있었다. 뭔가 내력이 있는 자다.
“말 그대로 일개 표사지요. 운이 좋아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소.”
일개 표사의 음식시중을 자존심과 절개만으로 본다면 중원 최고라 할 수 있는 강남송가의 여식이 들어 준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음울해 보이기는 하나 담천의의 전신에 스며있는 기도는 절대 표사 따위가 가지고 있을 그것이 아니다.
전연부는 그의 내력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묻는다는 것은 좌중의 분위기에 맞지 않아 더 묻지 못했다. 그 궁금증은 마침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서가화가 풀어주었다.
“만물표국의 일개 표사가 풍운삼절을 요절낼 정도이니 만물표국은 대단한 곳이지요?”
“그럼 풍운삼절이?”
무림에서의 소문은 빠르다. 빛살처럼 빠르다. 이미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다만 누가 풍운삼절을 처참하게 만들었느냐가 궁금했었다.
무당의 현진도장도 기이하다는 모습이다. 손불이의 눈에도 경악과 기이함이 일렁이고 있었다. 친구와 같이 온 일행 중에서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오직 그 뿐이었다. 헌데 만물표국의 일개 표사란다. 일개 표사가 풍운삼절의 사십년 위명을 짓뭉개 놓았단다.
“그들이 왜 조용하게 사라졌는지 알겠군. 정말 담소협이 그 친구들을 그렇게 만들었소? 단지 혼자?”
손불이의 말 속에는 풍운삼절과의 친분이 있었다는 투였다. 사실 중원 천지 어지간한 이름이 있는 사람이라면 손불이의 친구다. 아니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한 두번 정도 들르게 되는 곳이 이곳 손가장이다.
“친분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담천의는 이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어울리게 되었지만 자신이 화제에 오르자 어색해졌다. 그러한 어색함을 벗어나게 해 준 것은 음식이었다.
전채요리가 끝나자 괴의 갈유가 고대하던 마라우육(麻辣牛肉)과 회과육(回鍋肉) 등 사천요리가 나오고 용하적(龍蝦炙)과 탕초리어(糖醋鯉魚)와 같은 진귀한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갈유는 이미 담천의의 어색함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그에 대해 궁금했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그는 마음에 드는 청년이었다.
“자네가 그 친구들하고 얼마나 친분이 있었다고....음식 맛 떨어지겠네.”
문득 갈유의 핀잔에 손불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얼른 입을 열었다.
“담소협. 개의치 마시오. 그 친구들과 안면은 있지만 그런 것 가지고 따지려 했던게 아니오. 담소협의 무위가 너무 놀라워서 그런 것이니 이해 하시오.”
“다행입니다.”
담천의는 말과 함께 아까와 같은 송하령의 행동이 나올까봐 젓가락을 집어 들었으나, 어느새 송하령은 그의 접시 위에 이것저것 담아 놓기 시작했다. 문제는 전연부였다. 전연부의 시선은 담천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관의 일을 망친 자가 담천의였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이곳에 들어오는 일행을 보고 막연하게나마 그는 구양휘가 아닐까 하고 있었던 터였다.
“허...그건 그렇고..”
손불이는 앞에 놓인 죽엽청(竹葉靑)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이건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겠어.”
“무슨 말이야. 자네는 앞으로 백년은 더 살텐데.”
괴의는 고향의 매운요리에 혀를 후후 불어가며 헐떡거리고 있었다. 매워도 너무 맵다. 하지만 다음에 떨어지는 손불이의 말은 좌중의 움직임을 멎게 했다.
“초혼령(招魂令)이 장안(長安)의 거부(巨富) 양만화(楊滿華)에게 떨어졌다는 소식이야.”
“초혼령이?”
“사흘전 저녁이라니 오늘쯤 천고문(天鼓文)이 걸리겠군.”
초혼령은 누구에게나 공포감을 준다. 우선 초혼령을 받은 자가 그 초혼령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로 그 초혼령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떠한 세력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실체를 모르면 더 두렵다.
“십사년 아니 십오년 만인가?”
“더구나 예전에도 대상을 가린 것은 아니지만 중원의 상계를 휘어잡고 있는 산서상인의 수장(首長) 양만화를 택한 게 문제지.”
손불이는 같은 상인에게 초혼령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구파일방에서 간섭하지 않으려나.”
혼자 말이었지만 무당의 현진도장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양만화가 소림과 화산, 그리고 종남파의 뒤를 업고 있다는 말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구파일방 내에서 서열을 매기는 것은 어렵지만 위세로 보아 소림과 화산은 누가 봐도 구파일방을 이끌어 가는 최고방파들이다.
“무량수불......빈도로서는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현진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의식하며 도호를 외우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지금까지 초혼령의 일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구파일방이 나서는 일은 없었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던 구양휘가 불쑥 중얼거렸다.
“초혼령이라.....초혼령주(招魂令主)는 좀 붙어 볼만할까?”
호기심이 인다는 말이다. 팽악은 질겁했다.
“형님...이런 때에 그런 말이 나와요?”
구양휘 저 인간은 상대를 무서워할 줄을 모른다. 그저 상대가 강하다면 어떻든 붙어 보려고 궁리한다. 하지만 상대는 초혼령주다. 장난삼아 말할 상대가 아니다.
“뭐 어때? 그렇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궁금했는데.”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구양휘에게 무서운 것은 없다. 그 때 슬그머니 담천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생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는 좌중의 분위기가 풀어지자 기회를 보아 말한 것이다. 좌중의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말들은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고 우선 쉬고 싶었다.
“더 나올 음식도 많은데 더 드시지 않고.”
손불이는 주인된 입장으로 예의로 말한 것뿐이다. 언뜻 보기에도 그의 상처는 경미한 것이 아니다. 그를 위해서도 빨리 쉬게 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요리에 감사드립니다. 많이 먹었습니다.”
“허...그러면.....수화(秀花) 게 있는가?”
그가 부른 언수화(彦秀花)라는 여인은 그의 세번째 첩이었다.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고 뚱뚱하다고 하기보다는 풍만하다고 할 정도의 삼십대 초반의 여인이었다.
“예 대인.”
“이분을 먼저 정고헌(庭睾軒)으로 모시게. 환자이시니 치료에 필요한 것은 모두 드리고...”
정고헌은 손가장 내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풍취있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정원과 정원 속에 어우러진 연못이 빙 둘러 있는 곳. 담천의가 분위기가 가라앉은 좌중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할 때 송하령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의 상처가 걱정되어서 무의식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서가화가 송하령의 손을 잡고 송하령을 자리에 앉혔다.
“언니가 가면 나까지 일어나야 하잖아. 아직 맛있는 음식도 남았다는데...”
붉게 물드는 송하령의 얼굴을 본 담천의는 얼른 수화란 여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가 밖으로 나서는 것을 지켜 본 괴의가 그의 아들에게 나직히 말했다.
“규(葵)야. 식사를 마치고 따라가 보아라.”
괴의 갈유의 아들인 그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어른들이 있는 자리였는지라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허나 괴의의 괴벽인 무공수집이 모두 그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의술을 잇고, 다양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무림인이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규아를 꼭 보낼 필요가 있는가?”
손불이가 그러자 갈유가 그 말을 잘랐다.
“저 아이도 의원이야. 의원의 본분을 다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내가 가야겠나?”
“모르겠네. 자네 핑계 댈테니....그렇지 않아도 규아 온다는 말에 내원에 준비하는 것 같던데... ”
손불이의 말투에는 은근히 성가신 일이 걱정되는 기색이 서려 있었다.
(7장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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